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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린결말 Jul 21. 2021

이런 곳에 왔다

시골살이의 기쁨과 슬픔


2020년 7월 21일에 이곳으로 이사 온 뒤 계속 비만 내렸다. 우리는 도시생활을 정리하고 작은 시골 마을 안으로 들어왔다. 남편과 결혼 전부터 함께 키워왔던 소망을 십 년 만에 실현한 것이다. 계획하는 데에는 9년이 걸렸지만 본격적으로 실행(땅을 사고 집을 짓고 입주하고) 하는 데에는 단 9개월이 걸렸다. 마치 예정되어 있던 수순인 듯 자연스럽게 이곳에 왔다.


한 달 넘게 이어지던 작년 여름의 장마는 정말이지 징글징글했다. 비가 오니 만사가 귀찮아 집안에 틀어박혀 TV나 보며 뒹굴뒹굴했다. 어느 날, 오후 늦게 누가 초인종을 눌렀다. 이상하다 올 사람이 없는데 하며 나가보니 옆집 조 씨 어르신이 와계셨다. 우리가 하도 밖에 나오지 않으니 무슨 일이 생겼나 걱정이 돼서 와보셨다는 것이다. 이곳은 옆집의 안부를 챙기는 곳이다.


우리 집은 동네 제일 높은 곳에 있다. 마당에 나가면 동네 분들이 우릴 보고 동네 분들이 어딜 나가거나 밭일을 하시면 우리가 다 본다. 이렇게 시골은 서로 열려있다. 아파트에서 살 때는 집에서 브래지어도 안 하고 머리도 산발에 찢어진 허드레 옷을 입고 뒹굴었지만 시골에서는 언제든 누가 찾아올 수 있으니 제대로 갖춰 입고(그래 봤자 몸뻬 바지지만) 뒹굴어야 한다. 지나다 들렀다며 차 한 잔 달라고 할지 모르니 설거지도 바로바로 깨끗하게 해둬야 한다. 뭔가를 하고 있을 때 돌연 누가 들이닥치는 것이 때로는 불편하기도 하지만 좀처럼 아무도 오지 않을 때는 왜 안 오시나 기다려지기도 한다.


너무 바로 촌사람이 되지는 말아야지 다짐했는데 이사 오고 삼일 만에 몸뻬 바지 입고 마트에 갔다. 눈썹도 안 그렸고 모자로 얼굴을 가리지도 않았다. 아파트 앞 편의점을 잠깐 가더라도 눈썹을 그리고 모자를 눌러쓰던 나였는데. 면사무소나 군청에 갈 때는 청바지 정도는 입어주지만 얼굴에 딱히 치장을 하지는 않는다. 아무것도 칠하지 않은 얼굴에서 묘한 해방감을 느낀다.


장마가 끝났겠거니 하고 시작한 텃밭 만들기는 말 그대로 삽질의 연속이었다. 딱딱한 동쪽 마당을 삽으로 깊게 파서 가래로 흙덩이를 잘게 부서 준다. 이런 일을 요즘은 트랙터나 관리기로 하지만 귀촌 한 달 차에게 그런 게 있을 리 없으니(물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맨몸으로 한다. 그렇게 삽질을 하다가 갑자기 부녀회장님과 반장님 어머님이 오신다. 깻잎 따러 가자고. 부랴부랴 쫄래쫄래 따라가 들깻잎을 한 보따리 따와서 다듬고 깻잎김치를 담느라 그날 두둑 마무리를 하지 못했다. 그러고는 비가 내리 또 내렸다. 비 온 뒤 땅은 더 굳고, 앞서 한 삽질이 말 그대로 삽질이 되어 버렸다.


이제 오늘로 이곳에서 일 년을 보낸 셈이다. 비만 내리던 늦여름, 농사가 결코 만만하지 않구나 깨달았던 가을, 할 일이 없어 온 마을이 심심해했던 겨울, 일 년 농사를 준비하느라 분주했던 봄, 이렇게 한꺼번에 바쁠 수가 있나 싶었던 찐 농번기 초여름을 지나 뜨거운 여름의 한 복판에 왔다. 계절들을 몸으로 관통하며 우리 부부는 이 작은 마을에 적당한 깊이로 안착했다. 


적당한 깊이란 얼만큼인지, 사계절의 시골생활에서 얻은 기쁨과 슬픔은 무엇인지, 어떤 것들을 몸으로 배우며 익혔는지 차근차근 기록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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