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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인생에도 오아시스가 필요하다

오늘은 내가 나폴레옹이다 (30)

by Kevin Kim

2024년 5월 18일 토요일 (29일 차)

마지막 100km, 사리아로 간다


드디어 ‘사리아’에 들어가는 날이다. 스페인 순례자 협회에서는 이곳 사리아에서부터 산티아고까지 걷는 모든 이에게 순례자 인증서를 준다. 체력과 시간이 허락되지 않는 경우 많은 순례자들은 이곳부터 걷기 시작하는 정차역 같은 도시다. 다만 프랑스에서부터 700Km를 걸어온 순례자들은 사리아 도착을 기쁨보다 아쉬움으로 맞이하기도 한다. 아무튼 오늘은 긴장되고 흥분되는 까미노이다.


이른 새벽 출발 준비를 마쳤다. 배낭을 들고 거실로 나가니 부인과 함께 온 인도 순례자가 아침을 먹다 같이 먹자고 초대한다. 아침에 공복으로 출발하는데 더 나을 것 같아 정중하게 사양하고 출발 준비를 마쳤다.

밖으로 나오니 비가 세차게 내린다. 진작 우산이나 새 판초 우의 하나 살 걸 후회하며 시간만 가고 있다. 인생은 늘 후회의 연속이다. 오늘은 ‘산실’이라고 하는 작은 산 마을을 넘어가는 코스인데 숲 속을 넘어가야 하기에 비가 조금 그치면 출발하는 게 나을 것 같아 머뭇거리고 있었다. 30분 이상을 기다렸다. 잦아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에이 그냥 비 맞고 가자. 난 순례자이다!

30분을 이곳에서 기다리다 별수 없이 비를 맞고 출발했다


길은 곧바로 숲을 향해 이어졌다. 비가 내리지만 아침 공기는 상쾌했고, 숲 속은 빗소리와 계곡 물소리 그리고 새들의 지저귐으로 요란스러웠다. 다소 무서울 수 있는 길이지만 이 숲 어딘가에 순례자들이 걷고 있을 것이란 믿음으로 걸었다.

'산실'로 올라가는 숲길은 아름답기까지 했다


얼마 걷지 않아 지도에 나오지 않는 작은 마을에 들어서니 알베르게가 하나 있고 순례자들이 나오고 있다. 아침 인사를 나누고 물어보니 자기들은 트리아카스텔라에서 숙소를 구하지 못해 어젯밤 늦게 이 마을까지 들어왔다고 한다. 사실 어젯밤에 우리 방에도 침대가 많이 비었었는데··· 하여간 순례자들은 자기 방식으로 잠자리를 구하고 순례길을 즐긴다.

130Km

마을 어귀에 작은 교회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그런데 이 이른 아침인데 조명이 켜져 있는 게 아닌가? 아침 기도하고 가야지 했는데 다가가니 갤러리라고 쓰여 있다. 이곳 어딘가에 순례자 여권에 손으로 직접 스탬프를 그려 주는 화가가 있다던데 여기였다. 반가웠지만 비에 젖은 옷과 손을 가지고 순례자 여권을 꺼낼 방법이 없어 갤러리만 돌아보고 그냥 출발했다.

숲 속에 있던 작은 갤러리


조금 더 산을 오르니 순례자를 위한 작은 샘 '폰테 데 오스 라메이로스(Fonte de os Lameiros)'가 나온다. 예전에는 이곳에서 순례자들이 마른 목도 축이고, 땀도 식히고 갔으리라. 비가 오지 않았다면 나도 이 샘에서 쉬었다 가고 싶었을 것이다.

라메이로스 샘


오늘도 어제처럼 비와 안개가 어우러져 앞도 잘 보이지 않는다.



계속해서 산길을 오르고 또 오르니 '산실'이 나온다. 이름이 예뻐 잔뜩 기대하고 왔는데 집 몇 채만 달랑 있는 산골이다. 그런데 산실을 넘어서니 이제부터는 끝없이 진흙 길을 따라 내려간다. 숲은 제법 깊었고 순례자들이 흩어져 걷는 바람에 내리막길에는 사람은 보이지 않고 빗소리와 산새 소리, 바람 소리만 들려왔다.

내리막에 매우 미끄러운 진흙길이어서 시간이 많이 걸렸다


한참을 내려서니 ‘산타 마리아 데 몬탄’이란 작은 성당이 나온다.

산타 마리아 데 몬탄 성당


예배보다는 마을 공동묘지로 이용되는 분위기이다. 우중에 산을 넘으니 배가 고팠다. 먹을 것을 찾는 날카로운 눈빛에 들어온 '몬탄 24시간 바’. 그냥 자판기다. 그래도 순례자들 사이에서는 제법 유명한 자판기다. 동전을 찾아 넣고 하리보 하나를 샀다.

아침으로 산 하리보 한 개


배고픈데 일용할 양식이 생겨 좋다며 걸어가면서 하리보를 막 개봉하는 순간 마치 오아시스처럼 ‘테라 데 루즈'라고 하는 도네이션 바가 나타났다. 알고 보니 여기는 나만 몰랐지 꽤 유명한 핫 플레이스였다.


히피 모습의 주인 부부가 연신 먹을 것을 내오고 비에 젖고 배고픈 순례자에게 따뜻한 커피 한 잔으로 위로해 주고 있다. 나는 달걀 2개와 자두도 2개 먹고 바나나도 하나 먹었다. 감사함으로 허기를 채우고 출발했다. 정말 이곳은 오아시스였다.

히피 부부가 운영 중인 도네이션 바

도네이션 바. 음식과 음료를 마음껏 먹고 마시고 쉼을 얻은 뒤 떠날 때 자기 형편대로 기부금을 박스에 넣어두고 가면 되는 곳이다. 대부분 적절한 식당이나 카페가 없는 장거리 구간 중간에 동네 사람이 이런 기부제 카페를 운영한다. 물론 돈 벌기 위해 하고 있다고 치부해 버리는 사람도 있었지만 배고프고 목마른 순례자들에게는 오아시스나 다름없고 정말 저렴한 가격에 허기를, 목마름을 해결하고 갈 수 있어 나는 참 고맙고 좋았다.


인생의 길에서도 이런 '오아시스'를 만나야 했다. 사막 길은 환경을 고려하면 가장 직선으로 길을 내 걷는 거리를 짧게 할 것 같아도 실제 사막 길을 보면 꼬불꼬불한 모양으로, 멀리 돌아가는 길처럼 나 있다고 한다. 조금 돌아가더라도 물이 있는 오아시스를 거쳐 가야 하기 때문이다. 조금 빨리 가는 것보다 오히려 돌아가더라도 오아시스를 거쳐 물과 휴식을 제공받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광야와 사막에서는 오아시스를 얼마나 거치느냐에 따라 여정의 힘듦이 결정되는 것이다.


우리 인생도 자주 사막과 광야에 비교되곤 한다. 그러나 나는 직선으로 가장 빨리 가려만 했다. 육체에 필요한 물과 음식, 영혼에 필요한 안식, 평강을 공급받아야만 인생의 광야를 무사히 건널 수 있는데도 말이다. 이런 간단한 진리를 이제야 깨닫고 내 인생의 오아시스 같은 예수를 찾기 위해 이곳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고 있다. 조금 더 일찍 알았더라면, 비록 조금 돌아가더라도 오아시스를 자주 들려 생수를 마시고 목마름을 해결하며 걸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내 인생의 길도 보다 더 평안했으리라···


막 출발하는데 뒤에서 갑자기 '크리스'가 또 나타났다. 이 정도면 우연이 아니라 정해진 운명인 듯하다. 같이 걷다 보니 다음 마을에 근사한 카페가 나오자 아침을 먹고 가겠다고 한다. 나는 방금 도네이션 바를 들렸기에 다시 헤어졌다.

"우리 다시 못 만나면 산티아고 대성당 광장에서 반드시 서로를 기다리기로 하자." 서로 헤어지면서 굳게 약속을 했다. 5월 5일 날 프로미스타에 들어가다 헤어진 캐나다의 밥, 테라 부부를 다시 만날 수 없어 이런 실수를 반복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 까르바야’ 마을을 지나는데 송아지 만 한 강아지 두 마리가 달려온다. 자기들은 반갑다는 데 나는 너무 무서웠다. 뒤에 오던 서양 순례자들에게 도움을 청해 이 강아지들을 넘기고 따라가다 보니 이놈들은 1km도 넘게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동네를 지나 한참을 따라가다 집으로 돌아갔다. 오늘은 소몰이가 없어 심심했었나 보다.

할 일 없던 차에 신이 났던 강아지들


드디어 사리아에 도착했다. 멀고 멀게만 느껴졌던 이 도시는 이제 700km를 걸어온 끝에 내 눈앞에 있다. 예약한 숙소는 시내를 가로질러 까미노에서 한참을 벗어난 곳에 있었다. 한참을 걸어 도착한 알베르게는 깨끗했고 주인은 친절했으며, 침대는 프라이버시를 존중하는 커튼이 있고 특히 샤워장은 넓고 더운물도 잘 나왔다.

사리아 시내를 관통하여 예약된 알베르게에 도착했다


그러나 아직 알베르게가 문을 열지 않았다. 숙소 앞 식당에서 햄버거를 주문했는데 크리스가 들어온다. 자기도 나와 같은 숙소에 묵는다고 말하다 서로 얼굴을 마주 보고 크게 웃었다. 이건 무슨 인연일까? 반복되고 있는 인연이 나에게 어떤 의미를 제공하고 있다고 믿었다. 크리스를 볼 때마다 나는 먼저 간 크리스 아들을 떠 올렸고 그의 평안한 안식과 크리스의 회복을 기도했다

알베르게 문이 열리길 기다리는 중


식사 후 빨래방에 함께 갔다. 세탁기에 빨래를 계속하다 보니 모자챙은 너덜너덜 다 떨어져 버렸고, 양말은 몇 군데가 구멍 났지만 그냥 신을 만하다. 그 단단한 등산화 바닥도 많이 달아져 흔적이 묘연하다. 700km를 넘게 걸어왔으니 그럴 것이다.


점심도 먹었겠다 빨래도 했겠다. 이제 남은 거리도 얼마 되지 않으니 시내 구경이나 해야지. 돌아다니다 어제 ‘담배 피우는 예수님’을 만나 포카리 스웨트 한 병 선물 받고 헤어졌다. 시내 구경을 계속하였지만 특별히 볼만한 것은 없고 길거리에 한국 순례자들만 많이 보인다. 많아도 정말 많았다. 그리고 이곳에서 출발하기 위해 새롭게 합류한 순례자들도 속속 들어오고 있었다.


모자도 새로 사고 저녁을 해결하기 위해 유명하다는 문어 요리 맛집에 찾아 갔는데 아직 시에스타 중이라고 문을 닫아 놓았다. 하는 수 없이 점심 먹었던 식당에 다시 가서 깔라마리와 치킨 윙을 주문하여 저녁으로 먹고 숙소로 들어갔다.

순례자들의 개인 프라이버시를 보호해준 알베르게


이른 저녁이지만 숙소는 매우 조용했다. 배낭을 정리하고 침상에 누웠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데 앞으로 해야 할 일도 많았고 더욱이 하고픈 일들은 더 많았다. 이런 일들을 해 내기 위해서는 용기도 필요하지만 현재를 이겨내는 힘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29일간 700여 km를 참고 참으며 걸어왔다. 양말도 옷들도 신발도 해어지고 구멍이 났으니 내 육체도 어딘가가 구멍이 났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적어도 내 육체 중 일부는 마모되는 듯한 어려움을 느끼기까지 했으니 순례길에 필요한 첫 덕목은 인내라고 생각했다.


끝까지 인내를 온전히 이루어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는 힘을 얻어야겠다. 참고 견디며 나머지 100km를 기쁘게 걸어가자. 스스로 다짐하며 하루를 마감했다.


나는 나에게 최면을 걸었다. “The times it's all out of reach, soldier on! (모든 게 내 뜻대로 되지 않을지라도, 그래도 이겨내자!)“


https://youtu.be/45SkYbCb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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