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Openisland Dec 29. 2019

다 먹었으면 일어나야지?

PAUSE ,  SPACE / 카페 플라스틱

다 먹었으면 일어나야지?


방문한 식당에서 음식을 다 먹 뒤 그 자리에 얼마나 오래 남아있어 보았?

일반적으로 식사 메뉴를 제공하는 식당의 경우 주문한 메뉴를 먹는 동안에는 자리를 사용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주된 목적인 식사가 끝난 이후 자리에 그대로 남아있는 시간그리 길지 못할 것이다.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

첫 번째 이유는 손님의 입장에서 먹고자 했던 음식모두 먹었기 때문이다.

먹고 싶은 음식을 먹으러 갔는데 그 음식을 다 먹었으니 더 이상 남있을 이유가 없어 것으로, 미련 없이 자리를 벗어나면 된다.

두 번째 이유가 재미있는 부분인데,

손님이 아 있고 싶어도 더 이상 머물러 있으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먹고 싶어서 주문한 음식을 다 먹고 나니 왠지 모르게 이제 자리를 비워줘야 될 것만 같고 필자와 같이 소심한 사람은 가게 주인에게 눈치가 보이기도 한다.

그렇게 우리는 못다 한 이야기를 마무리하기 위해 맛있는 음식으로 한층 더 무거워진 엉덩이를 떼고 다른 장소로 이동한다.

(물론, 예약이 가능한 식당이거나 프라이빗하게 공간이 분리되어있는 곳, 술을 마실 경우는 예외일 수도 있다.)


식당뿐만이 아니라 호텔, 공연장, 병원 등 대부분의 상업 공간이 그럴 것이다.

방문자는 원하는 서비스만큼의 비용을 지불하고 공간은 그에 해당하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 과정에서 판매자와 고객(사용자)의 관계가 형성되고 이 관계는 제공된 서비스를 고객이 모두 사용하게 되면 끝이 난다.

돈을 낸 만큼 받을 것을 모두 받았으니 더 이상 머무를 수 있는 정당성이 없어지는 것이다.


낮 시간대의 카페 플라스틱 내부 전경


그렇다면 커피와 디저트를 주로 판매하는 카페에서는 어떨까?

주문한 메뉴를 모두 다 먹은 뒤 그 자리에 앉아있었던 시간은 얼마나 될까?

식사 메뉴를 먹는데 걸리는 시간보다 커피와 디저트를 먹는데 걸리는 시간이 더 짧지만 카페에 체류하는 시간은 식당에 체류하는 시간은 비슷하거나 훨씬 길지는 않았는가?

다른 상업 공간들과 같은 조건이라면 주된 목적인 커피를 다 마셨을 때 자리를 떠야 하는 게 맞는데 이상하게도 카페에서는 더 긴 시간을 머물러 있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래, 백번 이해해서 디저트 먹는 시간까지 계산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은가?

돈을 지불하고 제공받은 커피와 디저트를 모두 먹었는데 무엇이 더 남아있기에 우리는 당당하게 카페에 남아 있을 수 있는 것일까?

카페에서는 커피, 디저트 말고도 무엇을 팔고 있는 것일까?



라면 먹고 갈래? vs 카페에 간다.

언젠가부터 "라면 먹고 갈래?"라는 말의 의미가 라면만 먹으러 가는 것이 아니라 다른 목적도 숨겨져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카페에 간다."는 말 또한 단순히 맛있는 커피를 즐기기 위한 목적으로 방문하는 것 외에 암묵적으로 또 다른 무엇인가를 함께 할 것이라는 의미가 숨겨져 있다.

(흠... 라면 먹고 갈래? 의 또 다른 의미가 무엇인진 모르겠지만 카페에 간다는 말의 의미와 다른 것은 분명하다.)


"카페에 간다."라는 말을 자세히 한번 풀어보자.

A. 카페에서 커피와 디저트를 먹으러 간다.
B. 카페에서 OOO을 할 겸 커피도 마시러 간다.
    - 누군가를 만나면서 커피도 한잔 마시기 위해서,
    - 친구들과 대화를 하면서 커피도 한잔 마시기 위해서,
    - 책을 읽으며 커피도 한잔 마시기 위해서,
    - 작업을 하면서 커피도 한잔 마시기 위해서,


위에 나열한 커피를 마시며 할 수 있는 행위들은 그것을 하기 위해 특화된 공간이 따로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며, 기호 식품인 커피와 디저트 같이 큰 비중을 차지하진 않지만 일상에서 주된 일상 활동과 활동 사이를 잠시 끊어주었다가 다시 연결해주는 쉼표와도 같은 행위들이다.

주요 문장은 아니지만 쉼표와 같은 소소한 행위들을 모두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는 "공간"이 바로 카페에서 팔고 있는 또 다른 무엇인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돈을 지불하고 커피를 사는 것인지 다른 추가 목적을 위해 앉아있을 수 있는 자리를 사는 것인지 가끔 갈릴 때가 있을 정도이다.

요즘 사람들이 일상의 스트레스를 피해 주중에 단 하루만이라도 여유를 찾으러 호캉스를 떠나듯 그보다 작은 규모로 일상에서 잠깐 멈춰서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 있는, 혹은 하고 싶은 것에 몰두할 수 있는 자유를 얻기 위한 공간을 카페에서는 팔고 있는지도 모른다.



PAUSE , SPACE


카페 플라스틱은 커피 외적으로 쉼표와 같이 소소한 일상 속 활동과 PAUSE의 개념을 공간으로 잘 표현한 카페이다.


다른 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실을 제외한 건물 1층 전체를 사용하고 있으며, 공간 3면에 통유리창이 설치되어 있어 어느 위치에서든 외부 골목길 풍경을 볼 수 있다.

통유리창 테두리에는 시멘트 질감의 벤치가 설치되어있고 통째로 비어있는 카페 중앙에는 인더스트리얼 스타일의 소파 테이블 세트들이 배치되어있다.

회전율이나 공간의 효율성을 따졌더라면 여유 공간을 줄이고 테이블 세트 몇 개를 더 놓고도 남았을 공간인데 플라스틱 카페는 텅텅 비어있다.

건물주가 아니면 이렇게 장사해서 돈 벌 수 있을까? 아니면 어떤 브랜드나 프랜차이즈 카페의 체험 공간일까? 가구 브랜드의 쇼룸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저녁 시간대의 카페 플라스틱 내부 전경
길게 뻗은 스텐레스 카운터, 공간의 여유로움이 카운터에서도 나타난다.


인테리어 디자인에 사용되는 마감재가 공간 내부를 마감하기 위해 건축 구조물에 사용하는 자재의 통칭이라고 보았을 때 카페 플라스틱에는 마감재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검은색 모자이크 타일이 전부다.

그 외에 찾아볼 수 있는 소재들이라고 해봤자 카운터에 설치되어 있는 스테인리스 스틸, 바닥에 별표 금속판, 이 건물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부터 바닥에 붙어있었을 것 같은 도끼다시(테라조), 건축 공사를 하며 사용했을 시멘트와 콘크리트 같은 건축 구조재외장재로 사용되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놓여있는 가구 중 부흘렉 형제가 디자인한 의자와 테이블 세트는 아웃도어 겸용으로 사용 가능한 가구이다.






첫 방문 때의 카페 플라스틱 모습

개인적으로 본가에 가거나 출장으로 부산에 내려갈 일이 종종 있는데 최근 몇 년간 지켜보니 부산의 전포동에 카페거리가 조성되기 시작했다.

그중에서도 카페거리의 중심에 있는 카페 플라스틱을 2017년 10월 8일 친구와 함께 처음 방문했었고, 그 이후로도 부산에 가게 되면 종종 들리던 것을 세어보니 2019년 11월 28일까지 1년에 한두 번에서 세 번까지 방문을 했었다.

방문 빈도수로 치자면 지금 살고 있는 서울에 있는 카페들을 방문한 횟수와 거의 맞먹을 정도로 많은 횟수를 방문한 셈이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카페 플라스틱은 일상에서 잠깐의 시간 동안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을 때 멍하게 시간을 보내기 위해 방문하 곳이었 것이다.

구체적인 이유는 몰랐지만 무의식 중에 나는 그곳을 찾았고 원했었다.

(최근 가장 마지막에 방문한 것은 출장도 명절도 아닌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기 위해 부산 본가에 갔다가 문득 그것을 확인하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방문했었지만...)


2019년 퇴사를 목표로 살아왔던 나에게 이번 한 해는 잃어버린 목표의식과 고민으로 멈춰 있었던 시간이었던 것 같다.

사실은 나에게 정말 필요했던 것은 퇴사나 대단한 목표가 아니라 짧은 시간이라도 나 자신에게 좀 더 관심 가지고 돌아볼 수 있는 여유가 아니었을까?

매거진의 이전글 문래 창작촌의 아이덴티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