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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린결말 Apr 04. 2022

아파트 관리비 15만 원 대신 해야 하는 일들

누구도 대신해주지 않는 주택 관리


20년 8월 8일 토요일, 그날도 아침부터 비가 주룩주룩 내렸다. 7월 말에 이곳으로 이사 온 뒤 하루도 빠짐없이 비가 내렸다. 긴 장마가 갈 때까지 가보자는 듯 그칠 줄 몰랐다. 전날 예매해 둔 서울행 버스표를 떠올리며 내리는 비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졸업하고 처음으로 대학 과 동창들을 만나는 날이었다. 혜리를 필두로 서로서로 연락되는 친구들을 단톡방에 그러모아 얼추 거의 다 모였다. 우리는 방방 신이 나 있었다. 다들 너무 반가워 단톡방에 알림이 끊일 줄 몰랐다. 자연스러운 수순으로 모이자는 얘기가 나왔고 얘기가 나왔을 때 바로 만나야 한다며 8월 8일에 모이자고 주도한 것도 나였다. 그런고로 장마의 꿉꿉함과 발목을 적시는 불쾌한 빗물에도 불구하고 버스표를 예매했더랬다.


비몽사몽 내리는 비를 보며 지금이라도 못 간다고 할까 잔꾀를 부리고 있는데 밖에서 남편이 불렀다. 우비를 입고 아침부터 마당에 나가 있던 터였다.


여기 봐봐. 싱크홀이야. 마당에 싱크홀이 여러 군데 생겼다고!


진짜다. 마당 곳곳에 싱크홀들이 여러 군데 생겨 있었다. 물론 가끔 뉴스에 보도되는 엄청 크게 뚫린, 차도 막 쑥 빠지는 그런 걸 상상하면 곤란하다. 마당에 생긴 건 성인 발 정도의 지름을 가진 작은 사이즈였다. 우리 집터는 사면의 언덕을 일정 부분 깎아내어 지반을 다진 후 지었다. 집이 세워진 부분은 비교적 단단했지만 마당 앞쪽의 경사면은 위쪽 흙을 덧댄 터라 하지만 앞마당 1m 정도는 불안한 것도 사실이었다. 싱크홀들은 바로 그 덧댄 부위 즈음에 포진해 있었다. 비록 작은 구멍이었지만 그 구멍들로 계속해서 물이 들어가면 흙은 더 진흙처럼 물러지고 구멍은 더 커질 터였다. 제방의 작은 구멍을 밤새 제 손으로 막아낸 네덜란드 소년을 생각하며 나는 자못 비장해졌다. 작은 싱크홀이라도 막지 못하면 종국에 앞마당이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다소 과격한 상상이 엄습했다.


급한 대로 흙을 퍼다가 구멍에 넣어 메꿔야 했다. 주택살이 18일 차. 우리에게 있는 장비라고는 삽 한 자루와 아파트에서 재활용 쓰레기를 모아놓던 구멍 뚫린 플라스틱 박스, 그걸 실을 수 있는 장난감 같은 바퀴가 달린 플라스틱 끌차뿐이었다. 남편이 집 옆 언덕에서 흙을 퍼 플라스틱 박스에 담아 끌차에 싣고 마당으로 가져왔다. 흙을 구멍에 넣고 꾹꾹 밟았다. 빗물을 잔뜩 먹은 흙을 밟으니 출렁거렸다.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심정이었지만 구멍을 막는 게 우선이었다. 아침을 먹고 초조하게 9시가 되기를 기다렸다가 철물점으로 가서 너비 15m 폭의 방수포를 사 왔다. 방수포로 앞마당을 최대한 덮어서 물이 싱크홀로 더 이상 들어가지 못하도록 막을 생각이었다.


방수포를 둘이서 열심히 펼치고 있는데 옆집 조 씨 어르신과 저 아랫집 영일이 아저씨가 올라오셨다. 이렇게 깔면 안 돼야, 바닥에 쫙 붙게 깔아야지 하며 방수포 펼치는 것을 도와주셨다. 여기 배수가 어쩌고 저쩌고 이렇게 하믄 안됐는디 어쩌고 저쩌고 하시며 한바탕 걱정을 늘어놓으시고 돌아들 가셨다. 그렇게 방수포가 깔리고 그 위로 빗물이 폭포수처럼 흘러내리는 걸 보며 한시름 놓았다.


세상 든든했던 방수포. 라기보다는 더 나은 대안을 찾기 어려웠다. 매해 방수포를 펼쳤다 접었다 해야 하면 어쩌나 했는데 21년도에는 장마가 짧았다. 올해는 어쩌려나.


그 뒤로도 장마가 끝날 때까지 우리는 방수포를 펼쳤다가 다시 접었다가를 무한 반복했다. 해를 봐야 하는 잔디 때문에 방수포를 마냥 펼쳐둘 수 없었다. 긴 장마로 뉴스에서는 산사태가 일어나 집을 덮쳤다는 소식, 강이 범람해 마을이 침수되었다는 우울한 소식들이 연일 들려왔다. 우리 집 마당 앞쪽 경사면의 흙도 계속 무너져 내렸다. 장마가 끝날 때까지 하루에 한 번씩은 앞마당이 무너지고 집이 위태롭게 서 있는 상상을 하곤 했다. 이렇게 단단해 보이는 흙이 물 때문에 부침개 반죽처럼 곤죽이 되어 무너져 내릴 수 있다는 생각은 살면서 해본 적이 없었다. 장마가 끝나고 이사 올 걸 그랬나 하는 후회도 했다. 아파트에 살 때는 적어도 집이 떠내려갈 걱정 같은 건 안 했는데.


주택에 살면 관리비 15만 원을 안내는 대신 직접 집을 유지 보수해야 한다. 태풍이 지나간 뒤 지붕 위로 쓰러진 대나무들도 직접 치워야 하고 지붕의 빗물받이에 켜켜이 쌓여 썩어가는 대나무 잎 뭉치도 손수 꺼내야 한다. 긴 사다리를 펼치고 꼭대기에 서서 고소공포증을 참아가며 목장갑 위에 비닐장갑을 끼고 손으로 까맣고 축축한 댓잎 뭉치를 꺼내는 일이란. 봄여름 가을에는 거미들이 매일매일 지붕과 벽 사이에 거미줄을 만든다. 거미가 모기나 벌레를 잡아먹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사람 사는 집에 주렁주렁 매달린 거미줄을 그대로 두는 건 어쩐지 직무유기 같다. 매일 아침마다 긴 빗자루로 밤새 만든 거미줄을 없애는 일도 필요하다. 이주에 한번 잔디도 깎아야 한다. 넓지도 않은 마당인데 매번 땀이 송골송골 맺힌다. 잔디 사이로 난 잡초들도 볼 때마다 손으로 뽑아줘야 한다. 겨울에는 주유소에 연락해 기름도 채워야 한다. 정화조도 일 년에 한 번씩 업체에 연락해 청소하게 해야 한다. 외주로 맡겼던 온갖 일들이 우리 손에 턱 얹어지는 것, 그것이 주택살이인가 보다.


빗물받이를 치우는 일은 조금 고역이었다. 사다리 위에서 두 다리가 바짝 얼었다. 빗자루로 쓰는 것보다는 손으로 집어 내는게 효과적이었다. 대나무는 참...멀리서 보기에만 예쁘다.


대학 과 동창들은 지금까지도 만나지 못하고 있다. 관리비 15만 원을 안 내는 대신 잃어야 했던 만남이었다. 방방 대던 단체 톡방도 싱크홀 속으로 진흙들이 쓸려 내려가듯 자취를 감췄다. 만나지 못한 건 계속된 코로나 때문이기도 했지만 고요한 단톡방은 그만큼 우리가 얼마나 단절된 채 살아왔는지를 보여준다. 오랜만이라는 반가움은 3-4주면 충분했다. 소식도 모르고 지낸 긴 시간만큼 우리는 다시 침묵이라는 싱크홀로 빠져 들었다. 당연한 수순이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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