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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린결말 Oct 27. 2022

충분 주의자의 자격

살고 싶은 질문들



마켓컬리는 꼭 10일에서 25일 사이에 할인 쿠폰을 보내온다. 나는 발을 동동 구르며 제발 25일 이후나 월 초에 보내주면 안 되겠냐고 허공에 대고 소리친다. 매달 10일에서 25일 사이는 내게 보릿고개이기 때문이다.  마켓컬리에서 사는 식재료는 필수재보다는 사치재 쪽에 가깝다 보니 보릿고개에는 마켓컬리에서 장을 볼 돈이 없다. 컬리 역시 매출이 잘 안 나올 때 쿠폰을 발급할 거라는 이커머스 업계 종사자 지인의 추측을 듣고, 아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이때쯤 다들 보릿고개인가 보다 하고 안도감을 느끼기도 했다. 


우리는 한 달에 약 80만 원을 가지고 생활한다. 이백 만원에서 보험료, 공과금, 적금, 기름, 담배, 고양이들 모래, 사료, 병원비 등 무조건 들어가는 고정비용을 제외한 금액이다. 80만 원으로 주로 식료품을 사고 그달 그달 필요한 물건들을 사고 경조사비 같은 예상치 못한 지출도 하고 병원비도 내고 가끔 6천 원짜리 짜장면도 사 먹고 책도 두 세권 산다. 25일에 생활비가 들어오면 마켓컬리에서 먹고 싶던 밀키트도 사고 마트에서 장을 봐서 텅텅 비어있던 냉장고도 채운다. 그렇게 필요한 물건들을 사고 나면 다음 달 10일 즈음부터는 어김없이 보릿고개가 시작되는 패턴이다. 


“아니, 뭐 산 것도 없는데 왜 이렇게 돈이 없지?”라는 말을 달고 산다. 30일 중 15일은 그 말을 하며 사는 듯하다. 양가 부모님께 지난달에는 아리수 사과를, 이번 달에는 양광 사과를 한 박스씩 보냈다가 남편에게 “아니 사과를 왜 이렇게 자주 사? 그러니까 돈이 없지.”라는 소리나 듣고 나면 한 번씩 현타가 온다. 기껏 없는 돈 쪼개서 사드렸더니 말이야. 돈이 아주 조금만 더 있다면 이런 말을 들어도 꿈쩍하지 않을 수 있겠다 싶기도 하다. 


우리는 특히 내가 ‘조금만 더-주의’라고 부르는 것에 취약하다. 우리는 행복해지기 위해 지금보다 훨씬 많은 것(예를 들면 돈과 명예, 친구들)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저 조금만 더 많으면 된다. 하지만 조금 더 갖게 되면 우리는 눈금을 재조정하고 생각한다. 그저 조금만 더 있으면 돼. 
-에릭 와이너,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생각해보면 지금보다 더 많은 돈을 썼을 때도 언제나 충분하지 않았다. 돈이 넘쳐났던 적은 없다. 언제나 조금만, 아주 조금만 더 있기를 바랐다. 지금도 그렇다. 충분하다. 동시에 조금만 더 많으면 15일 동안 쪼들리는 생활을 하지 않을 것 같다는 욕심도 꾸물거린다. 하지만 또 안다. 백만 원이 되고 백오십만 원이 되어도 나는 매달 10일부터 구시렁거릴 테다. 뭐야, 왜 이거밖에 없어. 


돈이 없다고 구시렁대는 생활이지만 충분하다(고 세뇌한다). 하루에 한 푼도 쓰지 않는 날이 며칠째 이어지고 있나 세어보는 것도 나름의 재미이다.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에서 쏟아내는 광고 공격에도 끄떡없다. 갑자기 쌀쌀해진 날씨에 두툼한 후드티라도  하나 새로 장만하고 싶지만 통장 잔고를 노려보며 참아 낸다. 남들은 태백으로 설악으로 단풍 구경을 간다지만 오후의 나른한 햇살을 받은 황금 들녘만 봐도 배가 부르다. 


충분히 좋은 생활. 


충분하다는 만족감은 인생을 간결하게 한다. 팔십만 원이면 충분하므로 돈을 더 모을 필요도, 월급을 줄 일을 할 필요도 없다. 있는 옷도 다 못 입는 판에 새로운 옷은 필요 없다. 지금 옷으로도 족하다. 밥을 지어먹고 운동을 하고 밭일을 하고 책을 읽고 글을 쓰면 충분한 하루다. 조금만 더는 없다. 


아니다. 딱 하나 조금만 더 필요한 게 있다. 엄마 다리가 더 아프기 전에 제주도 여행을 함께 가고 싶은 로망을 실현시켜 줄 돈이 조금 필요하다. 제주도 여행 경비를 위해 아르바이트가 필요하다. 하지만 그뿐이다. 여행 비용은 아르바이트만으로 충분하다. 이만하면 ‘충분 주의자’로서 충분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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