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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린결말 Oct 06. 2022

동경하는 삶과 현실 사이의 틈을 발견하다

살고 싶은 질문들


귀촌 후 나는 일 다운 일은 하지 않고 있다. 


농번기에 하루 두 시간 정도 밭 일을 하거나 일주일에 이삼일 아르바이트를 하는 게 하는 일의 전부다. 500평 땅에 농사를 짓고 있지만 자급자족용이라서 열과 성의를 다 하지는 않는다. 손이 많이 가지 않는 들깨나 서리태 위주로 쉬엄쉬엄 길러서 결실을 맺은 만큼만 먹는다. 귀촌 일이 년 차에는 주로 군청에서 모집하는 통계 조사 아르바이트를 했다. 한두 달 조사기간 내에 할당량만 채우면 되는 일이라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일이었지만 낯선 타인을 계속 마주해야 하는 것에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것을 깨달은 뒤 다시는 쳐다보지 않고 있다. 


지금은 집에서 정부과제용 사업계획서를 작성하는 일을 하고 있다. 시간을 돈으로 바꾸는 건 이제 하지 않겠다며 호기롭게 이곳에 왔던 것 치고는 쩨쩨한 모습이긴 하다. 일하지 않고 놀고먹는 백수로 일 년을 지내고 나니 뭐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불안한 감정도 들었고, 평생을 일해온 이곳 어른들의 눈에 놈팡이로 보이는 게 신경 쓰이기도 했다. 일의 형태와 일에 들이는 시간만 바뀌었을 뿐, 나는 다시 일하는 삶을 살고 있는 셈이다. 


돈과 시간을 바꾸지 않겠다며 트랙 밖으로 뛰쳐나왔지만, 과거에 했던 일에서 어떤 가치나 보람을 발견할 수 있었다면 나는 그 트랙을 꾸준히 돌았을 것이다. 방점은 ‘원하지 않는 일을 하는’에 찍혀 있다. 내 동경의 대상은 좋아하는 일을 찾아내어 누구보다 일을 즐기며 사는 사람이다. 죽음을 앞둔 사람들이 가장 많이 후회하는 것 중 하나가 ‘삶의 너무 많은 부분을 일로 보낸 것’이라고 하지만, 내가 죽기 전에 가장 후회할 점은 좋아하는 일을 찾아내지 못했다는 사실일지 모르겠다.


머릿속에 일에 대한 질문이 이렇게 크게 자리 잡고 있는 줄 미처 알지 못했다. 나는 왜 이렇게 일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을까. 왜 신성시하고 있을까. 


막스 베버의 주장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었다. 막스 베버(1864~1920)는 종교개혁 이후에 등장한 프로테스탄티즘, 즉 개신교가 일과 직업을 ‘소명(사람이 하나님의 일을 하도록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는 일)’으로 격상시켰고 이를 토대로 자본주의가 발달했다고 보았다. 개신교에서는 신을 기쁘게 하는 유일한 방법이 오직 현세적 의무를 완수하는 것으로 보았는데, 현세적 의무란 각 개인의 사회적 지위에서 발생하는 것으로서 ‘직업’을 뜻한다. 직업 노동을 성실히 이행하는 것이 신을 기쁘게 하는 방법, 소명이 된다는 얘기다. 이러한 직업관을 갖춘 노동자, 자본가는 자본주의를 더욱 발전시키는 구성원이 된다. 


한국 역시 개신교의 영향을 받은 나라다. 종교가 없는 나 같은 사람도 부지불식간에 이런 개념을 주입받았을 것이다. 완벽히 주입받고 이를 몸소 실천한 동시대의 사람들이 책도 내고 영상도 찍어서 현시대의 언어로도 계속 설파한다. 사실 어렵게 막스 베버까지 끌고 오지 않아도 자본주의 사회가 일, 노동을 신성시하는 경향이 있다는 건 분명하다. 자본주의는 노동자의 일을 통해 유지되니까. 자본주의는 지속적으로 노동자의 정신을 고양할 필요가 있다. 일을 단순한 밥벌이로 생각하고 싫은 걸 참아가며 억지로 일하는 노동자보다는 일 자체를 자기 목적으로 삼고 사명을 띤 행위로 받아들인 노동자가 자본주의를 더 잘 굴러가게 하는 톱니바퀴가 될 테니까. 


하지만 우리는 톱니바퀴에서 떨어져 나올 수 없다. 일을 해야 먹고살 수 있으니까. 일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 기왕 해야 하는 일이라면, 소명 의식을 갖는 것이 개인에게도 훨씬 유리할 것이다. 소명 의식, 가치, 보람. 이런 걸 일에서 찾지 못해서 나도 결국은 도시 생활을 접고 이곳에 오기도 했고. 


“너는 시골에서 어떻게 살아?”

“적게 벌고 적게 써요. 오랫동안 적게 쓰는 생활을 연습하고 시골로 갔죠.”

“그렇구나. 너와 나는 정 반대다. 나는 더 맛있는 것을 먹고 더 좋은 경험을 하기 위해서 더 많이 벌려고 노력해.”


더 많이 쓰기 위해 더 많이 벌려고 노력하는 선배는 천직이네 싶은 일을 하며 그 누구보다도 즐겁게 살고 있다. 일이 재밌어 죽겠다면서. 내가 동경하는 삶 그 자체다. 


잠깐. 이런 삶을 동경한다면 나는 지금 전혀 엉뚱한 곳에 와 있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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