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내가 나폴레옹이다 (24)
2024년 5월 12일 일요일 (23일 차)
산간마을 폰세바돈
오늘은 ‘철의 십자가’ 바로 아래 해발 1,440m 산간마을 ‘폰세바돈’까지 간다. 내일 해가 뜨기 전에 산 정상에 있는 철의 십자가에 오르기 위해 가장 가까운 마을까지 가기로 했다.
폰세바돈은 중세부터 산티아고로 가는 산중 길목에서 순례자들의 피난처가 되었고, 다치고 지친 사람을 위한 병원과 교회가 건설되어 번성했던 마을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고 도로와 철도가 산 아래로 건설되자 이 산간 마을을 지나가는 사람의 수가 줄어들게 되고, 결국 마을 주민들이 산 아래 도시로 이주하는 바람에 1990년대 이후 한때 마을 집들은 모두 무너지고 폐허가 된 적이 있었단다. 하지만, 최근 순례자들이 다시 찾기 시작하면서 폐허가 된 교회, 병원 같은 건물들이 알베르게와 식당으로 재개발되었고 지금은 알베르게가 7개나 운영 중이다. 마을의 부흥에는 분명 한국 순례자들의 증가가 크게 기여했다고 본다.
이른 아침, ‘산타 카타리나’ 라는 작은 마을에 도착했다. 제주도에 온 듯 착각이 들 정도로 온통 돌담길이고 집과 성당도 돌로 지어져 있다.
한 카페에 태극기가 걸려있다. 반가워하는 나에게 “안녕하세요?” 하며 주인이 한국어로 말을 건네온다. 태극기는 많이 찾아준 한국인들을 환영하기 위해 걸어 놓았다고 했다. 이른 아침이라 사진만 찍고 다음 마을로 건너가야 했지만 스페인 주인의 따뜻한 환대에 기분이 좋아졌다.
해발 900m 고원 지대가 주는 공기는 확실히 맑고 청량했다. 저 멀리 산 위에 아직도 잔설이 남아 있는 걸 보니 오늘 올라야 할 언덕과 내일 넘어야 할 고지가 만만치 않을 것을 예고하는 것 같다. 오늘부터는 도시로부터 멀리 떨어져 한적한 까미노를 걷게 되고 중간중간에 작은 마을 지나 산티아고까지 이어질 것이다.
그동안 새벽길도, 한적한 숲길도 혼자서 잘 걸어왔는데 이곳 폰세바돈으로 들어가는 이른 아침 산길은 다소 무서운 생각이 계속 들었다. 소위 영적으로 뭔가 계속해서 도전하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이 길 중간중간에도 사망한 순례자들의 무덤이 있었다. 그동안 수많은 무덤을 지나왔는데 모두 누군가의 아버지이고 누군가의 형제였으리라. 순례길을 걷다 맞이한 갑작스러운 하늘의 부름은 행복한 마감이었을까? 아니면 예상 못 한 죽음으로 이생을 정리하지도 못한 아쉬움이었을까? 조용하고 한적한 산길 중간에 있던 한 무덤 앞 의자에 앉아 잠시 생각에 잠겨 보았다.
한 시간 이상 사람 없는 까미노를 혼자 걷는다. 터벅터벅 조금은 무서운 생각에 걷고 있는데 갑자기 시커먼 강아지가 달려온다. 알고 보니 왁스로 ‘세요(스탬프)’ 를 만들어 찍어주는 ‘마테오’의 강아지 5살 '타이슨'이다. 기분 좋게 기부금을 내고 왁스로 만든 스탬프를 순례자 여권 한 중앙에 받았다. 이렇게 내 순례자 여권에 찍힌 수십 개의 스탬프 중 가장 아름다운 세요가 되었다.
'아스토르가'부터는 유독 십자군 십자가로 쓰였던 '붉은 켈트 십자가'가 많이 보인다. 십자가에도 여러 종류가 있음을 이번에 알았다. 우리가 한국에서 보던 십자가는 라틴 십자가이다. 이 외에도 정교회, 예루살렘, 성 야고보 십자가가 다 다른데 십자군들이 사용했던 십자가는 또 다르다. 소위 철 십자가 형태에 붉은색으로 칠해진 것이 십자군 십자가다.
스페인은 총 8차례 십자군 전쟁 중에서 1189~1192년에 있었던 3차 원정에 주로 참여했다고 한다. 십자군 전쟁은 1095년에서 1291년에 걸쳐 동로마 제국의 아나톨리아 영토 회복을 명목으로 한 원정 전쟁이나 200년간 무고한 양민들도 큰 피해가 있었다. 순수한 기독교 신앙인들의 보호 목적 이외에도 교황청의 권력 확대와 재산 축적, 당시 서유럽의 인구 증가에 따른 식량문제 해결, 힘의 외부 분출을 통한 유럽 내 평화 유지 등 다양하고 음흉한 목적이 함께 했다고 하니 결코 칭찬받을 만한 일은 아닌 것 같다. 하여간 이곳 순례길에는 곳곳에서 십자군의 흔적이 있었고 며칠 후 도착 예정인 ‘폰페라다’에는 대표적인 십자군 전쟁 시대의 ‘템플기사단 성’이 있다고 한다.
한때 스페인을 점령했던 이슬람 세력, 즉 무어인들에 대적한 영토 회복 전쟁 또한 스페인에서는 '스페인 십자군 전쟁'이라고 부른다니 이곳에서 보이는 십자군 십자가는 어느 시절을 대표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여간, 영토 회복 전쟁은 772년부터 시작하여 800년간이나 계속되었다니 스페인 땅도 피로 얼룩진 역사를 가졌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까지 순례길을 걸어오며 각 마을, 도시마다 성당을 모두 방문해 보았다. 하나같이 과거 화려했던 시절의 풍부함과 번영을 느낄 수 있었다. 문제는 현재의 모습이다. 일부는 박물관으로, 일부는 마을의 공동묘지, 유명인들의 아름다운 무덤 용도로 사용되고 있고, 예배는 중단되었거나 소수의 성도만이 참석하는 모습에서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성전이 아무리 금으로 치장되었다 한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시골 성당들은 무너져 내리고 있고, 심지어 일요일임에도 입구가 자물쇠로 굳게 잠겨 있다면 기능을 잃었다는 생각이다. 네덜란드나 영국에서는 이런 성당들이 호텔로, 주차장으로, 서점으로, 나이트클럽으로, 심지어 모스크로 팔려나가고 있는 현실을 생각해 보면 그것보다는 낫다고 위로해야 할까?
오늘날 우리나라의 초대형 교회들에게 주는 시사점이 과히 작다고 할 수 없겠다. 교회는 성전의 크기와 화려함이 아니라 구제와 봉사 그리고 섬김 같은 은혜의 크기로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한국 기독교인들과 한국 교회 지도자들은 정말 뼈저리게 반성하고 회개해야 한다. 우리 교회의 미래가 여기 스페인에서 보이기 때문이다. “교회 여 일어나라! 주께서 부르시니 두려움과 실패 내려놓고 교회 여 일어나라.”
조용한 까미노를 걷다가 흥미로운 낙서를 보았다. "Believe doesn't make you free. Have faith does you let it space to act." 믿는다고(Believe) 해서 자유스러워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믿음(Faith)을 가져야 너에게 행동할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하게 된다. 뭐 이런 뜻 같다. 참으로 의미 있는 메시지다. 그런데 문제는 Believe와 Faith 차이에 대해 생각이 많아진다. 잠시 쉬어갈 겸 이정표 앞에 앉아 있는데, 처음 보는 서양인 부부가 다가온다.
“무슨 일 있니?”, “아니! 그냥 쉬고 있어. 그런데 당신들 서양인이니 나보다 잘 알겠네. 이 두 단어의 차이를 설명해 줄 수 있겠니?”라고 묻자, "Believe는 머리로, Faith는 가슴으로 믿는 거야"라고 설명해 준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믿음을 갖게 되면 Faith가 되고, 이 Faith가 있으면 예수님에 대해 다른 사람에게 전도할 힘이 생기는 거야. 따라서 우리는 단순한 믿음의 Believe를 넘어 Faith까지 가야 한다"라고 설명해 주었다. 마침, 다가오던 다른 사람도 합세하여 세 사람이 경쟁적으로 설명해 준다. “Believe 가 내가 믿는 것'이라면, 'Faith는 믿게 해 주시는 것이다.”라는 설명에서 이해가 되었다. 서로 경쟁적으로 설명해 주시는 바람에 시간이 꽤 흘러갔지만 참으로 재미있는 시간이었다.
인터넷을 찾아보다 ‘성 어거스틴’의 말을 발견했다. "믿음(Faith)이란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Believe)것이다. 이 믿음(Faith)의 보상은 당신이 믿는(Believe)것을 볼 수 있게 해 주는 것이다." 그렇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이다.
아침에 출발하여 20여 km를 걸어왔는데 이제 본격적으로 산을 오르기 시작한다. 산 아래 마지막 마을 ‘라바날’(1,150m)까지 왔다. 이제 뭐라도 먹고 마지막 5.5km를 올라 폰세바돈까지 가야 한다. 약간 허기를 느끼고 있었기에 문 열린 카페를 찾았는데 한국 사람들이 너무 많아 자리가 없다. 결국 동네 마지막 지점에 있는 그린 가든이란 곳에서 그냥 콜라 한 병 마시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나중에 알았지만 아까 사람이 많았던 그 카페에서 라면을 팔고 있단다. 그래서 한국 사람들이 그렇게 많았던 것이다. 아쉬웠다.
산을 오르는 길에 또다시 나타난 몇 개의 순례자 무덤과 그 무덤에 놓인 사연을 하나하나 읽으며 산을 올랐다. 사연 없는 무덤이 없었다. 눈물과 그리움이 묻어나는 메모들이 모두 소중하게 보였다.
1,400m 폰세바돈 산장 'Monte Irago'에 도착했다. 날씨가 좋고 산들산들 불어오는 산바람이 좋아 부지런히 속옷과 양말을 빨고 바람 부는 언덕에 빨래집게로 꼭 집어 널었다. 나중에 보니 바람결에 등산용 손수건 하나가 날아가고 없어졌다. 아쉽지만 이 산속 어딘가에 내 물건 하나가 놓여 있다는 것 자체로도 기분 좋은 기념 선물이 되었다.
숙소 앞에서 혼자 맥주를 마시고 있던 ‘티모시’와 긴 대화로 오후를 즐겼다. 티모시는 평상시 말이 없는 친구였지만 도착지에서 만나면 나름 다양한 이야기로 즐거움을 선사해 주는 기분 좋은 브라질 아저씨다. 그런데 이 사람도 말할 수 없는 고통과 아픔으로 이 길을 걷고 있다는 것을 내일 아침에 알게 된다.
내일 새벽 미명에 산을 올라야 하기에 일찍 배낭을 꾸리고 잠자리에 들기로 했다. 침대에 누워 이런저런 생각하며 오늘 촬영한 사진을 보다가 또 다른 낙서를 찾아냈다. “Whoever endures to the end will be saved.(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그렇다. 이제 산티아고가 멀지 않았다. 끝까지 견디는 자가 되자.
이렇게 깊은 산속에서의 밤이 깊어간다. 내일 비가 온다는 예보이다. 나는 철의 십자가 아래에서 일출을 보고 싶었는데··· “내일 아침에 산에 오를 때 하늘에서 별을 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소원을 기도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지금 같은 방에 이름 모를 순례자 10여 명이 누워있다. 그중에 내 옆 침대에는 오늘 까미노에서 믿음(Faith)에 대해 설명해 주던 뉴질랜드 노부부가 사이좋게 코를 골며 자고 있다. 재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