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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린결말 Mar 22. 2022

땅을 볼 때 콩깍지는 금물

구석 마니아의 씁쓸한 최후

나는 구석 마니아다. 몸이 구석에 닿아야 안정감을 느낀다. 그리고 구석을 좋아하던 취향 때문에 안온한 풍경이었지만 허점 역시 많았던 이 땅을 사게 되었다. 굳이 애틋함을 실어 평가해보면 이 땅과 운명이었던 것 같고, 객관성만 실어서 보면 성급함의 말로였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하면서 회사에서 제공해 준 사택에 들어가 살게 되었다. 방배동 구름다리 근처 낡은 3층짜리 빌라의 1층이었다. 제일 작은 방 네 개를 합친 크기의 큰 방이 하나 있었고 제일 작은 방 두 개 정도의 작은방과 제일 작은 방이 있었다. 나는 세 명이 쓰는 큰 방에 배정되어 가운데 자리를 써야 했다. 양쪽 구석은 이미 선배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벽을 느낄 수 없는 자리에 누워 있자니 연못 위에 떨어져 이리저리 부유하는 나뭇잎 같았다.


지금의 땅을 인터넷 매물 사진으로 봤을 때 어딘가 정겨움이 있었는데 실제로 와서 보니 따뜻했고 무엇보다 뒤편에 대나무 숲이 병풍처럼 둘러져 있어 구석 바이브가 느껴져 좋았다. 부동산에 연락해서 상세주소를 받으면서 뜻밖의 소식을 들었다. 땅이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고 나눠진 200평 땅은 50m쯤 떨어진 곳에 있었으며 맹지라는 사실이었다. 따로 떨어진 땅은 삼면이 대나무 숲인지라 해도 오전에만 잠깐 드는 곳이었다. 아무리 좋은 땅이어도 이렇게 떨어진 땅은 영 불편할 것 같았다. 그래, 다른 땅을 더 알아보자. 그렇게 남편은 다시 인터넷에 부여 매물을 올린 부동산을 찾아냈고 우리는 보령으로 갔다.


보령은 부여 북서쪽과 인접해 있는 도시여서 부동산 사장님은 우리에게 주로 은산면, 외산면  부여의 북서쪽 지역의 땅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보여주는 땅들이 죄다 휑한 평지에 가운데 (구석을 달라!) 이거나  면이 산인데 뚫린 면이 북쪽이거나(북향은 끝내주는 경치가 아니고는 어지간해서 도전하면  된다) 너무 산속으로 들어가 있는 데다 계곡형이라 겨울 칼바람 길이 되는 곳이거나 호수(호수 앞은 괜히 습하기만 하다) 보이는 논이었다. 그러면서도 가격은 우리가 봤던 땅보다 비쌌다. 이런 땅들을 보고 나자, 그깟   떨어진  대수냐 싶었다. 이렇게 구석지고 햇살도  따뜻하게 비치고  자체가 포근한 기운을 가지고 있는 땅인데. 눈에 콩깍지가 단단히 써졌다.


결국 우리는 지금의 땅을 매입했다. 10년을 사서 가지고만 있다가 땅을 파는 원 주인에게 “왜 여태껏 집을 안 지으셨어요?”라는 멍청한 질문(나중에야 그때 사모님이 왜 묘한 표정을 지었는지 알게 되었다)도 하며 계약을 마쳤다. 그리고 몇 개월 뒤 한참 집 공사가 진행되던 5월 중순경에야 그 표정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 “뭐지? 얘는 왜 당연한 걸 묻지? 그것도 모르고 이 땅을 사는 건가? 호구 잘 잡았네.” 하는 복합적인 감정이 담긴 표정이었을 테다. 10월 말에 땅을 계약하고 칠 개월이 흐른 5월의 어느 날, 여동생과 함께 집 공사 현장을 구경 왔던 제부가 소리쳤다. “저기 소가 있어요!!!”


땅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이라면 아시겠지만, 축사와 송전탑은 기피대상 1,2위를 다툰다. 매물을 살펴볼 때 기본적으로 체크해야 할 사항이다. 당연히 우리도 처음 이 땅을 봤을 때 뒤쪽 사선 100m 위치에 축사가 있다는 걸 알았다. 단지 낡아서 이제 사용하지 않는 축사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우리 땅에 인접한 마을 안 도로를 따라 넘어가면 바로 뒤편에 허물어져가는 작은 간이 축사가 있었고 그곳에는 염소 대여섯 마리만 있을 뿐이었다. 우리는 그 간이 축사와 저쪽 소 축사가 모두 같은 사람의 소유라고 착각했고, 소 축사 운영은 이제 중단하고 간이 축사에 염소만 키우는구나 마음대로 생각했다. 소 축사에는 소가 없는 줄 알았다. 동네 어르신 한 분이 낯선 우리를 보러 나오셨길래 축사 냄새가 많이 나냐고 여쭸는데 냄새는 거의 안 난다고 대답해주시길래, '그렇지 염소 몇 마리에 뭘 냄새가 얼마나 나겠어' 했더랬다. 왜 우리는 소 축사 근처까지 가보지 않았을까. 조금만 걸어가 봤다면 소가 보였을 텐데. 왜 나는 어르신께 여기 염소 축사 얘기하시는 거죠? 하고 물어보지 않았을까. 요즘처럼 축사 허가 내기 어려운 때에 멀쩡한 축사를 왜 운영하지 않을 거라고 착각했을까?


그렇게 눈앞에 멀쩡한 축사를 보고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착각한 사람은 우리밖에 없을게다. 하지만 이 땅의 단점은 그것만은 아니었다. 귀촌 준비를 하며 읽었던 ‘땅 볼 때 주의할 사항’에 관련된 여러 글들은 이미 눈에 콩깍지가 씐 후에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중대한 실수를 저지른 사람이라 자격은 별로 없지만 그래도 주의사항 몇 가지를 적어본다.


첫째, 주변에 축사나 송전탑을 피할 것. 특히 돼지, 닭 축사의 경우 집 근처뿐 아니라 반경 3km 이내에 없는지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돼지와 닭은 냄새가 정말 상당하며 꽤 멀리 있어도 바람의 흐름에 따라 냄새가 난다. 둘째, 하루 종일 있어볼 것. 오전, 한낮, 오후 해 질 녘 하루 종일 해가 잘 들어오는지 볼 것. 우리 땅은 오전, 한낮에는 해가 잘 들어오는데, 서쪽에 인접한 대나무 숲 때문에 겨울에는 해가 오후 3시면 사라진다. 셋째, 도로에 닿지 않는 맹지는 절대 피할 것. 이건 너무 기본적인 얘기이긴 하다. 눈에는 도로가 보여도 지적도상 도로가 아닐 수 있으니 반드시 확인한다. 넷째, 전기, 인터넷. 상수도 연결이 쉬운지 확인한다. 근처까지 들어와 있지 않다면 연결하는데 돈도 많이 들고 남의 땅을 거쳐서 들어와야 할 경우 골치 아파진다. 다섯째, 오폐수 시설 또는 구거와 면해 있는지 확인한다. 이 부분 때문에 우리도 낭패를 볼 뻔했다. 땅 근처에 맨홀 뚜껑이 있어서 오폐수 시설이 있다고 착각(정확히 확인하지 않고 왜 늘 착각할까)하고 땅을 매입했는데 나중에 토목설계사무소에 확인해보니 오폐수 시설은 들어와 있지 않았고 우리 땅은 구거에 인접해있지도 않았다. 구거로 연결하려면 두 필지의 남의 땅 밑으로 관을 묻어야 했다. 이 부분은 놓치기 쉬운데 반드시 땅 매입 전 확인해야 한다. 이 부분이 해결이 안 되면 건축 허가가 나오지 않는다. 우리는 다행히도 동네 분께서 토지사용승낙서를 흔쾌히 써주셔서 해결되었다.


집을 짓던 20년 5월에 축사에 소가 있다는 걸 알게 된 후 한 달 동안 매일 후회의 말을 내뱉었다. 신기하게도 소의 존재를 인식하고 난 뒤부터 축사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그 전에는 요만큼도 나지 않았던 냄새가. 사람의 인식은 얼마나 얄팍한가. “왜 그때 축사 근처에 가보지 않았을까, 소가 있는 줄 알았다면 절대 이 땅을 사지 않았을 텐데” 하고 매일 후회하는 내게 남편은 “이미 일어난 일 바꿀 수 없잖아. 이 동네가 텃세도 없고 동네 분들도 좋으시잖아. 이런 동네 만난 것도 복 아닐까.” 하고 혼자 멋진 척을 다 했다. 하지만 사실이기도 하다. 그 받기 어렵다던 토지사용승낙서(인감증명서까지 떼줘야 하는 매우 귀찮은 일이며, 아무도 자기 땅에 남의 것을 묻어주고 싶어 하지 않는다.)도 순순히 내어주셨고 동네 분들 모두 텃세의 ‘ㅌ’도 모르는 분들이셨다. 그리고 지금에서야 할 수 있는 말이지만 그때 이 땅을 사지 못했다면 귀촌도 없었을지 모르겠다. 20년에 코로나가 터졌고 건축비도 크게 상승했다. 집을 지을 엄두를 내지 못했을 수도 있다.


결과론적으로 우리는 이곳에 올 운명이었나 보다.


집 옆 도로를 넘어가면 저렇게 벽이 휑 뚫린 간이 축사가 있다. 저것만 아니었다면 소 축사에 소가 없다는 희한한(?) 발상은 하지 않았을 텐데. 하지만 지금은 우리 마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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