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내가 나폴레옹이다 (25)
2024년 5월 13일 월요일 (24일 차)
알프스 마을 같았던 몰리나세카
오늘은 ‘철의 십자가’에 오른다. 내가 ‘까미노 데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게 된 이유가 되는 장소이기도 하다.
1500m 산 정상에 있는 철의 십자가. 혹자는 호기심에, 어떤 이는 갈급함, 슬픔, 고통을 가지고 이곳을 찾아 기도하고 무거운 마음의 짐을 내려놓는 곳이다. 한마디로 철의 십자가는 순례자들이 인생 여정에서 마주하는 고난과 도전의 상징이며, 긴 여정에서 추구하는 영적 쇄신의 상징이기도 하다.
5시가 되기도 전에 잠에서 깼다. 며칠 전까지 진눈깨비가 내렸고 어젯밤 예보에는 오늘 비가 올 것이라 하여 '철의 십자가에 머무는 동안만이라도 맑은 날씨이기를' 기도하고 잤는데 응답된 것일까? 지금 약한 구름은 있지만 비가 내리지 않고 온도도 좋은 편이다.
어두운 산길을 해드 랜턴에 의지하여 출발했다. 멀리 숲속에 가끔씩 불빛이 반딧불처럼 반짝이는 걸 보니 나 말고도 올라가고 있는 사람이 있나 보다. 얼마를 오르다 뒤돌아보니 산 아래 아스토르가 시내 불빛이 희미하게 아른거린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두운 산길을 걸으며 내내 많은 생각을 했다.
지금부터 4,000년전, 성경에서 아브라함이 이삭을 데리고 산을 올랐다면 오늘 나는 이삭 대신 나의 교만과 욕심 그리고 소망을 짊어지고 올라가고 있다. 특별히 하나님께 기도드릴 것도 있다. 우리 사랑하는 손주 이준이가 손가락이 불편하게 태어난 것이다. 성공적으로 수술을 마쳤지만 여전히 재 수술을 남기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사랑스럽게 잘 자라주고 있는 이 아이가 더욱 아름답고 평화롭게 성장하여, 키가 자라며 하나님 주신 지혜도 함께 자라 이 세상과 하나님 나라에 기쁨이 되는 아이로 성장하길 기도하는 것이 오늘 철의 십자가에 오르는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한 시간 정도 오르자 정상이 나왔다. 가장 먼저 철의 십자가에 랜턴을 비춰보았다. 십자가 기둥 아래에는 많은 사람들이 흘려 놓은 눈물이 편지로, 메모로, 사진으로 강물처럼 흐르고 있다. 앞서간 자들이 남기고 간 아내, 남편, 아들, 딸 사진들이 차가운 산바람에 흔들리고, 먼저 보낸 사랑하는 이들을 향한 절절한 기도가 불어오는 바람결에 들리는 듯하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지난 수 세기 동안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사람들은 자기 고향에서 작은 돌을 가져와 그 돌에 소원과 기도 제목을 써서 내려 놓고 소원을 빌고 가는 전통이 생겼는데, 수 세기가 지난 지금은 작은 동산이 생길 만큼 커다란 돌무더기가 생겨나 있다. 내가 갔을 때도 수많은 돌이 산처럼 쌓여 있고, 작은 돌 위에는 빽빽하게 기도문이 적혀 있었다. 나도 준비 해 간 돌 두 개에 내 마음의 기도문을 적어 내려놓고 기도했다.
여명이 밝아온다. 나는 한 시간 넘도록 철의 십자가를 떠나지 못하고 있다.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손주와 가족, 형제들을 위해 오래 기도했다. 이제 멀리에서 아침 해가 떠오르고 아름다운 일출을 배경으로 철의 십자가는 더욱 선명하고 고귀하게 보인다. 오래 앉아 있다 보니 많은 순례자들이 나를 지나쳐 갔다. 기도를 마쳤고, 여기까지 이고 지고 온 나의 십자가, 교만과 욕심을 내려놓았다. 이제 편히 내려가도 될 것 같다.
어제 숙소 앞 의자에 앉아 길게 이야기 나눈 브라질 사람은 여태 만날 때마다 밝고 명랑 했었는데, 이 철의 십자가 앞에서는 무슨 사연인지 심각한 표정이다. 한참을 말없이 앉아있다 눈물 흘리는 아내를 꼭 안아주더니 긴 기도로 마무리하고 산길을 내려갔다. 이들이 떠나간 자리에는 어린 남자아이 사진 하나가 놓여 있었다. 나는 비로소 이유를 알았다. 사진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흐른다. 뭔가 기도를 하려해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왜 이런 아픔이 우리에게 오는 것 인지···
이 아이는 밤하늘 빛나는 작은 별이 되었다. 늘 부모의 품속에서 웃던 아이는 이제 밤하늘 별빛 속에서만 볼 수 있게 되었다. 엄마 가슴을 파고 들었던 그 작고 따뜻한 손가락은 엄마 가슴 속에 영원한 그리움으로, 추억으로 새겨져 있고 이젠 사진 대신 별을 보며 이 아이를 그리워해야 할 것 같다.
사람들은 저마다 이런저런 사연을 가지고 여기에 온다. 그리고 십자가 밑에서는 서로를 존중하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냥 조용히 머물다 침묵만 안고 산길을 내려간다. 어떤 이는 후련함으로 어떤 이는 여전한 슬픔으로 숲속으로 사라져 갔다. 그러나 이곳 철의 십자가에는 예수님만 달려 계신 것이 아니었다. 많은 순례자들도 이 십자가에 함께 매달린 것이다.
이제 하산 길이다. 지금부터 4.5km를 걸어 ‘푼토 알토’ 언덕을 넘고, 또다시 20km 이상 계속 내려가야 오늘의 목적지 ‘몰리나세카’가 나온다. 이 하산 길은 바닥에 자갈도 많고 더군다나 잦은 비로 인해 매우 미끄럽다며 조심하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은 터이다. 고민 끝에 나는 까미노와 평행하게 내려가는 국도를 올라탔다. 조금 더 돌아갈지는 모르지만 무거운 12kg의 배낭을 메고 걸어 내려가기엔 차라리 국도가 낫겠다고 판단했다.
조그만 서양 아가씨가 너무 힘들다며 울상으로 말을 걸어온다. “국도를 타지 그래?” “난 발바닥이 다 벗겨져서 차라리 흙 길이 더 나아.” 사람마다 여건이 다른 듯하다. 몇몇은 나를 따라 국도 길로 옮겨 타기도 했지만 오히려 더 힘들다며 숲속 까미노로 되돌아갔다.
내리막을 시작하자 구름이 몰려오더니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바람이 동반되자 온도가 급격히 떨어졌고 제법 추위가 몰려왔다. 높은 산, 낮은 기온 그리고 강한 바람을 동반한 이곳에 올 때는 가급적 보온성이 있고 바람막이 기능이 있는 점퍼를 꼭 지참하길 추천한다. 오늘 내리막에는 유난히 순례자 무덤이 많이 보인다. 모두 심장마비가 원인이다.
몇 개의 산중 마을을 지났다. 제일 처음 만난 폐허가 된 마을 ‘만하린’은 예전에는 제법 많은 가구가 살았었을 것 같은 규모지만 지금은 모두 무너지고 두 가구만 순례자들을 대상으로 영업을 하며 살고 있다. 7km를 더 걸어 ‘엘 아세보’ 마을에 왔다. 아기자기한 마을이 마치 산속에 있는 리조트에 온 것 같이 좋았다.
엘 아세보 마을의 문 연 카페를 찾아 들어가니 직원들이 벽난로를 지피느라 분주하다. 나도 경험을 살려 불꽃을 살리는데 한몫 했다. 난로에 매달려 있던 청년들이 갑자기 축구 이야기로 나에게 꽂혔다. 바르셀로나 축구팀을 응원한다는 이들은 자기들이 아는 모든 아시아 축구선수 들 이야기를 다 할 작정이다. 나는 내려가야 하는데··· 한참을 맞장구 치다 결국 일어서 나오는데 돈도 안 받을 태세이다. 참 흥이 많은 친구들이었다.
몇 시간 만에 ‘리에고 데 암브로스’에 도착했다. 아담한 광장에 앉아 등산화를 벗고 발을 쉬게 했다. “멈추면 보인다”라고 했던가? 지나가는 많은 순례자를 볼 수 있었다. 원래 내 계획된 일정보다 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광장에서 좀 쉬어 가려고 했는데 지나가는 사람마다 “괜찮아?”하고 물어봐서 도저히 오래 쉬어갈 형편도 못 되었다. 또 먼 하늘에서 검은 먹구름에 몰려와 다시 일어나 걷기 시작했다.
산을 거의 내려오자 온 산에 노란색 꽃이 만발해 장관이다. 이름을 모르겠다. 나중에 찾아보니 ‘가욤바’라는 관상용 식물이었다. 4월에 만개하며 화려하고 강렬한 노란 꽃으로 유명하고 꽃말은 '청초', '겸손'이란다. 조금 더 내려오자 이제는 온 천지가 야생 ‘라벤더’ 밭이다. 그 외에도 하양, 파랑, 보랏빛 야생화를 원 없이 볼 수 있어 힘든 하산길이지만 참 좋았다.
어느 만큼 내려오니 국도를 따라 택시가 정말 많이 올라간다. 내려오는 길이 여간 힘든 게 아니어서 많은 사람들이 무릎 통증을 호소했는데 중도 포기하고 택시를 부른 것 같다. 올라가는 택시 기사들 표정이 신나 보이는 건 그냥 내 생각일까? 더 이상 국도로 가는 것은 무리라는 생각에 까미노로 돌아갔다.
길은 많이 미끄러웠고 숲은 깊었다. 산을 거의 다 내려왔을 때쯤 내 앞에 유난히 다리가 긴 스페인 사람이 걸어가길래 농담을 걸었다. "내가 오면서 보니 너희 서양 사람들은 다리가 길어 순례길에 정말 유리할 것 같더라. 하나님께서 조금 불공평하게 하셨다.” 한참을 웃더니 "메세타처럼 평지를 걸을 때는 그 말이 맞다. 그런데 이런 내리막길에서는 오히려 다리가 흔들려서 별 도움이 안 되는 것 같아. 힘들어." 웃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산 아랫마을에 머물 예정이고, 여러 차례 나누어 까미노를 즐기고 있는 이 친구는 다음 마을 ‘폰페라다’까지 가서 올해 까미노 여정을 마칠 예정이란다. 아쉬움에 작별하고 나는 마을 입구의 성당으로 갔다.
‘몰리나세카’는 인구 900명 정도의 마을이다. 그래도 대도시 몇 개를 제외하면 순례길에 거쳐가는 마을 중 제법 큰 마을에 속한다. 이 마을은 순례길 프랑스 길 많은 마을 중 가장 인기 있고 아름다운 마을 중 하나로 선정되었다는데 내 평가도 동일하다.
산에서 내려오면 입구에 높은 첨탑을 가진 오래된 성당이 눈에 들어온다. ‘고뇌의 신전’이라고 불리는 이 성당도 고갯길에서 탈진한 순례자들에게 치료와 쉼을 제공해 주던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고 한다. 중후한 석조 외관과 우아한 종탑을 보았으니 내부 성전의 아름다움으로 꼭 보고 싶었으나 아쉽게도 월요일은 문을 열지 않는단다.
비를 맞으며 산길을 내려온 순례자들이 마을 곳곳으로 흩어져 피로를 풀고 있다. 나도 다행히 좋은 식당을 발견하여 맛있는 식사를 마쳤고 내리는 비를 맞으며 동네 성당과 골목 골목을 돌아다니며 작은 가게들을 재미있게 구경하였다. 이곳저곳 술집과 식당에서 순례자들의 떠드는 소리와 술잔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온다. 문만 열고 들어가면 대환영을 받고 한자리 차고 앉겠지만 순례길이 술례길이 되고 싶지 않아 그냥 발걸음을 숙소로 돌려야 했다.
다행히 알베르게에서 좋은 방을 배정 받았다. 잠시후 뉴질랜드 '크리스'도 뒤늦게 산을 넘어와 내 옆 침대에 누웠고 나와 크리스 등 술집으로 가지 않은 사람들은 모두 이른 잠자리에 들었다.
오늘 철의 십자가에서의 기도와 긴 묵상이 나를 평안케 하였다. 순례길을 마무리 하지 못할 것 같은 염려와 근심이 없어지니 더 큰 평강이 자리한 것이다. 마음이 평안해 지니 오늘 25km 가 넘는 길고 험한 산길 내리막은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았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요한복음 1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