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내가 나폴레옹이다 (26)
2024년 5월 14일 화요일 (25일 차)
포도밭 마을 카카벨로스
지난밤 숙소는 열 명이 머무는 방으로 모두 단독 침대로 구성되어 있고, 화장실과 샤워장도 실내에 있으며 널찍하고 편한 숙소였다. 몇몇 순례자들이 인근 맥주집으로 나를 초대하고자 했으나 나는 피곤하다는 핑게로 저녁마저 거르고 이른 잠자리에 들었다. 그런데 한밤중에 어떤 서양인이 나를 흔들어 깨우는 거다. 내가 코를 곤다는 이유이다. 나는 부담스러워 그 이후로 한잠도 못 잤다.
그런데 이게 뭔가. 내가 자지 않고 지켜보니 그 사람을 포함해 9명 모두 엄청나게 코를 곤다. 더군다나 나를 깨웠던 사람이 단연 1등이었다. 그런데 왜? 나만 깨운 것인가? 게다가 나는 자기 바로 옆자리도 아닌데. 마음이 크게 상했지만 더 나빠질 이유가 없어 한 밤중에 배낭을 꾸려 거실로 나왔다.
아직 출발하기는 이른 시간이라 거실에서 동영상 작업을 하며 시간을 보내고 7시가 되어 골목으로 나왔다. 하늘이 온통 먹구름이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 피곤한 몸에 배낭을 메고 출발하려는데 '크리스'도 서둘러 나선다.
“내가 당신의 아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어” 라고 이야기해 주었다. 정말로 고마워하는 크리스의 표정을 잊을 수 없다. 그 큰 눈과 덥수룩한 수염을 씰룩이며 고마움을 온 얼굴로 말하고 있다. 나는 이 친구가 마음을 잘 정리하고 무사히 집으로 귀국하길 바라며 어제 철의 십자가에서도 간절히 기도했었다.
떠나려는 내 손을 덥석 잡더니 발포 비타민 C 2개를 건네주고 먼저 씩씩하게 앞서 갔다. “하루에 하나씩 꼭 챙겨 먹어!” 라며 신신당부하는 모습이 나이도 어린데 오히려 형 같았다. "크리스! 오늘은 아들과 함께 걸어. 아들이 기뻐할 거야!” 크리스의 뒷모습에 소리쳤으나 그는 뒤 돌아보지 않고 오른 손을 하늘로 한바퀴 돌리고 말없이 골목길을 빠져나갔다.
까미노 맵을 열어 오늘 경로를 탐색해 보았다. 마을에서 폰페라다로 가는 까미노가 두 길로 갈라져 있다. 어떤 길이 좋을지 망설이다 앞쪽에서 달려오는 스페인 청년에게 물어보니 직진 하란다. 사실 이 사람이 영어가 전혀 안 되었지만 나는 그렇게 이해했을 뿐이다. 손짓을 보니 나머지 길은 가지 말라는 듯 가위표를 했기 때문이다. 결국 직진 길을 택했다.
인생에는 선택이 따르지만 오늘도 그랬다. 결국 최종 결정은 내가 하는 것이다. 나는 망설임 없이 직진 길로 걸었다. 곧 비가 올 것 같은데 구지 산길을 넘어갈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다.
‘판단과 선택’이란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인간의 판단력은 믿을 만한 것이 못 된다고 한다. 특히 현대인의 뇌는 과부하 상태이기에 눈이 착시하듯 뇌도 착각을 일으키는데 인간은 비합리적으로 뇌의 감정과 직관에 따라 선택하고 후회를 반복하곤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결과를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선택을 해야 할 때는 뇌가 아니라 마음이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미 과부하에 허덕이는 뇌는 쉬게 하고 차라리 가슴으로 쓸어 내려 마음에 맡겨보는 것이 더 좋은 판단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전적으로 동감이 가는 말이다.
판단을 위해 사전에 많은 정보 조사를 하는 것은 나쁘지 않다. 그 정보를 통해 분석하고 충분한 판단의 근거로 사용하면 아주 좋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보 조사와 분석으로 그쳐야 하는데 그 정보에 자신의 염려를 포함하는 것이 문제다. 내가 오늘 그랬다. 지도를 확인했고 스페인 청년에게 물어봤으니 그냥 마음으로 결정하면 됐을 일이다. 그런데, 직진을 결정한 이후에도 이 길을 걸어본 경험자들에게 카톡을 날려보고, 말도 통하지 않는 지나가던 스페인 사람에게 또 물어보고 온통 난리를 쳤다. 내 결정이 옳았다는 확실한 보증을 받고 싶었던 것이다.
까미노를 걷다 느낀 건데 이정표가 아주 잘 정비되어 있음에도 잠시 방심하거나 한 눈을 팔면 길을 놓치기가 일쑤였다. "길을 걸으며 제일 힘든 일이 뭐냐?"라고 물으면, 단연 "길을 잘못 들어 되돌아오는 일"이라고 말할 것이다. 극한적 과부하 상태에서는 의미없이 걷는 몇백m 도 무척이나 힘들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생을 살다 보니 잘못된 판단과 선택으로 되돌아오거나 더 멀리 돌아갔던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잠시 황당하고 짜증이 날 수 있지만 결국 이런 일로 죽는 경우는 없다는 것이 내가 내린 결론이다. 특히 젊었을 때는 잠시 길을 잊었다 해도 염려하거나 낙심할 필요가 전혀 없다. 잘못된 결정이었다고 생각했던 그 길에서 오히려 더 아름다운 인생을 만나기도 했고, 설령 진짜 잘못되었다 해도 새로운 인생을 찾아 되돌아올 시간이 충분하기 때문이다. 아직 시간은 많다. 따라서 어떤 선택도 자신을 믿고, 후회없이 결정하고, 미련없이 시행하자. 그리고 아니라면 다시 시도하면 된다. 이것이 내가 살아보고 내린 결론이다.
어제 내가 넘어온 철의 십자가를 지금 넘어오고 있는 사람들로부터 메시지가 왔다. 오늘은 비바람이 너무 심하게 불어 조난 직전 상태라고 한다. 지금 내 등 뒤에서는 천둥소리가 요란 스럽다. 물론 오늘 내가 걸어가야 할 앞쪽 하늘은 온통 검은 구름이 험악하다. 몇 시간후 나도 엄청난 빗속을 걷게 된다.
1시간 반 만에 폰페라다에 도착했다. 로마 제국 시대부터 광업의 중심지로 성장했으며 이후 템플기사단 성을 건설하면서 11세기 초반부터 도시 기반이 확립되었다고 한다. 도시 이름은 이 도시에 흐르는 두 개의 강 ‘보에사’ 강과 ‘실’ 강 위에 놓인 ‘철로 된 다리’를 뜻하는 'Pons Ferrata'에서 유래 되었다.
도시를 가로질러 폰페라다 성으로 가는데 브라질 티모시가 반겨준다. 자기는 어제 여기까지 와서 밤에 템플기사단 성의 야경을 보았고, 오늘 성 내부를 보고 가려 하는 데 10시에나 오픈한단다. 나 더러 시간이 많이 남는데 아침 식사 먼저 하라며 성문 바로 앞에 있는 식당 한 곳을 추천해 주었다. 커피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에게도 정말 맛있는 커피를 맛보았다. 함께 주문한 요구르트를 곁들인 하몽, 치즈, 토마토가 들어간 샐러드 또한 별미였다. 이곳에 온 이래 최고의 아침식사 였다.
“티모시! 와이프는?” 어제 산에서 울고 있던 모습이 생각나 걱정스러워 한 질문이었다. “응 많이 좋아졌어. 고마워.” 티모시는 내가 왜 질문하는 지 알고 있었다. 나는 끝까지 어제 철의 십자가 아래에서 보았던 어린아이 사진에 대해 묻지 않았다.
폰페라다 성은 십자군 전쟁이 한창이던 1178년경 페르디난트 2세 왕이 켈트족 요새였던 이곳에 정식으로 성을 중건하였다고 한다. 이후 부침을 거듭하였고, 템플기사단의 몰락과 함께 이 성도 쇠락을 맞았다. 1850년경에는 성의 가치가 다하자 어느 귀족이 성곽과 내부의 돌을 가져다 공공 마구간을 짓고, 내부는 축구장을 만들기 위해 평평하게 고르기까지 했다니, 역사의 아이러니와 유물에 대한 몰이해가 만들어낸 아쉬움이다.
성 내부를 구경하기 위해 한 시간 이상을 기다렸다. 19세기 후반, 잘못된 관리의 여파로 정작 성 내부에는 그다지 볼만한 내용은 없었으나 템플기사단이란 단어가 주는 설렘은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계획보다 1시간 이상이 지체되었다. 비구름이 몰려오니 부지런히 목적지 ‘카카벨로스’로 가야 할 시간이다. 근처에 있는 바실리카 대성당과 시계탑을 돌아보고 중세 도시의 아름다움을 눈에 담아 실 강을 따라 이어진 까미노로 되돌아 갔다.
이젠 다리가 완전히 회복된 것 같다. 12kg의 배낭을 메고 오늘 늦어진 시간을 만회하기 위해 제법 빠른 속도로 걸었음에도 다리 근육이 부어 오르거나 통증이 나타나지 않는다. 역시 충분한 수분과 전해질 공급이 정답이었다. 다만, 어제 25km이상 길고 긴 내리막길을 내려왔고, 25일째 연속되는 행진으로 발바닥은 계속해서 위험 신호를 보내 주고는 있지만 발목, 무릎은 거뜬하다. 감사하다.
부지런히 걷다 보니 엄청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지나가던 경찰차에서 안쓰러운 눈빛으로 경찰관이 내다본다. “너……차 타고 싶어?” 하는 것 같다. 이런 비에는 더 걷기 힘들다는 판단을 했다. 온몸은 이미 비에 젖었으나 신발만 참아 주면 좋겠다는 생각하며 걸었다.
다행히 작은 마을에 ‘라 에르미타’라는 카페가 문을 열었다. 카페에 들어가자마자 양말부터 점검했다. 만일 신발에 물이 들어가 양말이 젖었다면 바로 물집이 잡히기 때문이다. 오늘도 엄청난 비를 맞았으나 다행히 양말은 뽀송뽀송 했다. 정말 잘 버텨주고 있다. 수고했다 내 등산화야! 잘 버텨주어 고맙다.
가는 길에 ‘콜룸브리아노스’, ‘푸엔테스 누에바스’, ‘캄포나라하’ 같은 작은 마을들을 여러 개 지나간다. 레온 이전까지는 정말 한적하고 너른 들판과 메세타 평야를 따라 걸어왔다면, 레온부터는 작은 마을과 도시들을 계속 연결하며 걷는다.
이제 200km 남았다는 이정표가 보인다. 정말 많이 왔다. 이제 좀 천천히 줄어들었으면 좋겠다.
마지막 마을을 지나니 온통 포도밭이다. 처음 순례길을 출발할 때는 아주 작은 잎새만 보이던 포도나무는 작은 포도 송이도 보인다.
아무도 없는 포도밭 길을 따라 한참이나 걷다 중간에 있는 숲에 들어가 잠시 비가 그치길 기다렸다. 비는 억수로 쏟아지고 천둥 번개는 내려치고, 이런 날씨에 어딘지 모르는 그것도 아무도 없는 숲속에 혼자 있다 보니 별의 별 생각이 다 든다. 처량 하기도 하고, 뭔지 모를 신선함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특히 빗 방울이 나뭇잎에 떨어지거나 모래 위에 떨어질 때, 또 바위에 떨어지거나 고여있는 웅덩이에 떨어질 때 소리가 각각 다르고 튀어 오르는 모양도 제각각 달랐다. 마치 오케스트라 연주 같은 공연 모습을 한참이나 바라보다 정신을 차렸다.
이제 7km 정도 더 가면 포도밭에 둘러싸인 오늘의 목적지 ‘카카벨로스’가 나올 것이다. 오늘은 1인실을 예약해 놓아 마음이 편하다. 엊저녁 어느 서양인의 편견으로 잠을 설쳤는데 오늘은 실컷 코 골며 자리라. “어서 힘내고 가자!”
카카벨로스에 다가갈수록 비도 그쳐가고 햇살이 나오기 시작한다. 힘을 내어 도착한 호스텔은 깨끗했고, 내가 예약한 방도 크고 편안했다. 샤워장 딸린 독실이니 서둘러 샤워할 필요도 없다. 배낭만 내리고 점심 먹으러 숙소 앞 식당으로 달려갔다. 시에스타에 들어가려 준비하던 종업원들이 뛰어 들어오는 나를 보고 놀라는 표정이다. 망설이고 있는데 주인 인 듯한 부인이 앉으라며 반겨준다.
주인과 종업원의 마인드 차이가 극명했다. 주인은 비를 맞고 걸어온 나를 한눈에 알아보고 종업원에 양해를 구한 후 받아 준 것이다. 그 큰 식당에 손님은 나 혼자뿐이다. 주문과 서빙도 종업원 대신 직접 하는 모습을 보며 1차 감동했고, 부인이 추천한 메뉴는 지친 순례자에게는 환상적이어서 2차 감격했다. 정말 배부르게, 맛있게 먹고 나왔다.
식사를 마치고 호스텔로 돌아오니 크리스가 리셉션에서 맥주를 마시고 있다. “크리스! 오늘 잘 걸어 왔어? 그런데 여긴 왠일이야?” “응 나도 오늘 여기에서 잘 건데?” “여기 예약했어?” 무슨 인연인지 모르겠으나 크리스하고는 산티아고 들어가는 날 까지 이렇게 매일 만나고, 매일 헤어졌다.
숙소 앞에 놓인 야외 테이블에 크리스와 말없이 오래 앉아 있었다. 서로 크리스의 아들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내가 하고 싶어하는 말을 크리스는 이미 알고 있는 듯했다. 말없이 맥주만 마시는 크리스와 하고 싶은 말을 참고 있는 나는 오랜 시간 앉아서 해가 넘어가는 풍경만 바라보았다.
뒤늦게 도착하는 사람들도 비교적 많았다. 아직 숙소를 정하지 못한 순례자들이 지친 모습으로 골목으로 들어가는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까미노 25일 차 하루는 포도밭 마을 카카벨로스에서 이렇게 저물어 갔다.
“부엔 까미노!” 여유 있는 목소리로 늦은 시각에 도착한 지친 순례자들을 격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