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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린결말 Aug 18. 2021

뫼비우스의 띠를 끊다

도시를 떠나온 이유



선배의 존재를 처음 인식했던 건 회사가 참가한 전시회에서였다. 영업부였던 선배는 필히 참석해야 했고 나도 신입사원으로서 전시회장을 지켜야 했다. 화장실을 다녀오는 길에 멀리 걸어가는 선배가 보였다. 선배는 목이 뻣뻣하고 허리가 5도 정도 구부정하게 굽어 있어 걸음걸이가 독특했다. 왼쪽 다리에 체중이 많이 실렸다가 오른쪽 다리로 리드미컬하게 하중이 이동했다. 다리의 움직임은 크지만 상체는 움직임이 없어 확연히 눈에 띄었다. 마주치는 사람들이 한 번씩 고개를 돌려 쳐다봤다. 하지만 선배는 타인의 시선 따위 전혀 안중에 없는 사람 같았다. 항상 남이 나를 어떻게 바라볼지에 온갖 촉수를 세우며 살던 내게, 그 모습은 스냅사진처럼 선명하게 남았다.


선배는 항상 산에 들어가서 살겠다고 말했다. 차라리 죽고 싶을 만큼 몸이 아팠던 선배는 세속의 삶에 그다지 미련이 없다고 했다. 매일 집에서 명상과 마음공부를 한다던 선배는 내게도 틈만 나면 공부를 해보지 않겠냐고 권유했다. 너야 말로 내가 아는 그 누구보다 마음공부가 필요한 사람이라면서. 변덕스러운 마음과 사념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나고 싶어 솔깃하기도 했지만, 공부의 전제조건이 너무 파격적이라 감히 시도해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조건은 이랬다. 독서, TV 보기, 음악 듣기, 사진 찍기, 인간관계, 불필요한 외출을 모두 하지 않을 것. 모든 자극을 멀리해야 공부가 시작된다는 것이었는데, 내게 그 말은 '살아 있지 말라'처럼 들렸다.


2008년 10월, 그 당시 한 달 정도 만났던 남자 친구에게 잠수 이별을 당한 뒤 '살아 있지 않은 사람'이 되어 보기로 했다. 즐겁게 해 주던 자극들을 모두 끊어냈다. 선배와는 매일같이 마음을 들여다보는 얘기를 나눴다. 퇴근하면 바로 집으로 돌아와 벽을 보고 가부좌를 틀었다. 눈을 감고 앉아 생각을 모두 지우고 '나는 누구인가'를 읊조렸다. 가만히 읊조리다가 나는 자주 잠이 들었다. 그렇게 마음공부는 실패했다. 대신 선배와의 많은 대화로, 마음이 어지러울 때 중심 생각을 잡아내는 법, 어지러운 마음이 더 커지지 않도록 조용히 응시하는 법 등을 배웠다. 선배는 자연스럽게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남편이 되었다.


우리는 자주 후일을 도모했다. 언젠가는 산이 아니라 시골(남편이 말한 '산에 가서 산다'는 '나는 자연인이다'의 '자연인'을 의미했다)에 가서 조용히 살자는 것. 마음 한편에 늘 외갓집을 담고 살던 나도 흔쾌히 동의했다. 하지만 나는 서울도 대단히 사랑했다. 까만 밤을 밝히는 각종 불빛들, 저마다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 한강도 가고 남산도 가고 올림픽공원도 가고 서울동물원도 가고 창덕궁도 갈 수 있는, 거미줄처럼 연결된 편리한 지하철과 버스, 여기저기에서 열리는 수많은 전시회들, 한 번쯤 꼭 방문해보고 싶은 힙한 맛집들, 그리고 서울에 있는 나의 애정 하는 친구들. 서울을 사랑하는 이유는 백 개라도 읊을 수 있었다.


'언젠가 시골에서 살겠다'의 언젠가는, 그리하여 50대 즈음이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빨리 내려올 생각은 아니었다. 남편과 해외근무를 마치고 돌아오며 새로 배정받은 생산부 조직에 적응하기 힘들었던 것이 빠른 귀촌의 발단이었다. 생산부는 천안에 위치해 있다. 서울 본사와 분리된 이 조직은, 그동안 겪었던 우리 회사의 조직문화와 완전히 딴판이었다. 상명하복의 문화. 화가 나면 서슴지 않게 욕을 하는 팀장들. 핸드폰에 고개를 묻고 걷는 직원들. 고작 며칠 만에 얼굴에서 생기가 사라지는 신입사원들. 생의 에너지를 뺏기는 풍경 속에서 나도 어느새 얼굴을 묻고 땅을 보며 걷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점차로 일에 대한 만족도도 떨어져 갔다. 사장에게 단지 보여주기 식으로 해야 하는 일들, 어딘가 앞뒤가 맞지 않지만 상사의 지시니까 해야 하는 일들, 사람이 제일 중요하다면서도 결국은 사람을 도구로 쓰고 대하는 사람들 속에서 내가 하는 일의 의미를 찾을 수 없었다. 점점 별것 아닌 작은 일들에 화가 나서 어쩔 줄 모르는 사람이 되어갔다. 왜 화를 내는지 모른 채 내 화를 받게 된 사람들은, 당황하거나 똑같이 내게 화를 냈다. 한쪽 뇌에는 자기 비하를 달고 지냈다. '너는 한심해. 일을 못해. 회사에 별 필요 없는 존재야.'하고 회사가 나를 비웃는 것만 같았다. 일에 몰입해서 재밌게 일하다가도 순간순간 내 일이 한없이 한심해졌다.


일을 조금도 사랑할 수 없게 되자 '일'자체에 대해서도 회의감이 들었다. 직장 생활이 힘들다는 고민에 많은 이들이 '직장은 돈을 버는 곳이지 자아실현을 하는 곳이 아니다'라고 답했다. 하지만 가장 많은 시간을 쓰는 '일'을 돈벌이 수단일 뿐이라고 되뇌며 참아내는 게 맞을까? 돈과 내 시간을 교환하는 것이 옳을까? 우리는 그저 자본의 노예 아닐까? 시간을 돈으로 바꾸고 바꾼 돈으로 소비하고 더 소비하기 위해 다시 묵묵히 시간을 돈으로 바꾸는, 끝없는 뫼비우스의 띠 안을 뱅글뱅글 도는 것이 산다는 것일까?


2019년, 남편과 나는 뫼비우스의 띠를 끊어 내기로 합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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