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착할 지역을 만나는 일
"부여에 연고가 있어요?"
"아니요. 아무도 없어요."
아무런 연고도 없이 부여에 오게 됐다. 그렇게 얘기하면 여기 분들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대체 뭐 때문에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지 정말 의아하다는 얼굴로 연유를 물었다. 그 물음의 뒤편에는, ‘아직 한창 일해야 할 젊은 네가 뭐 하러 이런 깡시골까지 와서 살고 있니 정말 알다가도 모르겠다. 나야 여기 토박이니까 살고 있지만 굳이 부여까지 뭐 하러 왔을까’라는 생각이 깔려 있는 듯했다. 우리가 부여로 오게 된 건 순전히 우연이었다. 결과론적으로 얘기하자면 그 우연이 결국 운명 아니었을까 싶지만.
귀농이나 귀촌할 지역을 선택하는 데에는 각자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생계수단으로 농사를 선택했다면 자신이 정한 작물을 많이 재배하는 곳이거나 귀농인 대상 지원 정책이 잘 되어 있거나 선배 귀농인이 많은 지역으로 가게 된다. 주거형태를 아파트에서 주택으로 바꾸고 싶을 뿐 도시에서 누리던 편리함을 최대한 잃고 싶지 않다면 도시 근교의 전원주택 단지로 가게 된다. 우리는 전문 농업인까지 될 계획은 처음부터 없었다. 그저 우리 두 식구와 양가 가족이 나눠먹을 정도의 농산물을 재배하며 살 수 있는 땅이 필요했다. 제한된 비용 안에서 땅 구입과 집 짓기를 진행해야 했기에 도시 근교 전원주택 단지는 제외했다. 무엇보다 아이가 없었기 때문에 도시 근교에 있을 필요는 전혀 없었다.
'예산에 맞는 괜찮은 시골 땅을 찾자. 마을 한복판이라도 크게 상관은 없다.'
우리가 땅을 찾는 기본 원칙이었다.
"남편, 내가 아무리 생각해도 해남은 안 되겠어. 나는 분명 적어도 두 달에 한 번쯤은 서울에 올라가고 싶을 거거든? 내가 비록 몸은 시골로 가더라도 서울을 사랑하는 마음은 그대로 남아 있을 거야. 그러려면 서울과 너무 멀면 안 될 것 같아. 서울과 해남의 중간으로 하자."
2019년도에 본격적으로 땅을 찾아보며 제일 먼저 고려한 곳이 해남이었지만 위와 같은 이유로 바로 접었다. 아무리 비용이 저렴하다고 해도 해남에서는 도저히 서울에 갈 엄두를 낼 수 없을 것 같았다. 시골로 가는데 그게 뭐가 중요하냐 할 수도 있겠지만, 서울을 사랑하는 이유를 백 개쯤 읊을 수 있는 내게 비교적 쉽게 서울을 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은 꽤나 중요한 지점이었다. 그럼 양평, 가평, 원주, 홍천, 이천, 여주처럼 서울과 꽤나 가까운 곳으로 가면 되지 않겠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한국의 땅값은 서울과 가까울수록 비싸진다. 당시 살고 있던 평택만 해도 외곽 지역의 땅값이 평당 백만 원 이상일 정도였다. 보통 집을 짓고 작은 텃밭이라도 가꾸려면 적어도 100평 정도는 필요한데 그럴 경우 땅값에만 1억을 쓰게 된다. 땅 구입과 집 짓기에 드는 비용이 2억을 넘지 않도록 하려던 우리에게는 큰 금액이었다.
서울과 해남의 중간인 충남 지역을 다시 알아보기 시작했고, 청양을 알아보던 남편이 예상보다 비싼 땅값에 놀라 고개를 돌린 곳이 부여였다. 부여의 땅값은 인접 지역에 비해서도 저렴했다. 서울부터 시작해 땅값이 점점점점 떨어지다가 부여에서 최저를 찍고 다시 익산, 군산으로 가면서 올라가는 그런 느낌. 땅을 볼 때는 발품을 파는 것이 제일 좋다고들 말했지만 우리는 우선 인터넷에 매물을 올린 부동산 홈페이지를 주로 검색했다. 그렇게 해서 로또 부동산(우리에게 맞는 땅을 척하니 주었으니 이름값 제대로 하는 부동산인 셈이었다) 홈페이지에서 꽤 괜찮은 매물 사진을 보게 되었다. 이 차선 국도에서 100m 정도 안으로 들어가 있는 남향의 땅이었다. 남편은 매물 사진과 간단한 정보를 토대로 위성지도를 샅샅이 뒤져 정확한 지번주소를 찾아냈다.
왜 미련하게 그걸 눈 빠지게 찾아보나 부동산에 연락하면 되지 싶을 테지만 이유가 있었다. 매물을 먼저 직접 보고 장단점을 확인해야 부동산과 협상 시 우리가 조금이라도 주도권을 쥘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부동산에서는 정확한 주소를 알려주지 않기 때문에 부득이하게 위성지도로 찾아보았다. 시골 땅의 경우 적게는 몇백에서 많게는 천만 원 이상으로 가격을 높여서 내놓는다. 땅 주인이 칠천에 내놔주세요 하면 부동산이 알아서 팔천에 내놓은 뒤 중개 수수료를 법이 정한 기준 이상으로 받아 가는 게 관례였다. 따라서 부동산과 협상 시 땅의 가격을 적정한 수준까지 내리기 위해서 우리 쪽에서도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이 남편의 의견이었다.
2019년 10월 27일, 그렇게 우리는 난생처음으로 부여 땅을 밟았다. 부여는 대체로 평평한 들녘이었고, 그곳으로 가는 길은 추수를 끝낸 벌거숭이가 된 논과 황금색 벼들이 아직 너울대는 논이 공존하며 따사롭고 여유로웠다. 소박한 풍경이었다. 나중에 지인들이 집에 놀러 올 때 이런 풍경을 볼 수 있다면 좋을 것 같았다. 땅에 도착해 차에서 내리자 온 동네 개들이 우리를 맞았다. 직접 본 땅은 정남향에 가깝고 볕이 잘 드는 곳이었다. 이게 바로 가을날씨지 싶은 날이었다. 안온하고 따뜻했다. 앞에 서 있으면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