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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조각
마지막 출근은 언제나 즐겁다.
즐겁다기보다는 즐거움에
다른 감정들이 결합하여 딸려 오지만.
인생의 한 장으로서 한 곳을
영원히 떠날(퇴사) 때의 마지막 출근은 가장 즐겁고,
작게는 한 주의 마지막 출근이 그렇다.
휴식이 보장된 출근이어서 그럴 것이다.
짧게는 반나절부터 길게는 수일까지.
있는 힘껏 늘어지는 것도 꽤 이루기 어려운 목표고,
비행기 같은 이동 수단에 몸을 싣고
일정 기간 여행을 가는 것도 마찬가지다.
중요한 것은, 뭐가 되었든 실현 가능성을 떠나
그런 상상을 하는 것만으로도 힘을 받는다는 것.
사람은 다음이 있어야 인간답게 산다.
삶의 쉼표가 보장될 때, 힘을 얻는 것도
반대로 휴식만 남고 다시 시작할 수 없을 때는
힘을 잃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한다.
삶을 버티고 투쟁하고 살아가게 하는 것들.
다음 해의 달력을 만들고,
그러기 위해 매일 일기와 사진을 찍고,
달이나 해마다 목표를 두며 책을 읽고,
읽은 책에 대한 소감을 남기고,
경험한 책을 마땅한 타인에게 소개하고,
먹고 싶은 것을 같이 먹고 싶은 사람과 먹고,
가치관이 맞는 친구와 깊은 이야기를 나누고,
또는 친구와 맥락 없이 아무 이야기를 떠들고,
한번씩은 비싼 곳에서 맛있는 밥을 먹고,
내킬 때는 야식을 먹고,
재밌는 영화나 드라마를 다시 보고,
또는 재밌어 보이는 영화나 드라마를 기다리고,
유명한 빵집을 도장 깨러 다니고,
눈이 번쩍 뜨이는 맛있는 커피를 마시고,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를 듣고 또는 들으러 가고,
좋아하는 작가의 신간을 기다리고,
흥미 돋는 전시를 구경하러 가고,
함께 사는 이를 기다렸다가 시간을 보내고,
반려동물이나 반려 식물과 시간을 보내고,
프로젝트를 맡아 진행하고,
개그 코드가 맞는 사람들과 일하고,
합이 맞는 사람과 일하고,
가치관이 맞는 사람과 상식선에서의 대화를 하고,
맡은 일을 끝낸 뒤에 늘어져서 햇볕을 마구 느끼고,
월급이 들어오는 찰나의 순간이나
응원하는 유튜버가 승승장구하거나
보고 듣고 느끼고 맡고 즐기고 함께하고…….
삶의 낙을 떠올려보면
제법 살아갈 만한 세상.
멸망 속에서도 빛을 찾아야 하는 까닭은,
고된 일상에서도 희망을 붙잡아야 하는 까닭은,
하나다. 나를 챙기고 보살피고
먹이고 입히고 재우고 잘 늙고 잘 살게 할
유일한 인간이 나라서.
오늘도 삶의 낙을 떠올리고 누리며
나를 열심히 구해본다.
by 개복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