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내가 나폴레옹이다 (23)
2024년 5월 11일 토요일 (22일 차)
성공회 주교궁전 아스토르가
토요일 아침 7시. 너무 친절했던 주인에게 출발 인사를 하기 위해 리셉션에 잠시 들렸는데, 엊저녁 같은 테이블에 앉았었던 독일 함부르크 애나 부부가 작별 인사한다. 주인아주머니는 손주 둘을 데리고 나와 반갑게 인사하며 환송해 주었다.
출발하자마자 까미노는 엄청난 너덜 길로 환영한다. 주변을 돌아보니 밭에도 길에도 온통 주먹만 한, 머리만 한 돌이 천지다. 이런 길에서는 자칫 발목이 돌아가거나 발바닥에 수포가 생기는 불상사가 나오기 쉽다. 걷다가 발을 헛딛을 가능성도 많다는 의미이다.
순례길에서는 우리 신체 중 발바닥과 다리가 가장 고생한다. 그런데 팔은 거의 놀고 있으니 아끼지 말고 팔을 부려 먹어야 한다. 팔을 활용하는 방법은 스틱을 사용하는 것이다. 나는 스틱의 효과와 도움을 정말 많이 보았다. 대부분의 한국 사람은 스틱을 가져오지 않았거나 지참했다 해도 오르막과 내리막에서만 사용하는 데 반해, 외국인들은 평지에서 더 유용하게 사용하는 걸 볼 수 있다. 평지에서 스틱을 잘 사용하면 다리에 오는 부하를 적어도 20% 이상 경감시킬 수 있다는 보고서를 본 적이 있다.
“스틱 사용은 체중과 지면의 높이에 따르는 근섬유 부담을 덜어주며, 더불어 하지 관절에 가해지는 부하를 경감해 주므로 결국 산행이나 트레킹 시 스틱의 사용은 부가적인 요소가 아니라 필수라 말할 수 있다.” 출처: 월간 산
오늘도 길가에는 양귀비가 흐드러지게 피어있고 새들은 나무마다 지저귀고 있어 발걸음을 가볍게 해 주고 있다. 이런 아름다움에 유난히 붉은 일출은 언제나 지친 순례자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나는 이곳에서 운명적으로 ‘크리스’를 만났다. 뉴질랜드에서 왔다는 그는 어제 등산화를 벗어 던지고 수로에 들어가 앉아있던 그 순례자다. 오늘도 얼굴에서, 발걸음에서 왠지 슬프다고 말을 하는 것 같다. 나는 조심스레 다가가 망설이다 인사를 건냈고 그는 주저하다 말문을 열어준다.
“어느 날 아침에 자고 일어났더니 아들이 갑자기 세상을 등진 거야. 정신도 없고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어. 장례를 마치자마자 무작정 산티아고 순례길로 와 버렸는데... 아들이 없는 뉴질랜드로 다시 돌아갈 용기가 나지 않아. 내가 살아야 할 이유를 모르겠어···”라고 한다. 누가 감히 이 사람의 슬픔을 가늠할 수 있을까? 나는 어떤 말로 이 사람을 위로 할 수 있을까?...
크리스는 오히려 "가족을 잘 돌봐야 해" 라며 당부를 한다. “슬픔과 아픔은 까미노에 내려놓고 평강의 마음으로 귀국하게 되기를 기도한다”라고 말했다. 한참을 같이 걸었다. 삶과 죽음에 대해 이해할 수 없는 현실에 대해 이야기 나누었다. 물론 결론없는 대화였다.
왜 이 길에는 이런 종류의 아픔들이 펼쳐져 있는지 모르겠다. 크리스의 마음으로 보면 그날 한 순간에 세상이 멈춘 듯 했을 것이다. 눈앞에서 빛이 사라진 그날. 아들의 미소와 눈빛이 이제는 기억 속에만 남아 있을 터. 크리스의 가슴 깊이 파고 든 슬픔은 눈물이 되어 심장에서 피 대신 흐르고 있을 것이다. 하늘은 어둠에 물들고, 마음은 끝없는 고통 속에 아들의 빈자리를 느끼며, 이 길에서 애써 아들의 흔적을 찾으려 아니 지우려 할 것이다.
이날 이후로 크리스와 나는 매일 만나고 매일 헤어졌다. 우연이라고 하기엔 이상할 정도로 매일 같은 숙소에서, 길에서, 식당에서 만나고, 반갑게 이야기 나누고, 헤어지기를 반복하다 속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상대가 되었다. 그리고 마지막 날 산티아고 광장에서 긴 포옹으로 작별하였다. 그는 뉴질랜드로 돌아갔다. 그는 죽기 위해 순례길에 왔다가 살아야 할 이유를 발견하고 되돌아간 것이다.
인구 900여 명의 ‘호스피탈 데 오르비고’까지 왔다. 오르비고 강가에 중세 시대부터 순례자를 위한 병원이 건설되고 마을이 형성되었는데, 강 위를 가로지르는 아치형 돌다리는 순례길 여러 다리 중 백미이다. 석양에 보면 더 예쁘다는 데 나는 이른 아침, 이 다리를 건너간다. 다리 바로 앞에 있는 카페에서 크리스와 아침을 함께하고 헤어졌다.
다리 난간에 앉았다. 멀어져 가는 크리스를 바라보다 다리를 살펴보니 구조적으로 참 잘 만든 다리였다. 한참을 앉아 있는데 웬 남자 두 명이 손수레를 끌고 가는 게 아닌가? 힘에 부친 여자들이 손수레를 가지고 가는 건 봤는데 한참인 청년들이 수레를 끌고 가는 게 궁금하다. 달려가 불러 세우고 말을 걸어보니 독일 쾰른(Köln) 에서 여기까지 걸어 왔다고 한다. 이게 말이 되는가? 독일에서 여기까지는 약 2,700km 라는데 ··· 대단하다는 말로는 충분하지 않다. 신앙의 힘이 이런 것인가?
오늘 코스는 아기자기하다. 도로를 따라 걷다가, 강도 건너고, 너른 들녘도 지나고, 산도 넘고, 또 오래된 전통 마을들을 거쳐 간다. 더군다나 하늘은 높고 흰 구름은 손에 잡힐 듯 낮게 깔려 있어, 이번 순례길 중 가장 아름다운 하늘을 보여 주었다.
영국 의사의 조언에 따라 마시는 물의 양을 대폭 늘렸고 전해질도 빠지지 않고 마시고 있다. 오늘이 3일 차인데 열흘 이상을 괴롭게 했던 근육통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나는 이후에 카페에 들어가면 커피도 주문하지 않고 아예 물을 한두 병 시키는 것으로 전략을 바꾸었다. 가격도 가장 싸고 내 몸에도 가장 좋은 것이 물 이었다.
작은 산을 오르니 또 다른 평야가 나타난다. 그 한가운데 도네이션 바가 있다.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과일과 음식을 차려놓고 순례자들에게 봉사하고 있다. 여기 가면 꼭 수박을 먹고 가라고 박 선생이 카톡으로 알려 주었는데, 아뿔싸 수박이 없는 것 아닌가? 무더위에 수박 생각으로 힘내고 왔는데...
실망하고 삶은 달걀과 살구 두 개를 꺼내 먹고 있는데 큰 쟁반 가득 수박을 잘라 내오고 있다. 야호~~수박도 먹었다. 이곳에 있던 미국 교포 가족도 만세를 부르고 신나 한다. 무슨 계기로 이런 벌판에 이런 카페를 만들었는지 궁금하다. 적어도 순례자들에게는 오아시스와 같은 청량감과 체력을 비축하는 역할을 해 주고 있다.
미국 동부에서 온 부부를 만나 함께 걸었다. 공교롭게도 부인은 미국 유에스스틸(US Steel)의 게리(Gary) 제철소에서 근무했다고 한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내가 캘리포니아에 있는 유에스스틸의 합작사 사장을 역임했다고 하니 깜짝 놀란다. 자기도 한국인 사장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며 매우 친근하게 응해 주었다. 나에 대해 좋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어 다행이었다. 이때부터 우리는 30분이 넘도록 미국 제조업의 어려움과 정책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였다. 미국의 반 덤핑법과 무역확장법 232조의 불합리성에 대해 나름의 논리로 설명했는데 철강사 근무 경험 때문인지 대부분 이해도가 높고 내 의견에 잘 수긍하는편 이었다. 헤어지면서 "미국 경제를 위해 노력해 준 점 그리고 합작사를 회생시켜 준 점에 대해 고맙게 생각한다"고 이야기 하고 앞서 갔다.
잠시 후, 그 아름답던 하늘이 저 멀리서부터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가야 할 앞선 길 위쪽으로 갑자기 진한 먹구름이 몰려오더니 스콜 같은 비가 쏟아지고 이내 엄청난 천둥, 번개가 내리친다. 발걸음이 바빠진다. 내가 저기 도착했을 때쯤에 비가 끝나 버리거나 다른 쪽으로 갔으면 좋겠다.
검은 구름은 점점 내가 있는 쪽으로 다가오고 있고 내가 걷는 까미노도 어두워지고 있다.
‘산 후스토’ 그리고 '아스토르가'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커다란 십자가상이 있다. 옛날 산토 트리비오 라는 주교가 세웠다는 화강암 십자가상이다. 조금 쉬어가면 좋을 장소인데 마음이 바뻤다.
급히 언덕을 내려가니 많은 순례자가 '아스토르가' 4km를 남겨두고 길가 카페에 눌러앉아 맥주를 마시고 있다. 독일에서부터 걸어왔다는 그 청년들도 맥주를 기울이며 나에게 손짓한다. “비도 오는데 그냥 여기서 쉬고 내일 가지 그래?” 나도 갈등을 많이 했다. 비가 오기 시작했는데 이곳에서 멈출까? 얼마 안 남았으니 택시를 불러 타고 갈까? 결국은 계획대로 걷기로 했고 하늘은 고맙게도 구름을 다른 쪽으로 보내버렸다. 그리고 나는 이렇게 아스토르가에 도착했다.
에스파냐 광장으로 갔다. 주말이어서 광장에는 사람이 많았고 광장 주변으로 많은 식당이 모여 있다. 한편에 있는 식당 파라솔에 앉았다. 다리가 아프지 않으니 살 것 같다. 마음껏 먹어 보리라 생각하고 이것저것 마구 시켰다. 결국은 반절 이상 남기고 말았다.
비가 다시 내리기 시작하니 다시 추워진다. 아스토르가에서 꼭 들려야 할 곳이 두 곳 있다. 나는 서둘러 가우디 걸작, 주교 궁으로 뛰어갔다. 주교 궁은 마치 신데렐라가 환영 나올 것 같은 분위기다. 원래 있었던 주교 궁이 1886년 화재로 완전히 소실되자 당시 주교였던 그라우 주교가 자신의 친구였던 안토니오 가우디에게 설계를 의뢰하여 건축된 건물이다.
당시 가우디는 구엘 궁전,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 등 다른 여러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어 도저히 시간을 낼 수가 없었단다. 그는 주교로부터 지형지물에 대한 정보와 후보지의 그림 등의 자료를 받고, 그 자료를 바탕으로 자신의 감각과 상상을 추가해 설계하였다고 한다. 가우디는 건축기간 24년 동안 딱 10번 정도만 현장에 방문하였다고 하는데, 친구인 주교가 죽자 아스트로가 의회가 여러 가지 요구를 해 왔는데 이것이 가우디의 생각과 달라지자 사임을 하고 결국 마지막 공사는 다른 사람이 마무리하게 되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실내는 생각보다 소박하였는데 공간 창출 능력은 정말 가우디답게 시원시원 했다.
바로 옆에는 아스토르가 대성당이 있다. 진 붉은 사암으로 건축된 건물은 그동안 거쳐왔던 대성당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1471년 착수한 공사는 18세기까지 이어졌다고 하는 데 오랜 기간 걸리다 보니 고딕 양식의 외관, 신고전주의 회랑, 바로크 양식의 탑과 르네상스 영향을 받은 현관 등 다양한 예술적 감각이 혼합되어 있다.
내부에는 스페인 최고의 조각가로 인정받는 가스파르 베세라가 만든 제단이 꼭 봐야 할 명작으로 유명하고 이외에도 그레고리오 페르난데스, 마테오 델 프라도 등 17세기 화가들의 다양한 예술 작품이 있다. 방문 전에 공부하고 가면 너무 좋은 작품을 마음껏 감상할 수 있으리라.
아스토르가는 이외에도 유럽의 초콜릿 발상지 발상지라고 하는데 나는 단 음식을 좋아하지 않아 관심이 없었다. 대성당에서 기도하고 나오니 비가 제법 내리고 869m의 아스토르가는 급격히 추워졌다. 점심 먹은 것도 아직 소화 전이어서 숙소로 들어가 저녁은 건너뛰고 장비 점검 후 휴식을 취했다.
오늘도 길 위에 누군가의 낙서를 보았다. "Jesus is the answer to your Camino. (예수님이 당신 카미노에 대한 해답입니다).” 그렇다면 구지 길에서 구할 것이 아니라 말씀에서 구해야 한다는 뜻인데···
동영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