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석 마니아의 씁쓸한 최후
나는 구석 마니아다. 몸이 구석에 닿아야 안정감을 느낀다. 그리고 구석을 좋아하던 취향 때문에 안온한 풍경이었지만 허점 역시 많았던 이 땅을 사게 되었다. 굳이 애틋함을 실어 평가해보면 이 땅과 운명이었던 것 같고, 객관성만 실어서 보면 성급함의 말로였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하면서 회사에서 제공해 준 사택에 들어가 살게 되었다. 방배동 구름다리 근처 낡은 3층짜리 빌라의 1층이었다. 제일 작은 방 네 개를 합친 크기의 큰 방이 하나 있었고 제일 작은 방 두 개 정도의 작은방과 제일 작은 방이 있었다. 나는 세 명이 쓰는 큰 방에 배정되어 가운데 자리를 써야 했다. 양쪽 구석은 이미 선배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벽을 느낄 수 없는 자리에 누워 있자니 연못 위에 떨어져 이리저리 부유하는 나뭇잎 같았다.
지금의 땅을 인터넷 매물 사진으로 봤을 때 어딘가 정겨움이 있었는데 실제로 와서 보니 따뜻했고 무엇보다 뒤편에 대나무 숲이 병풍처럼 둘러져 있어 구석 바이브가 느껴져 좋았다. 부동산에 연락해서 상세주소를 받으면서 뜻밖의 소식을 들었다. 땅이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고 나눠진 200평 땅은 50m쯤 떨어진 곳에 있었으며 맹지라는 사실이었다. 따로 떨어진 땅은 삼면이 대나무 숲인지라 해도 오전에만 잠깐 드는 곳이었다. 아무리 좋은 땅이어도 이렇게 떨어진 땅은 영 불편할 것 같았다. 그래, 다른 땅을 더 알아보자. 그렇게 남편은 다시 인터넷에 부여 매물을 올린 부동산을 찾아냈고 우리는 보령으로 갔다.
보령은 부여 북서쪽과 인접해 있는 도시여서 부동산 사장님은 우리에게 주로 은산면, 외산면 등 부여의 북서쪽 지역의 땅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보여주는 땅들이 죄다 휑한 평지에 가운데 땅(구석을 달라!) 이거나 두 면이 산인데 뚫린 면이 북쪽이거나(북향은 끝내주는 경치가 아니고는 어지간해서 도전하면 안 된다) 너무 산속으로 들어가 있는 데다 계곡형이라 겨울 칼바람 길이 되는 곳이거나 호수(호수 앞은 괜히 습하기만 하다)가 보이는 논이었다. 그러면서도 가격은 우리가 봤던 땅보다 비쌌다. 이런 땅들을 보고 나자, 그깟 땅 좀 떨어진 게 대수냐 싶었다. 이렇게 구석지고 햇살도 참 따뜻하게 비치고 땅 자체가 포근한 기운을 가지고 있는 땅인데. 눈에 콩깍지가 단단히 써졌다.
결국 우리는 지금의 땅을 매입했다. 10년을 사서 가지고만 있다가 땅을 파는 원 주인에게 “왜 여태껏 집을 안 지으셨어요?”라는 멍청한 질문(나중에야 그때 사모님이 왜 묘한 표정을 지었는지 알게 되었다)도 하며 계약을 마쳤다. 그리고 몇 개월 뒤 한참 집 공사가 진행되던 5월 중순경에야 그 표정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 “뭐지? 얘는 왜 당연한 걸 묻지? 그것도 모르고 이 땅을 사는 건가? 호구 잘 잡았네.” 하는 복합적인 감정이 담긴 표정이었을 테다. 10월 말에 땅을 계약하고 칠 개월이 흐른 5월의 어느 날, 여동생과 함께 집 공사 현장을 구경 왔던 제부가 소리쳤다. “저기 소가 있어요!!!”
땅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이라면 아시겠지만, 축사와 송전탑은 기피대상 1,2위를 다툰다. 매물을 살펴볼 때 기본적으로 체크해야 할 사항이다. 당연히 우리도 처음 이 땅을 봤을 때 뒤쪽 사선 100m 위치에 축사가 있다는 걸 알았다. 단지 낡아서 이제 사용하지 않는 축사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우리 땅에 인접한 마을 안 도로를 따라 넘어가면 바로 뒤편에 허물어져가는 작은 간이 축사가 있었고 그곳에는 염소 대여섯 마리만 있을 뿐이었다. 우리는 그 간이 축사와 저쪽 소 축사가 모두 같은 사람의 소유라고 착각했고, 소 축사 운영은 이제 중단하고 간이 축사에 염소만 키우는구나 마음대로 생각했다. 소 축사에는 소가 없는 줄 알았다. 동네 어르신 한 분이 낯선 우리를 보러 나오셨길래 축사 냄새가 많이 나냐고 여쭸는데 냄새는 거의 안 난다고 대답해주시길래, '그렇지 염소 몇 마리에 뭘 냄새가 얼마나 나겠어' 했더랬다. 왜 우리는 소 축사 근처까지 가보지 않았을까. 조금만 걸어가 봤다면 소가 보였을 텐데. 왜 나는 어르신께 여기 염소 축사 얘기하시는 거죠? 하고 물어보지 않았을까. 요즘처럼 축사 허가 내기 어려운 때에 멀쩡한 축사를 왜 운영하지 않을 거라고 착각했을까?
그렇게 눈앞에 멀쩡한 축사를 보고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착각한 사람은 우리밖에 없을게다. 하지만 이 땅의 단점은 그것만은 아니었다. 귀촌 준비를 하며 읽었던 ‘땅 볼 때 주의할 사항’에 관련된 여러 글들은 이미 눈에 콩깍지가 씐 후에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중대한 실수를 저지른 사람이라 자격은 별로 없지만 그래도 주의사항 몇 가지를 적어본다.
첫째, 주변에 축사나 송전탑을 피할 것. 특히 돼지, 닭 축사의 경우 집 근처뿐 아니라 반경 3km 이내에 없는지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돼지와 닭은 냄새가 정말 상당하며 꽤 멀리 있어도 바람의 흐름에 따라 냄새가 난다. 둘째, 하루 종일 있어볼 것. 오전, 한낮, 오후 해 질 녘 하루 종일 해가 잘 들어오는지 볼 것. 우리 땅은 오전, 한낮에는 해가 잘 들어오는데, 서쪽에 인접한 대나무 숲 때문에 겨울에는 해가 오후 3시면 사라진다. 셋째, 도로에 닿지 않는 맹지는 절대 피할 것. 이건 너무 기본적인 얘기이긴 하다. 눈에는 도로가 보여도 지적도상 도로가 아닐 수 있으니 반드시 확인한다. 넷째, 전기, 인터넷. 상수도 연결이 쉬운지 확인한다. 근처까지 들어와 있지 않다면 연결하는데 돈도 많이 들고 남의 땅을 거쳐서 들어와야 할 경우 골치 아파진다. 다섯째, 오폐수 시설 또는 구거와 면해 있는지 확인한다. 이 부분 때문에 우리도 낭패를 볼 뻔했다. 땅 근처에 맨홀 뚜껑이 있어서 오폐수 시설이 있다고 착각(정확히 확인하지 않고 왜 늘 착각할까)하고 땅을 매입했는데 나중에 토목설계사무소에 확인해보니 오폐수 시설은 들어와 있지 않았고 우리 땅은 구거에 인접해있지도 않았다. 구거로 연결하려면 두 필지의 남의 땅 밑으로 관을 묻어야 했다. 이 부분은 놓치기 쉬운데 반드시 땅 매입 전 확인해야 한다. 이 부분이 해결이 안 되면 건축 허가가 나오지 않는다. 우리는 다행히도 동네 분께서 토지사용승낙서를 흔쾌히 써주셔서 해결되었다.
집을 짓던 20년 5월에 축사에 소가 있다는 걸 알게 된 후 한 달 동안 매일 후회의 말을 내뱉었다. 신기하게도 소의 존재를 인식하고 난 뒤부터 축사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그 전에는 요만큼도 나지 않았던 냄새가. 사람의 인식은 얼마나 얄팍한가. “왜 그때 축사 근처에 가보지 않았을까, 소가 있는 줄 알았다면 절대 이 땅을 사지 않았을 텐데” 하고 매일 후회하는 내게 남편은 “이미 일어난 일 바꿀 수 없잖아. 이 동네가 텃세도 없고 동네 분들도 좋으시잖아. 이런 동네 만난 것도 복 아닐까.” 하고 혼자 멋진 척을 다 했다. 하지만 사실이기도 하다. 그 받기 어렵다던 토지사용승낙서(인감증명서까지 떼줘야 하는 매우 귀찮은 일이며, 아무도 자기 땅에 남의 것을 묻어주고 싶어 하지 않는다.)도 순순히 내어주셨고 동네 분들 모두 텃세의 ‘ㅌ’도 모르는 분들이셨다. 그리고 지금에서야 할 수 있는 말이지만 그때 이 땅을 사지 못했다면 귀촌도 없었을지 모르겠다. 20년에 코로나가 터졌고 건축비도 크게 상승했다. 집을 지을 엄두를 내지 못했을 수도 있다.
결과론적으로 우리는 이곳에 올 운명이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