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열린결말 Mar 25. 2022

직사각형 집을 '효율'적으로 짓는 일

효율 앞에 로망 따위 산산조각

시골로 갈 결정을 한 뒤부터 우리가 살 집을 어떻게 지을 것인지 상상해 보기 시작했다. 내게는 이랬으면 좋겠다 보다는 이렇게는 절대 하지 않겠다는 확고한 생각이 있었다. 짙은 청록색 지붕이 복잡하게 솟아 있고 흰색 또는 나무색 또는 파스텔톤의 가로 막대가 켜켜이 이어진 벽이 있고 방부목 데크에 난간이 서 있는 그런 집. 나중에야 내가 선호하지 않는 것이 아스팔트 슁글(지붕재)과 시멘트 사이딩(벽 외장재)이라는 건축 자재임을 알게 되었다. 물론 두 자재는 여전히 훌륭한 건축자재로 널리 쓰이고 있고 선호하는 분들도 많다. 어느 자재가 더 낫다의 문제가 아니라 순전히 취향의 영역인 셈이다. 그러던 중 전원주택을 소개하는 웹페이지에 올라온 집을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막연히 생각해오던 우리의 취향을 거의 그대로 구현한 집이었다. 단층에 회색 징크 박공지붕, 흰색의 깔끔한 스타코 플렉스 벽면, 직사각형의 단순한 외관, 끝에서 끝까지 이어진 긴 처마. 단정하고 아담하며 절제미가 있었다. 시골 풍경에도 자연스레 녹아 있었다. 너무 시골집 같지도 않으면서 그렇다고 전원주택이라고 뽐내지 않는. 우리는 이 집을 모티브로 삼았다.



unplash에서 찾은 시멘트사이딩에 난간이 있는 집. 이 자체로도 목가적이고 아름답다. 결국 어떤 자재를 쓰느냐 보다는 어떻게 구현하느냐가 더 중요한 것 같다.



남편에게는 집 짓기에 관한 몇 가지 확고한 원칙이 있었다. 집은 반드시 직사각형 모양일 것. 집 크기는 25평 정도로 작게. 무엇보다 효율을 최우선으로 고려하기. 25평과 직사각형 모양 역시 효율을 제일 우선으로 생각해서 세운 원칙이니, 결국은 효율이 유일무이한 원칙인 셈이었다. 


직사각형 모양의 집은 건축비가 늘어나는 것을 방지하고 하자가 발생할 가능성도 줄여준다. 많은 주택이 거실이 좀 더 앞으로 튀어나온다거나 방이 옆으로 튀어나오거나 해서 다각형 모양으로 짓는다. 자재가 더 많이 들어가게 되고 지붕 모양도 복잡해져 건축비가 늘어난다. 또한 면과 면이 만난 모서리는 하자가 발생하기 쉽다. 모서리가 단 네 개 밖에 나오지 않는 직사각형 모양은 하자 발생 가능성도 그만큼 줄어든다. 25평으로 작게 짓기로 한 것도 결국 건축비 때문이었다. 나중에 나이 들어 청소할 거 생각해 봐라, 둘이 살기에 25평이면 딱 적당하다,라고 길게 얘기해봐야 다 부연 설명이다.


'효율이 곧 돈'이라는 명제 앞에서 건축 탐구 집, 오늘의 집 전원주택 편, 핀터레스트 등에서 찾아 모은 아름다운 집 이미지들은 명함도 못 내밀었다. 오픈 천장? 턱도 없다. 수직공간을 따뜻하게 데우거나 차갑게 식히려면 냉난방비가 많이 든다. 중정? 말도 안 되는 소리. 문밖만 나가면 자연인데 뭐 하러 쓸데없이 집 안에 정원을 만드나. 오픈 계단? 허허 이 사람이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네. 다락 공간과 1층 사이는 반드시 벽과 문으로 막아야지. 냉난방비 많이 든다니까. 이렇게 나는 꿈꿔왔던 로망과 남편이 내게 심어놓은 ‘효율성’ 사이에서 힘겹게 싸워야 했다.


집에 대한 대원칙이 어느 정도 세워진 후 평면도 그리기에 돌입했다. 보통 평면도는 건축사와 만나 진행한다. 자금에 여유가 있다면 작게는 몇백만 원에서 많게는 몇천만 원까지 설계비가 따로 드는 건축사사무소를 찾겠지만, 앞서 말했듯이 집 짓기에 투입하기로 한 금액에 한계를 정했던 우리는 거의 허가 절차만 진행하는 건축사사무소에 맡길 계획이었다. 집의 평면도는 우리가 직접 그리기로 했다.


절대 포기할 수 없던 로망 한 가지는 다락이었다. 그것만큼은 남편도 인정해 줬다. 평면도에는 다락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들어갔다. 다락만큼이나 꼭 해보고 싶었던 공간 배치가 또 있었다. 동쪽에 주방을 배치해서 북쪽으로는 싱크대를 두고 남쪽으로는 6-8인용 식탁을 두는 것. 동쪽과 남쪽에 개방감이 확 느껴지는 커다란 창을 넣고 떠오르는 태양을 맞으며 아침을 먹고 싶었다. 만약 정 안된다면 서쪽에라도. 그럼 지는 해를 맞으며 저녁을 먹고. 하지만 그 꿈은 효율 앞에 맥없이 무너졌다.


"방은 무조건 남쪽에 두자. 남쪽에 둬야 해를 받아 따뜻하고 그래야 난방비가 덜 들지."

"좋아. 안방은 남쪽에 두고 그러면 주방과 식탁을 서쪽에다가 두자."

"아니, 작은방도 남쪽에 둬야지. 북쪽에 방을 두면 춥잖아."


일 년에 몇 번 올까 말까 한 손님을 위해서였다면 동쪽 주방을 절대 포기하지 않았을 테다. 언제가 될진 모르겠지만 시어머님이 더 이상 혼자 사시기 힘들 때 모시고 와야 할 상황을 생각해서 남편의 말에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일반 방문 없이 아치형 문을 넣는다거나 세면대를 화장실 밖으로 빼서 분리한다거나 손님방을 폴딩도어로 분리해 평소에는 열어놓고 쓰다가 손님이 오면 막는 방법 같은, 기존의 아파트와는 다른, 하지만 이미 남들은 많이 하고 있는, 그런 아이디어들은 그놈의 효율 앞에 모두 폐기 처분되었다. 결과적으로 우리 손에 들린 최종 평면도는 어쩐지 그 당시 살던 아파트와 몹시도 닮아 있었다. 



그러네. 딱 우리가 살던 아파트네...


매거진의 이전글 땅을 볼 때 콩깍지는 금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