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문 작성자 A와 M
대화문 작성자 A와 M
그래서 훌륭한 개떡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했었는데
문보영 시인(M) 편
안태운 (이하A): M, 안녕하세요. 우리는 대화문 작성자입니다. 대화문 작성자로서 임하는 자세가 궁금하네요.
문보영 (이하M): 기대됩니다.
A: (……) 그것뿐인가요.
M: 아무 생각이 없어요.
A: 네, 그렇군요. M, 당신의 근황이 궁금해요. 당신 일상에서 대부분을 차지하는 일은 무엇입니까.
M: 요즘은 춤을 추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그리고 시 수업을 합니다.
A: 춤꾼과 시인으로서. 그렇군요. 당신이 했던 가장 즉흥적인 행동은 무엇이었는지요?
M: 주차장에서 춤추기. 당신은요?
A: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M: 지금 생각해보니 저는 즉흥에 약한 것 같아요. 시를 쓰면서 즉흥성을 다 써버리는 것 같기도 해요. 춤보다 오히려 시가 더 즉흥적인 것 같기도 한데 시를 쓸 때를 제외하고는 저를 좀 가둬놓는 것 같습니다. 며칠 전 연습실에서 프리스타일을 했는데 제가 제일 못했거든요, 안무는 잘 소화했는데. 평소에 저 자신을 가둬놓나 봐요. 그런데 시를 쓸 때는 뭐랄까, 조금 해방되는 것 같아요, 사소한 억압들에서. 꾸준히 딴 길로 새는 게 재미있어요.
A: 그렇다면 시를 즉흥적으로, 그러니까 억압을 떠나서, 시라고 상정해놓는 것 하나도 없이 그렇게 쓰신다는 말씀인가요. 그래도 무엇을 쓴다면 틀이라는 게 있을 텐데요. 적어도 시를 쓴다고 하는…… 마음가짐 같은 것?
M: 그렇긴 한데, 제가 쓰는 무엇이 시가 아니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틀이 있어도 나름대로 재미있는 것 같아요.
A: 틀이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은 것이군요. 요즘 읽고 있는 텍스트가 있나요. 혹은 영화라도?
M: 『Call me by your name』이라는 영어 원서와 『모양』이라는 형태학 서적과 제발트의 소설을 읽고 있어요. 한동안 한국어로 된 책을 읽기가 싫어서 외국어 서적을 읽기 시작했는데 재미있더라고요, 무슨 말 하는지 모르겠어서…….
A: 무슨 말 하는지 몰라서요?
M: 네, 제가 영어를 잘 못하거든요. 전화 영어는 꾸준히 하는데. 모르는 말이어서 멋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일본어도 공부하려고요, 더 못 알아듣게.
A: 역시.
M: 네.
A: 아예 모르는 것보다 조금 더 알게 되면 더 모르는 것 같아서 좋은 것이겠지요. 저는 그렇게 이해했습니다.
M: 역시.
A: 저는 M이 시를 쓰는 방식이 궁금했었습니다. 즉흥적으로 쓰신다니 달리 더 질문드릴 건 없지만 혹시 즉흥을 더 자세하게 즉흥적으로 풀어서 표현해주실 수 있을지요? 시가 아니라면 일기를 쓰는 방식에 대해서도 좋구요.
M: 사실 쓰는 행위 자체가 즉흥적이진 않은 것 같아요. 아무 때나 쓴다기보다는 매일 도서관에 가서 썼으니까요. 쓰는 순간에는 주로 소설이나 비문학 서적을 읽다가 문득 어떤 단어에 꽂힐 때 머릿속으로 시놉시스가 떠올라서 소설을 써볼까, 하다가 실패해서 시가 되는 것 같기도 하고요. 일기를 쓰다가 얼렁뚱땅 시가 되는 것 같기도 해요.
A: 시를 쓰거나 쓸 수 있는 상황은 즉흥적이지는 않지만, 시를 쓰면서는 여러 갈래로 무언가가 퍼져나간다는 말이군요. 요즘은 시를 잘 쓰시는지,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지도 궁금하네요.
M: 전혀요. 당장 마감해야 하는 시들이 많은데 흑역사를 새롭게 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 쓰는 경향이 좀 달라지고 있는 것 같아요. 제가 쓰는 시가 산문 성향이 짙어서 더 산문화될 것 같았는데, 다시 시의 기본이랄까, 그런 시로 돌아가는 것 같아요. 이상하게 기본기를 다시 다지고 싶달까. 시의 기본이 뭔지는 잘 모르겠어요. 다만 언어 놀이, 단어 놀이에 좀 빠져 있는 것 같아요. 중의법이랑 묘사도요. 시를 쓰는 인생은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라는 말을 너무 많이 듣잖아요. 그게 슬퍼서 소설 같은 시를 썼던 것 같기도 해요. 친절해지는 쪽으로 갔달까. 그런데 요즘은 그런 거 신경 안 쓰고 싶어요. 그냥 언어랑 나랑 단 둘이 있다고 생각하는 시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맨 처음에 시를 쓰게 된 계기는, 저도 모르는 이상한 말을 중얼거렸는데 그걸 누가 찰떡같이 알아들었기 때문이에요. 그러니까 설명도 없이 나는 개떡같이 말했는데 우연히 상대가 찰떡이었던 거지요. 그래서 훌륭한 개떡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했었는데 어느 순간 굴복한 것 같아요. 그래서 다시 돌아가고 싶어요.
A: 궁금하네요. 얘기를 들어보니 떠오르는 시가 있는데요. 이를테면 첫 시집에서 「모자」 같은 시가 언어 놀이, 단어 놀이 류의 시는 아닌지요?
M: 그런데 좀 달라요. 시의 기본이라는 것도 잘 모르겠는데요. 말씀을 들어보니 그 경향의 시를 일컫는 것 같아서요. 「모자」, 「벽」, 「막판이 된다는 것」은 다 등단 즈음에 썼는데 저는 그런 시를 ‘단어따발총발사시’라고 이름 하거든요. 한 단어에 꽂히면 그 단어를 미친 듯이 쏘면서 언어 놀이하는? 그런데 그런 반복에 미쳐 있던 시기는 지난 것 같고요, 그런 시에 좀 질려서 서사에 관심이 갔던 것 같고요. 지금은 반복보다는 덜 응고된 시를 쓰는 것 같아요.
A: 그럼 이제는 서사적인 시를 지나서, 그렇다면 다시 기본인 건데, 그 기본이라는 게 시의 형태인 건지요, 흔히 말하는 짧고 행갈이가 있는. 그리고 덜 응고된 시는 무엇을 말하는 건가요?
M: ‘단어따발총발사시’는 반복이 아주 많아서 밀도가 높은데 서사는 소설에 가까워서 좀 더 기체에 가까운 것 같아요. 밀도가 낮죠. 지금은 그 중간인 것 같습니다.
A: ‘단어따발총발사시’와 서사적인 시의 중간이요?
M: 그러니까 반복을 전면화하는 언어 놀이도 아니고, 소설의 디폴트 값으로서의 반복을 구사하는 소설시도 아닌, 그 중간에 있는 시?
A: 사실 준비한 질문 중에 이런 게 있었어요. 복사 붙이기 하겠습니다.
“M은 시창작 수업을 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당신의 커리큘럼을 보면 굉장히 흥미로워서 저도 한번 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여러모로 상황이 여의치 않아서 아쉬운데요. 커리큘럼 내용 중에서도 가장 궁금했던 건 시를 기체시, 액체시, 고체시, 액화시, 기화시, 응고시로 구분하는 것이었어요. 이에 대해서 말해줄 수 있나요?”
M: 아, 영업 비밀이라서요. 수업을 들으셔요.
A: 그래도 좋지만 그러지 않아도 좋을 것 같네요.
M: (웃음)
A: 너무 초반부터 시에 대한 얘기만 한 것 같아서 분위기를 좀 바꿔볼게요. M, 당신의 첫 시집에서는 시와 시인(작가)가 유달리 많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 왜일까요. 문득 궁금해지네요. 혹시 시인으로서의 자의식이 강한 건지, 아니면 외려 거부감이 들어서 그런 건지도 궁금하구요.
M: 우선은 제가 공간에 영향을 많이 받는 사람 같아요. 시를 도서관에서 쓰거든요. 쓸 때는 매일 혼자 도서관에 있는데 그러면 도서관이 살아 있는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제가 읽고 싶다고 생각한 책이 어느 날 도서관 비치대에 있는 거예요! 마치 저보고 읽으라는 듯. 그리고 오기도 생겨요. 희망도서로 매번 시집을 신청했는데, 항상 받아들여지지 않거든요. 제 희망이 소외되는 방식으로 도서관이 설계된 것입니다. 무엇보다 카페에 가면 눈치도 봐야 하고 돈도 없으니까 도서관에 다녔던 것 같아요. 시인이나 작가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어요. 도서관에 다니니까 책을 읽는 사람들을 자주 보고 그래서 시에 쓴 것 같아요. 생각해보니 저는 항상 외면하고 사는 것 같아요, 시인이라는 단어 자체는.
A: 시인이라고 의식하고 외면하는 거랑 시인이나 작가를 시에 쓰는 건 또 다른 거잖아요.
M: 평소에는 시도 외면하고 시인도 외면하거든요. 왜냐하면 제 자신이 시를 갈망하면서도 그게 너무 왜소하다는 생각에 괴로워서요. 그런데 제가 쓰는 일기는 항상 망각 일기거든요. 그것에 관해 쓰면 그것을 망각할 수 있다고 믿어요. 그래서 오히려 시인들에 대해서 썼던 것 같기도 해요.
A: 잊고 싶어서? 그러니까 시와 시인 혹은 작가는 망각하고 싶은 존재군요.
M: 그런 것 같기도 해요. 그래도 애정이 있어서 그런 것 같아요. 앙뚜안과 지말, 스트라인스는 사랑스럽지 않나요?
A: 네, 그 친구들은 사랑스럽습니다.
M: 전해주겠습니다.
A: 헉, 감사합니다. 혹시 볼라뇨 좋아하시나요. 그의 소설에서는 문청들, 시인들의 얘기가 주로 나오잖아요. 사실 그들의 얘기가 글을 쓰는 당사자인 저로서는 매력적이어서요. 우리나라의 한 소설가·비평가 동인도 『야만스러운 탐정들』에 나오는 한 그룹을 모티프 삼았다고 표방하기도 했구요.
M: 아, 그건 잘 몰랐어요. 볼라뇨의 작품 한 편 읽었거든요, 『전화』라는 단편집에 수록된 「전화」라는 단편. 그런데 정말 흥미로웠어요. 사실 저는 영향은 거머리처럼 받긴 해요, 누구에게나.
A: 아까 일기가 언급되었었는데요. 당신의 일기를 보면 인간 심리 분석에 능한 것 같기도 해요. 그래서 질문인데요. 최근에 가장 신기하게 봤던 인간의 유형이 있나요? 아니면 동물의 유형이라도……?
M: 인간의 유형이라……. 사실 사람을 보면서 별 감흥을 느끼지는 않는 것 같아요.
A: 하긴 그러고 보니 인간 심리란 물론 M, 당신 자신에 대한 심리 같기도 합니다만.
M: 네, 막상 어떤 사람에 대해 일기로 쓰면 애정과 관심이 더해지는 것 같기는 해요. 일기에서 친구들 얘기를 많이 하는데 그게 결국 제 얘기이기도 한 것 같아요. 일기를 좋아하시나요?
A: 네, 읽는 걸 좋아해요. 근데 물론 보여줄 수 있는 일기와 보여줄 수 없는 일기는 다르지 않나요.
M: 저는 좀 비슷한 것 같아요. 예전에 너무 마음이 아팠을 때부터 일기를 쓰기 시작했거든요, 블로그에. 그런데 그때는 제가 시인도 아니었고 해서 다 올렸는데, 그때 버릇이 남아서 지금도 그냥 쓰는 것 같아요.
A: 그렇군요. 네, 블로그 일기는 독자를 상정하고 쓰는 글은 아니지만 그래도 독자가 있음을 알면서, 읽으리라고 기대하면서 쓰는 글이잖아요. 그럴 때 어쨌든 자기 검열을 할 것 같은데요. 나만 읽는 일기가 아니니까.
M: 맞아요, 그러고 보니 좀 다르긴 해요. 가령, 올릴 때 맞춤법 검사기로 한 번 돌리고 올린다는 점에서? 그리고 너무 슬픈 일기는 안 올려요.
A: 갑자기 슬퍼지는군요. 그런데 정말 너무 슬픈 일기를 올리는 사람의 심리는 무엇일까요?
M: 글쎄요, 슬픈 일기를 올리면…… 왠지 미안해요, 누구나에게.
A: 그렇군요. 왠지 미안해지는군요, 누구나에게. 일기에 올리는 건 너무 슬픈 건 아닌 건가, 올릴 수 있다는 건 아무리 슬퍼도 너무 슬픈 건 아니니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어요.
M: 잘 모르겠어요. 예전에는 아주 슬플 때 쓴 일기도 올렸거든요.
A: 일기의 독자가 많아진 탓 혹은 덕분이라고 해도 될까요. 그럼 다음 질문으로 넘어갈까요.
M: 네.
A: 르포를 쓰고 싶나요. M 수업의 커리큘럼 중에 ‘시와 르포가 만난다면?’이라는 문장을 본 적 있어서요. 시와 르포라니. 언뜻 짐작이 안 가긴 합니다만.
M: 그런 것도 같아요. 소설과 시의 경계에서 노는 걸 좋아했는데 지금은 서사보다 르포에 더 관심이 가는 것도 같아요. 서사, 기승전결, 갈등, 운율이 주는 재미가 있다면 지금은 정보가 주는 재미에 매료되어 있는 것 같아요. 르포가 꼭 정보인 건 아니지만요.
A: 르포, 시와 결합한 르포, 시인이 쓰는 르포는 어떤 건지 궁금해요.
M: 엠마뉘엘 카레르는 르포와 일기 혹은 자전적인 요소를 뭉쳐서 쓰는데 흥미롭더라고요. 그걸 시에서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요.
A: 그런 형태라고 하니 머릿속으로 바로 그려지네요.
M: 소설을 르포로 접근하는 작가들은 많은데 시는 어떨까 하는 궁금증이 생기더라고요.
A: 저 역시 그게 궁금한데요. 소설과 르포 혹은 일기 혹은 전기는 어쩌면 한 몸 같기도 하고 잘 어울리는데 시와 르포의 조합이 언뜻 기이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M: 작년에는 문학보다 비문학 서적을 더 많이 읽었는데 말투와 문체에 매료되었던 것 같아요. 시의 문체보다 비문학 서적에서의 문체에 더 끌렸어요. 다큐멘터리가 지닌 목소리가 시의 목소리가 된다면 그것도 흥미로울 것 같아요.
A: 그렇다면 시의 문체를 르포의 문체처럼 한다는 것인가요.
M: 잘 모르겠네요. 아직 수업을 안 해서. 수업 준비하는 그 주에 생각해보려고요.
A: 그렇군요. 다음으로 넘어가겠습니다. 당신이 좋아하는 이미지가 궁금해요.
M: 저는 원숭이를 좋아해요. 제가 그린 원숭이. 시집에 넣으려고 했는데 못 넣었거든요.
원숭이를 원래 좋아하는데 제가 원숭이 띠거든요. 그리고 자세히 보면 제가 또 원숭이를 좀 닮았습니다, 귀를 옆으로 이렇게 잡아당기면. 보셨죠?
A: 네, 인상 깊네요. 이번에는 단답형 질문입니다. 당신의 삶에서 가장 멀리 있는 것, 세 가지.
M: 멀리 있기를 바라는 것 세 가지. 맨스플레인, 맨스프레딩 그리고 맨홀.
A: 맨홀은 뭔가요?
M: 운율을 맞춰보았습니다.
A: 상당히 즉흥적이시네요. 근데 제 질문을 당신에게 멀리 있는 것, 세 가지였는데요. 그러니까, 너무 멀어서 닿을 수 없는 것, 당신에게 거리감이 있는 것.
M: 그럼 다시 말해볼게요. 명왕성, 천왕성, 토성?
A: 역시 상당히 즉흥적이시네요. 넘어가겠습니다. 부러운 게 있나요. 부러워하는 것, 세 가지. 저는 그게 그냥 궁금하네요.
M: 뭘 것 같나요.
A: 저는 당신을 잘 모르는데…….
M: 그렇네요. 지금은 크게 부러운 건 없는 것 같습니다. A는 부러운 게 무엇인가요?
A: M이 제게 하는 질문은 이런 식이군요. 질문에 대한 대답을 대신 하길 바랄 때, 같은 질문을 제게 반사하는.
M: 예리하시군요. 하지만 정말 궁금합니다.
A: 넘어가겠습니다. 좋아하는 세 가지는 무엇인가요.
M: 친구, 피자, 일기.
A: 좋네요.
M: A가 좋아하는 건 무엇인가요. 제가 맞춰볼까요.
A: 오.
M: 조깅, 맥주, 애쉬브라운.
A: 헉, 그렇군요. 정확히 말하면 부러워하는 것이네요, 그것들은.
M: 그렇군요. 맥주가 되고 싶으신가요?
A: 사실 맥주보다는 조깅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리고 제 검은색 머리카락은 애쉬브라운이 되고 싶어 하는 것 같고요.
M: 좋네요.
A: 다시 시에 대한 질문을 할 것 같네요. M, 당신이 생각하기에 첫 번째 시집과 달라질 두 번째 시집의 지점은 무엇일까요? 첫 시집이 여러모로 분방해서 어떻게 다음으로 이어질지 궁금해지는 것 같아요.
M: 정말 잘 모르겠어요! 생각하고 싶지도 않고요. 내년부터 생각하고 이번 해에는 좀 쉬려고 해요. 시에 대한 생각을 너무 많이 해서 탈진했거든요. 어쩌면 아주 짧거나 아주 길게 쓸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열심히 써야 할 것 같아요.
A: 그렇군요. 다음 질문으로 넘어갈게요. 우연을 좋아합니까. 즉흥과 우연은 좀 다른 것 같습니다만.
M: 우연이 무엇이지요? 우연적 만남?
A: 우연은 그러고 보니 하려고 해도 하기 어려운 것이긴 한데요. 즉흥은 시도할 수 있는데 말이죠. 아니면 어떤 것들에 대해서 우연이라고 이름 붙이길 좋아하나요? 결과적으로 어떤 걸 우연이라고 하고 싶어 하는 성향 같은 것. 아니면 우연적이라고 말하길 좋아하거나, 우연적 상황에 놓이길 좋아하는 것.
M: 그런 것 같기도 해요. 생각해보면 다 우연이었던 것 같거든요. 시를 시작한 것도. 친구를 만난 것도. 가장 친한 친구를 전단지로 만났거든요, 우연히. 과외 전단지를 뿌렸는데, 그 전단지를 그 친구의 동생이 받아서 과외를 하다가…… 그 학생의 누나도 제 과외 학생이 되었고…… 그러다가 절친이 되었죠…….
A: 전단지 우연.
M: 재수로 이끌었고…….
A: 그거야말로 우연이군요.
M: 우연히 재수하게 된 거죠. 저를 우연히 만나서 우연한 재수를.
A: 그렇군요. 저는 갑자기 당신이 묘사하는 글을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묘사해줄 수 있나요? 묘사를 한다고 작정하고 해주신다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 묘사가 궁금하네요.
M: 그럼…… 제 가방 속에 있는 일기장을 묘사하겠습니다. 이 일기장은 일본 아소코에서 구매한 일기장입니다. 아소코는 ‘저기’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아소코에 있으면서 ‘나는 여기 있다’라고 외칠 수 있는 인간은 세상에 없습니다. 아무리 도착해도 당신은 저기 있기 때문입니다. 아소코에서 산 이 일기장에 저는 리틀미 스티커를 붙였습니다. 무민을 좋아하시나요? 리틀미는 늘 무민의 그늘에 가려져 있습니다. 무민도 좋아하지만 저는 리틀미를 좋아합니다. 리틀미가 좋은 이유는 중심인물이 아니라는 점, 세상에 짜증난 표정을 잘 짓는다는 점, 작다는 점, 잔머리를 기르려다 잔머리가 발달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점, 이마에 붙어 있는 네 가닥의 잔머리가 약간 초라해 보인다는 점입니다. 저는 학용품을 좋아합니다. 쓰고 나니 묘사가 아니네요. 기분이 좋습니다.
A: 학용품을 좋아하시는군요. 다음 질문을 하겠습니다. 집과 도서관 말고 당신이 가장 오랫동안 머무를 수 있는 공간은 어디인가요. 혹은 어디이길 바랍니까.
M: 춤 연습실이요. 혼자 춤 연습할 때 행복해요.
A: 춤 연습실에서 최대 몇 시간을 보낼 수 있나요?
M: 서너 시간?
A: 그곳이 어떻게 생긴 공간인지 궁금합니다.
M: 벽이 거울로 되어 있어서 나를 보고 싶지 않아도 볼 수밖에 없는 구조로 생겼습니다. 그래서 초라해지지 않도록 꾸미고 갑니다. 계속 나를 봐야 하니까. 자신감이 떨어지면 춤이 잘 안 춰지거든요. 그리고 연습실에는 문자가 없어요. 글을 읽을 필요가 없어서 좋아요. 제가 심각해지지 않도록 춤이 도와줘요. 시를 쓸 때는 뭐랄까, 좀 심각해지고 가끔은 너무 어두워지고 외롭거든요.
A: 심각해지는 걸 싫어하시나요. 힘들게 하니까? 심각해지는 것과 진지해지는 건 다른 거겠죠?
M: 저는 웃고 싶어요. 그러고 보니 저는 체육인인 것 같아요. 그래서 오래 앉아 있으면 우울해져요. 몸을 움직여야 행복한 것 같아요. 학창시절에도 체육을 제일 좋아했고요, 국어 성적이 제일 낮았어요.
A: 흥미롭군요.
M: 생각해보니 며칠 전에 제 친구가 심리 상담을 받았는데, 언어 능력이 떨어진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건 네가 시를 잘 쓸 확률이 높다는 뜻이라고 해석해줬어요. 이 얘길 왜 했지요? 국어 얘기가 나와서 그런 듯하네요.
A: 웃고 싶으니까? 음, 마지막 질문입니다. 꿈을 자주 꾸시나요? 기억에 남는 꿈이 있다면요?
M: 저는 꿈을 정말 많이 꿔요. 음, 오늘 꾼 꿈은 심각하게 뭔가를 무서워하는 꿈이었네요, 떠올려보니. 절벽을 어떤 친구와 걷고 있었거든요. 저는 무언가 두려워하고 있었어요. 절벽 때문은 아니었어요. 그런데 그걸 들키고 싶지 않았어요, 그 친구에게. 친구가 제가 무얼 두려워하는지 궁금해했어요. 마침 헬기가 날아왔는데요. 절벽에 뙇 하고 부딪쳤어요. 그래서 저는 마음껏 두려워했습니다. 속으로는, 그러니까 내가 두려워하는 건 절벽에 부딪친 헬기도, 프로펠러도, 절벽도 아니지만 마침 공적으로 두려워할 대상이 생겼으니 두려움을 무임승차해야겠군, 생각했습니다. 무서워, 무서워, 두렵고 슬퍼, 하고 말했고 저는 저의 두려움을 이해받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그렇게 저는 겁이 많은 사람이 아닐 수 있었습니다, 꿈에서요.
A: 마음껏 두려워하고 싶어 하는, 공적인 것에 빌려서라도. 두려움을 표현하길 두려워하나요.
M: 두 번 이해받아서 좋군요. 심리상담가?
A: 헉, 아닙니다. 마지막 질문이었는데, 계속 이어지네요.
M: 사실 그런 것도 같아요. 강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 것 같아요. A는 두려운 것이 있나요?
A: 저는, 미래가 두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