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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린결말 Feb 26. 2022

세 마리의 고양이에게서 배우는 사람의 감정

귀여운 게 최고야

우리 집에는 고양이 두 마리가 살았다. 고양이를 키우기로 결심했던 십 년 전에, 무조건 두 마리만 키우기로 다짐했고 실제로도 십 년을 지켰으며 끝내 그럴 줄 알았다. 등어가 집 앞에 나타나기 전까지는. 


귀촌을 결정한 뒤 집 주변을 얼쩡거릴 고양이가 나타나리라고 예상하지 못했던 건 아니었다. 밥은 어디다 줘야 할지 정은 얼마큼 줘야 할지 미리 고민도 해보았다. 하지만 막상 시골집으로 옮기고 난 뒤 쓸데없는 걱정이었음을 깨달았다. 우리 마을에는 고양이가 많지 않았고 집 주변을 다니는 고양이는 단 두 마리였으며 그들은 사람 머리카락만 보고도 몸과 꼬리를 잔뜩 내리깔고 (경계 태세의 자세임) 후다닥 사라져 버렸다. 정을 주긴 뭘 줘. 관계 맺기가 되지를 않는데. 그러다 여름 긴 장마가 끝나고 가을로 접어들던 어느 날, 우리를 보고도 천천히 걸어 집을 빙 둘러 가던 고양이 한 마리가 나타났다. 그리고 며칠 뒤 삐쩍 마른 그 녀석이 1m 거리 앞까지 와서 앵앵거렸다. 밥을 주니 허겁지겁 먹었다. 그 모습을 보고 어쩐지 집에 들어올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 뒤로 녀석은 집 옆 대나무 숲 자기의 보금자리에 앉아 있다가 우리가 데크에 나오기만 하면 후다닥 달려와서는 무릎에 올라와 꾹꾹이를 했다. 새벽 여섯 시와 오후 네시에 주는 밥도 꼬박꼬박 받아먹었다. 이름도 ‘등어’로 지어 주었다. 적당히 정들어야지 하면서 대충 지은 이름이었다. 고등어 무늬를 가진 냥이, ‘등어’. 날이 추워져 데크에 나가는 시간이 줄어들자 등어가 거실 창문 앞에 앉아 나오라고 울어댔다. 스티로폼으로 집을 만들고 전기방석도 넣어 줬다. 문 앞에 기다렸다가 현관문을 열면 그 사이로 쏙 들어오는 일이 잦아졌다. 한겨울이 되니 눈이 많이 왔다. 해가 나는 낮 시간에는 자주 외투를 입고 나가 등어를 무릎에 앉히고 앉아 있었다. 그리고 1월의 첫 주 몹시 추웠던 아침 날, 문을 열자 쏙 집 안으로 들어온 등어를 안아 들고 작은방에 넣었다. 그래. 내가 이럴 줄 알았다. 


두 마리와 세 마리는 차이가 컸다. 사료 그릇 하나 더 넣고 화장실 하나 더 넣는 정도의 일이 아니었다. 부모님의 심정도 이랬을까? 자식이 하나 둘 늘어날 때마다 깜짝깜짝 놀라셨을까? 부모님과 함께 살던 시절 우리 자매 셋의 이름을 자주 헷갈려하셨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었다. “연미야, 아니 연진아, 아이고 연아야.” 이름이 뭐가 어렵다고 늘 다른 이름을 다 부른 뒤에야 제 이름을 부르시나 서운하기도 했었다. 요즘의 나는 이렇다. 몽이는 등어라고 부르고 키키는 몽이라고 부르고 등어는 몽이라고 부른다. 우리 자매 이름은 돌림자라도 있었지, 생판 다른 이름 셋을 정확히 부르는 게 이렇게나 어려운 일인지 미처 몰랐다. 


셋은 성격도 다르다. 첫째 키키는 전형적인 예민 보스 할머니다. 나만 보고 나만 쫓아다닌다. 엉덩이를 두들겨 주는 걸 좋아하는데 그것도 아주 살짝 부드럽게 해야 한다. 조금만 힘이 들어가도 신경질을 낸다. 자아가 뚜렷하다. 몽이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고집쟁이 할아버지다. 새벽에 무조건 밖에 나가서 바깥바람을 코에 넣어야 한다. 그전까지 계속해서 문 앞에 앉아 운다. 해가 뜨면 또 밖에 나가야 한다. 역시 문 앞에 앉아 운다. 따뜻한 낮에도 또 밖에 나가야 한다. 온 거실을 돌아다니며 우렁차게 운다. 자기를 함부로 안으면 이잉!!! 운다. 등어는…해맑은 20대다. 바닥에 뒤집어놓고 배를 만져도(대체적으로 고양이들은 배를 못 만지게 한다), 번쩍 들어 어깨에 들쳐 매도 그저 해맑다. 가슴팍에 꼭 안고 꼼짝 못 하게 해도 꾹 참았다가 도망만 간다. 아 진짜 왜 그래! 하고 째려보지 않는다. 주방에 들어가면 쫄래쫄래 따라와 바닥에 뒹군다. 


가끔씩 죄책감이 들 때가 있다. 십 년을 함께 산 키키나 몽이보다 고작 일 년 산 등어가 더 사랑스러워서. 키키와 몽이를 차별하면 안 된다고 머리를 흔들며 이성을 찾아본다. 키키 눈치를 보며 애정표현을 절반 정도만 하며 산다. 해맑아서 귀여운 등어를 보면서 문득 인간 본연의 심리를 깨달았다. 왜 사람이 어쩔 수 없이 본인을 좋아하는 또는 듣기 좋은 말을 많이 해주는 또는 싫은 소리 해도 금방 웃으며 다가와 주는 사람에게 무장해제되는지 말이다. 밝고 해맑은 둘째를 어른들이 왜 더 좋아했는지, 말도 별로 안 하는데 했다 하면 잔소리 거나 옳은 소리만 콕콕 쏴대던 나를 아빠가 왜 부담스러워했는지, 되는 이유 안 되는 이유 조목조목 따지고 늘어놓는 직원보다 (내가 보기에는 대책 없이) 할 수 있다고 말하는 직원을 상사들이 왜 좋아했는지 알 것 같다. 


사람은 생각보다 감정의 영향을 많이 받는 나약한 존재이고, 해맑은 사랑스러움은 세월과 의리를 이긴다.

  


세 달을 지지고 볶고 싸우다가 이제는 한 침대에 한 자리씩 차지하고 함께 자는 사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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