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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린결말 Sep 29. 2022

정답을 찾는 사람

살고 싶은 질문들


나는 이년 전 도시를 떠나왔다. 도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을 상징한다. 마켓 컬리를 한 달에 두 번 이상 주문해도 전혀 문제없는 월급을 보장해주는 일자리, 집에서 50m 이내의 거리에 슈퍼마켓이든 편의점이든 반드시 뭐라도 하나는 있는 편리함, 한 번씩만 방문해도 죽을 때까지 다 못 가볼 카페와 식당들에서 얻는 힙한 경험들, 언제든 만나서 눈을 맞추며 대화할 수 있는 친구들, 서로 모르는 낯선 이들과 함께 하는 익명성 속에서 누릴 수 있는 자유로움. 도시를 떠나오며 버리고 온 것들을 나열하고 보니 아쉬운 것들 투성이다.


하지만 버린 것만 있는 건 아니다. 안정적인 수입이 없어 최소한의 소비 규모를 유지해야 하지만, 내 시간은 그 누구에게도 얽매여 있지 않고 오직 내 것이다. 점심을 먹고 낮잠을 잘지 월든을 읽으며 위안을 얻을지 별 시답잖은 유튜브 쇼츠를 볼지는 온전히 내 선택에 달렸다. 발이 허공에 뜬 채 살아가는 아파트 고층 생활을 청산하고, 땅에 발을 딛고 살 수 있는 주택을 얻었다. 현관문을 나서면 바로 마당이 있고 상추, 부추, 오이 등 갖가지 채소를 길러 먹을 수 있는 땅도 있다. 얼굴을 마주 보며 안부를 나누고 수확물을 나눌 수 있는 이웃도 있다.


내가 놓아버리고 온 것들에 대한 아쉬움이 털끝만큼도 없다면 거짓말이겠지만, 다행히도 여기서 얻은 것들에 충분히 만족하는 편이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해 나름의 고민 끝에 지금의 삶의 방식을 선택했다. 버리고 온 것에 후회도 없다. 과거의 그때로 돌아간다고 해도 똑같은 선택을 했을 것이다. 다만 여전히 나를 조바심 나게 하는 질문이 있다.


메인스트림에서 빠져나온 이 선택은 옳은 걸까. 사실은 도망쳐 온 것은 아닐까. 단지 장소만 옮긴 건 아닐까. 나는 그래서 대체 어떻게 살고 싶은 것일까.


지금 내가 사는 모습에 ‘삶의 방식’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을지도 잘 모르겠다. 내 시간은 내가 갖겠다는 것 외에는 특별한 가치관이랄 것도 없다. 누군가는 도시를 떠나 귀농을 하고 무농약, 무비료, 무경운의 철학을 몸소 실천하며 농사를 짓지만, 나는 농사일에 얽매이기 싫어서 농약과 비료를 사용하는 관행농을 짓는다. 헤르만 헤세는 일생을 정원을 가꾸며 자기 문학의 힘을 정원에서 얻었다고 하지만, 내 마당은 잔디 마당뿐이다. 정원은 없다. 정원을 가꾸는 일이란 매일 아침 쪼그리고 앉아 잡초를 뽑다가 손과 허리가 굳는 일이라는 걸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인가가 되고 싶기도 하면서도 그게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인지 확신하지 못해 시간을 들이기를 망설이고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나는 정답을 찾고 있다. 아니 정답에 가까운 무엇인가를 찾고 있다. 현재와 미래의 시간은 정답으로 채우고 싶다는 마음과 정답이 아닌 것에는 더 시간을 쓰고 싶지 않다는 의지로 가득 차 있다. 누가 정답을 알려주면 좋겠다. 삶의 의미나 목적을 애써 찾을 필요 없이 하루하루를 묵묵히 살아 내는 게 맞는지, 이루고 싶은 목표를 세우고 그걸 달성하기 위해 분투하며 사는 게 맞는지. 글은 써서 대체 어디다 쓸까 싶은 무용한 일들을 하며 혼자 만족하는 마음으로 사는 게 옳은지, 쓸모 있는 일에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이라도 써서 유의미한 결과를 만들어 내는 게 옳은지.


누구도 정답을 알려줄 수는 없을 것이다. 설령 누군가 이게 정답이지 말해줘도 내가 그대로 수용할 리도 없다. 그건 내가 찾아야 한다. 삶에 과연 정답이라는 게 있는지에 대한 답까지도.


철학은 삶, 우리 자신의 삶에 관한 것이고, 어떻게 하면 이 삶을 최대한 잘 살아내느냐에 관한 것이다. 철학은 실용적이다. 필수적이다.
에릭 와이너, 『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 어크로스, 2021


철학이라면 답을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책상 위로 철학을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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