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내가 나폴레옹이다 (29)
2024년 5월 17일 금요일 (28일 차)
'라 라구나'에서 산을 넘어 '트리아카스텔라'까지
오늘 코스는 해발 1,200m에 있는 숙소를 출발하여 1,330m까지 약 3km를 오른 후 다시 23km 이상을 하산하여 해발 665m ‘트리아카스텔라’까지 가는 여정이다. 까미노 데 산티아고 3대 난 코스 중 하나이다.
가야 할 길이 멀기에 해드 랜턴을 쓰고 이른 새벽에 숙소를 나섰다. ‘오 세브레이로’로 오르는 길은 제법 가파르고 온통 진흙탕이었다. 한참 등산로를 오르다 뒤돌아본 ‘라 라구나’는 안갯속에 불빛만 가물거린다. 맑은 날 일출을 보며 이 길을 걸으면 참 예쁘겠구나···
어두운 산길을 얼마간 올라가니 어둠 속에 커다란 비석이 나온다. ‘갈리시아 진입점(Punto de Entrada a Galicia)’이다. 이제부터 레온 지방이 끝나고 갈리시아 지방이 시작된다는 표식이다. 갈리시아는 스페인 북서부에 있는 자치 공동체로 독특한 문화, 풍부한 역사 그리고 풍경 또한 다른 지방과 다르다고 한다. 언어도 포르투갈 언어와 유사한 갈리시아어를 사용한다는데, 지금까지 지나온 지방과 다른 독특한 문화와 풍경을 가지고 있어 기대가 크고 궁금하다.
이곳 갈리시아의 수도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라고 하니, 순례길도 이제 막바지에 접어든 것이다. 이 표지석에서는 기념사진 한 장 찍어야겠다. 한참을 기다리고 있으니 안갯 속에 한국 여성 한 사람이 올라온다. 반갑게 촬영을 부탁하니 한국말을 못 한단다. 호주에서 온 교포이고 이곳 스페인에 비즈니스가 있어 일을 시작하기 전에 순례길 일부라도 걷기 위해 왔다고 한다.
그리고 얼마 후 순례길 중 가장 아름답다는 마을 오 세브레이로가 안갯속에 나타났다. 안개에 싸인 마을은 신비함 그 자체였고, 이렇게 높은 산중에 화강암으로만 건축된 십 여체의 건물들이 질서 있게 자리하고 있다는 게 신기했다.
정상에는 '산타마리아 레알 도 세브레이로 성당'이라는 성역이 자리하고 있는데 우리나라에는 '왕립 오 세브레이로 성당'으로 알려진 성당이다.
약 9세기에 화강암으로 건축된 로마네스크 양식의 이 건축물은 애초 수도원의 일부였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날 미사를 드리던 도중 빵과 포도주가 진짜 고기 한 조각과 피로 변하는 기적이 나타나게 되자 전 유럽에서 참배자들이 모여들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교황청에서 이 성혈을 빼앗아 가고자 했으나 성혈을 실은 마차가 움직이지 않아 포기하고 이곳 성당에 보관 중이라 하는데 성당문이 닫혀있어 예수님의 성혈과 성당 내부를 볼 수 없어 아쉬웠다.
이제 본격적으로 내리막이 시작되었다. 순례길에서는 항상 오르막보다 내리막이 더 힘들었다. 오늘이 그런 날이다.
‘리나레스’라는 마을을 지나 얼마를 가니 산 구릉 위에 '알토 데 산 로케'라고 하는 순례자 동상이 나온다. 이곳에 부는 바람이 너무 거세 모자가 날아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붙잡고 고통 중에 있는 순례자 모습을 형상화했다고 한다.
오 세브레이로를 넘은 많은 후기를 보면 계절과 관계없이 추위와 바람으로 고생했다는 이야기가 제일 많았다. 오늘도 그랬다. 5월 중순 날씨치고는 비바람이 불어 상당히 춥고 특히 손이 아주 시리다.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보면 방풍이 제대로 되지 않은 옷을 입으면 심장에 무리가 될 것 같았다.
방금 들어온 소식에서도 40대의 젊은 프랑스 순례자가 ‘수비리’ 근처에서 실종되었다 했다가 얼마 후 심장마비로 돌아가신 채 발견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안타깝게도 70대 한국 순례자도 심장마비와 뇌출혈로 긴급 후송되었다는 좋지 않은 전갈이 도착했다. 이 순례자는 다행히 대학병원에서 뇌 수술 후 회복 중이란 소식이 며칠 후 전해졌다.
매년 몇 명의 사망자가 계속해서 나오는 걸 보면 예사롭게 볼 것만은 아닌 것 같다. 나를 도와준 영국 의사 말에 의하면 이곳 사망자 대다수가 심장마비이고, 전해질 부족과 오늘 같은 급작스런 날씨 변화에 제대로 대비하지 않은 부주의가 원인이라고 하니 새겨 들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사실 순례자 무덤은 오르막에 있는 게 아니라 대부분 내리막이나 평지에 더 많았다는 점, 비교적 젊은 연령이 많다는 점에 주의 깊게 들어야 할 이야기다. 아래 신문 기사에서처럼 올해만 해도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유명을 달리하였다.
작은 마을 이름이 '콘데사 호스피탈’인 걸로 보면 예전에 순례자 병원이 있었겠다고 했는데, 소를 몰고 가는 마을 아저씨에게 물어보니 그렇단다. 스페인에 'Hospital'이란 이름의 마을이 많은데 대부분 순례자를 위한 치료소가 있던 마을이라고 한다.
이곳 갈리시아 지방으로 넘어오니 이정표가 잘 정리된 편이고, 길도 정비한 흔적이 보일 정도로 단정하여 걷기가 편했다. 다른 지방은 주로 붉은 사암이 많았다면 이곳 갈리시아는 단단한 화강암이 많은 것 같다. 화강암을 사용하다 보니 건물도 투박하고 강하게 보이는 경향이 있다. 오 세브레이로 마을도 그랬고 지금 이 마을도 거친 화강암으로 단단하게 지어진 건물, 교회들이 눈에 들어온다.
또한, 그동안 봐왔던 너른 평야는 산지로 바뀌고, 줄기차게 펼쳐져 있던 밀밭, 보리밭, 유채밭, 포도밭은 모두 목축업으로 바뀌었다. 각 마을에도, 순례길에도 소들의 분비물이 많고 냄새도 범상치 않다. 오늘 지나가고 있는 모든 마을에 향기롭지 못한 냄새가 진동하고, 송아지 만한 소몰이 강아지들이 마을 골목을 자유롭게 뛰 다니고 있어 불안할 정도다.
산비탈 경사지도 마치 스위스 어느 마을에 온 것 같다. 소를 많이 키우기 때문인지 경사지마다 목초지를 개발하여 ‘오차드 그라스’와 꼭 우리나라 쇠뜨기 풀 같은 소먹이 풀들이 많고, 스위스에서 보았던 ‘노란 버터컵 꽃’들도 만발하였다.
숙소에서 출발하여 13km를 오르고 또 내려왔다. 비는 거칠게 내리고 배는 고픈데 나는 산속 깊은 곳으로 들어와 있어 마땅히 뭘 먹을 수 없다. 바람막이 점퍼를 고쳐 입는데 주머니에 뭔가가 잡힌다. 이틀 전 아침, 암바스메스타스 식당에서 준 바게트 몇 조각을 무심코 주머니에 넣어 두었는데 이 빵들이 습기에 젖은 채 주머니 속에 그대로 있는 것이다. 감사하다 그것도 눈물 날 정도로 감사했다. 허기진 상태에서 비 오는 숲길을 걸으며 먹는 비에 젖은 빵 조각은 정말이지 맛있었다.
온도는 더 내려갔고 비는 그칠 기세가 없다. 온통 안개로 앞도 잘 보이지 않는다. 서둘러 가야지 했는데 내리막이 생각보다 심하다. 아직도 14~15km 정도를 더 내려가야 할 텐데 이 정도 경사라면 시간이 많이 걸릴 듯하여 걱정이라고 하자 옆에 걷던 어떤 사람이 바로 앞에 나오는 '비두에도' 마을부터는 경사가 더 심해질 거라고 한다.
앞서가던 스페인 아가씨에게 "이게 비인가? 안개인가? 구름인가?" 물어보니 대답이 멋지다. “난 신경 안 써 그냥 지금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할 뿐!” 그렇다. 이게 비면 어떻고 안개나 구름이면 뭐가 달라질 것 인가? 그냥 안전하게 다치지 않고 산 아래 마을까지 내려가는데 만 최선을 다하자.
갑자기 내리막길 바닥이 너덜지대로 바뀌었다. 화산 활동이나 빙하 활동의 결과, 동결과 해빙 풍화 작용으로 인해 암석의 최상층이 부서져 암석층이 들쭉날쭉하고 각진 바위 또는 돌멩이들로 남게 되는데 이런 지질 구조가 너덜지대로 되는 것이다. 독일에서는 '바위의 바다(Felsenmeer)'라고 부른다. 주로 비탈을 따라 형성되지만 가끔은 평지에도 형성되기도 한다는 데 순례길을 보면 다 이해가 되었다.
'폰프리아'를 지나 드디어 '비두에도'에 도착했다. 여기서부터는 진흙길 급경사 내리막이 계속되었다. 등산화 방수가 잘 유지되어 다행이었지만 길이 여간 미끄러운 게 아니어서 스틱을 이용해 조심조심 내려오느라 시간이 제법 많이 걸려 ‘트리아카스텔라’에 도착했다.
전화로 확보한 알베르게에 도착하니 주인아저씨가 정말 착해 보인다. 많은 한국 순례자의 경험을 이야기해 주는 데 대부분 긍정적 평가가 많았다.
저녁 시간이 되어 주인아저씨가 추천해 주는 식당으로 갔다. 식당으로 가는 길에 빨래방 앞에서 '방랑자'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한국 청년을 만나 저녁에 초대하고 반강제로 식당으로 데려갔다. 소문에 의하면 목사님 아들이라는 이 청년은 내가 볼 때마다 고개를 숙이고 있거나, 담배를 피우거나 과음 수준의 음주를 하고 있어 무언가 많은 상처가 있다 싶어 대화 기회를 노리고 있던 차였다. 며칠 전 ‘나바레테’에서 만난 그 청년이다.
정말 커다란 식당에는 이 마을에 묵는 모든 순례자가 다 왔는지 온통 순례자뿐이다. 빗속에 무사히 산길을 내려온 사람들은 목소리 높여 떠들고, 먹고, 마시고 즐기고 있다. 이제 내일이면 ‘사리아’로 들어가기 때문에 순례길은 점점 마지막을 향해 가고 있고, 순례자들 마음은 안도와 아쉬움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는 듯하다.
식당에는 크리스도 있고, 이탈리아 아가씨도, 브라질 3형제도, 인도에서 온 부부도, 대만 부부도, 기타 여러 명의 한국 순례자들도 들어온다. 오늘 모두 고생했을 터. 모두 반갑게 인사하고 신나게 식탁에 둘러앉는다.
"목사님 아들이라며? 많이 힘들지? 어릴 적 교회 집사님 아들과 싸우면 항상 네가 혼났을걸? ‘네가 참아야지?’ 이런 이야기 많이 들었지? 이게 너에게 많은 상처가 됐을 것 같구나." 매일 술과 담배를 달고 사는 이 청년을 벼르고 벼르다 오늘 딱 만난 것이니 직설적으로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아저씨도 교회 다니지만 오늘은 너랑 포도주 한잔하고 싶은데?" 경계의 눈빛이 사라졌다. "음주, 흡연이 꼭 비성경적이라 이야기하진 않겠다. 그러나 모든 것이 가능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닌 것 같다. 더군다나 다른 사람에게 덕을 세우지 못하는 것이라면 우리는 이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술과 담배는 일시적인 위안은 될 수 있지만, 결코 해결책이 되지 않으니 운동, 명상, 취미 활동으로 바꿔보면 좋겠다···”
깊은 대화로 밤도 깊어 갔다. 어느새 붉은 포도주 한 병이 다 비워졌다. 처음 만난 사람끼리 흔하지 않은 대화로 밤이 깊어갔다. 청년의 이야기를 많이 들어주려 애를 썼다. 그러나 이 청년은 말이 없는 편이었다. 그래도 이날 이후 얼굴이 밝아졌고 가끔 만날 때마다 환하게 인사하는 게 많이 위로가 되고 있다고 생각했다. 사리아 시내에서 우연히 만난 나에게 포카리 스웨트 한 병을 수줍게 건네주고 갔다. 다시 만나면 더 맛있는 것 사주고 싶은 청년이다.
우리는 스스로가 인지하지 못한 가운데 목회자 자제들에 대한 편견과 정죄함에 익숙해져 있다. 차라리 이런 청년들의 아픔과 감정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공감해 주고 그가 느끼는 상처와 고통을 인정해 주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우리 교회가, 성도들이 한 번쯤은 생각해 볼 이유가 충분하다고 결론 내렸다. 나는 이 이후에 이 청년의 별명을 ‘방랑자’에서 ‘담배 피우는 예수님’으로 바꿔 주었다.
청년과 식사를 마치고 숙소에 돌아왔다. 주인아저씨가 이야기 나누고 싶어 해 로비에 마주 앉아 한참을 이야기 나누었다. 자기가 여기 알베르게를 운영하며 만난 한국 청년들에 대해 문화 차이로 인한 오해와 유럽 젊은이들과 달리 예의 바른 점에 대해 이야기 나누었고, 단기간 경제적 성장을 이룬 원동력에 대해 내 견해를 묻기도 했다. 마침 내가 베이비 붐 세대여서 내 경험들만 이야기해 주어도 큰 도움이 되는 것 같았다.
이 숙소 로비에는 보물급 유물이 많았다. 알아보는 사람이 없어 서운했다는데 내가 딱! 알아본 것이다. 얼마 전 스페인에 큰 물난리가 났는데 한 성당이 완전히 잠겼단다. 거기 보수 공사하는 사람 중에 아는 사람이 “중요한 듯한 물건들을 다 버리고 있다”라고 하여 찾아가 수거해 왔다고 한다. 성전과 성가대 석에서 가져온 나무로 테이블을 만들었고, 주교들이 사용하던 집기류, 의복들이 로비에 가득하였다.
“조심해 내일 아침에 내가 하나 가지고 갈지 몰라!”. "그렇지 않아도 어느 순례자가 한 개 가지고 갔어." 하며 씁쓸해했다.
내일도 산을 넘어야 하는데 창 밖으로 밤새 비 내리는 소리가 요란하다. 오늘 밤도 코 고는 소리, 비 내리는 소리와 함께 깊은 잠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