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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penisland Feb 29. 2020

보통의 일상

비웠을 때 비로소 보이는 것들 / 카페 앤트러사이트, 서교점

보통의 일상


이른 아침잠에서 깨어 회사로 가기 위한 준비를 하고 집을 나선다.

빠른 걸음으로 동네 주택가의 작은 골목길을 지나 빠르게 달리는 자동차들의 소음을 피해 지하철역으로 들어가 출근하는 직장인들로 가득 찬 지하철에 몸을 싣는다.

자신의 의지가 아니라는 듯 맥없이 닫히는 지하철 문을 바라보며 귀에 꽂은 이어폰이 불러줄 다음 노래를 듣기 위해 플레이 리스트를 뒤적인다.

발 디딜 곳 없이 사람들로 가득 찬 지하철의 살인적인 밀도 속에서 유일한 탈출구는 이 작은 이어폰의 스피커 구멍일지도 모른다.

눈은 핸드폰에 띄워진 수많은 이미지와 영상, 콘텐츠들을 쫓아가기 바쁘다.

갈아탔던 지하철의 종착역에 내려서 무채색의 지하철역 에스컬레이터를 빠른 걸음으로 올라간다.

키가 큰 가로수와 가로등 사이로 떨어지는 아침의 햇볕이 지나치게 눈부시다.


일해야지


퇴근 후 어둑해진 거리로 나와 다시 왔던 길을 돌아서 집으로 향한다.

어두워진 덕분에 아침보다 몇 배는 더 잘 들리는 자동차들의 소음을 지나 지하철 탄다.

아침 출근길에 들었던 음악보다는 조금 더 차분한 음악이 나오는 이어폰과 손에 들린 핸드폰의 블루라이트가 얼굴을 환하게 비춘다.

새까만 밤 배경을 기다렸다는 듯 조명과 간판으로 뒤덮인 거리를 지나 동네 주택가의 작은 골목길로 들어선다.

집으로 돌아와 현관문을 반쯤 열고 그 사이로 겉옷에 붙어있던 소음과 조명들을 찹찹해진 밤공기 위에 털어낸다.

일상에서 우리는 수많은 자극과 스트레스로 소모되며 얻은 부산물들을 채우고 있는지도 모른다.

조용히 자신의 생각과 마음을 돌아볼 틈도 없을 정도로 외부의 자극이 가득 차 버린 나의 몸과 마음에는 무엇이 남아있을까?



비움으로 보이는 것들


공간의 완성을 이야기할 때 마감재, 가구 조명과 같이 디자인 요소들이 채워진 다음 마지막으로 사람이 공간에 채워질 때 비로소 공간은 완성된다고 하는데 그것 말고도 공간을 채우는 것이 있다.

언제나 공기처럼 곁에 있어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눈을 홀리는 모든 것을 비워낸 뒤에야 묵직하게 느껴지는 존재감, 바로 자연의 빛, 소리와 향기가 그것이다.


3층으로 구성된 앤트러사이트 서교점은 작은 갤러리와 커피를 내려서 바로 받을 수 있는 커피 카운터, 따로 분리된 작은 미팅룸 등 다양한 공간 구성을 가지고 있는 규모가 큰 카페이지만 상대적으로 좌석의 수가 많지 않다.

그 반면 모든 층의 정면이 유리창으로 되어 있어 여유롭게 비워져 있는 공간을 자연 채광이 가득 채운다.

1층 한 곳에만 계산대를 겸하는 커피 카운터가 설치되어 있는 것이 프랜차이즈 카페의 모습이라면 앤트러 사이트 서교점은 1층부터 3층까지 전층에 각각의 커피 카운터가 설치되어 있어 각 층에서 바로 커피를 주문한 고객에게 전달한다.

그만큼 모든 공간에서 커피의 향이 진하게 느껴진다.


발걸음을 옮겨 3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오르다 보면 어느 순간 자신을 둘러싸고 있던 소음이 사라는 것 느낄 수 있다.

아, 그리고 보니 이 곳에는 배경음악이 없다.

시끄러운 BGM 대신 남몰래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었던 풍성하고 활발한 2층의 백색소음이 정적인 3층으로 넘어가는 변화의 경계에서 그 존재감을 더욱 강하게 드러낸다.

계단실을 지나 3층에 도착하자 좀 더 줄어든 소음의 크기, 더욱 환하게 쏟아져 들어오는 자연 채광, 계속해서 이어지는 커피의 향기가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다.

돌, 나무와 같이 자연적인 재료 위에 인위적인 가공을 최소화한 유리와 금속만이 공간을 구성하고 있는 이 곳에서는 자연의 빛, 소음, 공기와 같이 눈에 띄지 않지만 공간을 채우고 있는 것들의 존재감이 더욱 강하게 느껴진다.


자리에 앉아 향이 진한 커피와 마주하고 있으니 이제서야 나의 지난 한주를 돌아볼 수 있게된다.

일상에서 지친 자신의 몸과 마음에 무엇이 남아있는지 보이지 않을 때, 자신을 덮고 있는 수 없이 많은 일상의 흔적들을 비워내 보자.

보이지 않았던 내 안의 것들의 존재감을 느끼는 순간 나에게 묻어 있던 일상의 흔적들을 벗어나 좀 더 깊은 곳에 있는 나의 기분과 마음에 집중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일상을 잘 채워내고 잘 비워내는 것만큼 삶을 풍요롭게 만들 수 있는 것은 없을 테니 말이다.




앤트러사이트 1층



앤트러사이트 2층



앤트러사이트 3층



앤트러사이트 빛과 그림자



앤트러사이트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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