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곁에서, 그리고 다시 ‘나’로 살아가는 의미를 배우다
휴직을 결정했던 이유는 오롯이 둘째 아이 케어였다. 아이 곁에 있어야겠다는 확실한 결심이 서고 나니, 휴직하지 말아야 할 이유를 찾을 여유는 없었다. 회사를 그만두는 일보다는 작은 결정, 그러니까 퇴직에 선행하는 결정이라고 내 맘대로 정의해버리고 나니, 날 어떻게 평가할지 주변 사람들의 생각은 보이지 않았다.
걱정은 앞섰지만 그래도 휴직을 하면 입버릇처럼 쉬고 싶다를 달고 살았던 나에게도 좋을 거라 생각했다.
실제로 휴직하는 동안 좋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아이들 아침을 차려주고 집정리를 좀 하고 나면 10시쯤, 오전 회의가 있다면 보통 딱 10시쯤 시작을 한다. 직장에서는 한창 일하느라 집중할 시간이다.
하지만 난 집에 있다. 회의 생각에 시계를 불안하게 바라볼 일은 없었지만, 다른 이유로 시계는 봐야 했다. 방학이니 오전 일정이 있는 날이면 부랴부랴 나갈 채비를 해서 나가야 한다. 오후에 아이들 학원 시간에 맞춰 돌아오려면 일찌감치 서둘러야 하기 때문이다.
가격이며 프로그램이며 꽤 괜찮은 것들은 입소문을 타고 SNS에 홍보가 돼서 예약부터 치열하다. 간신히 예약에 성공하더라도 가는 길이 만만치 않다. 대부분 서울 중심부에 위치해, 변두리에 사는 우리 가족은 이런 프로그램 하나 가려면 부지런쟁이가 되어야 한다. 대중교통을 타고 출근 시간이 막 끝나갈 무렵에 출발해 이런저런 체험과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김치 박물관에서 김치 만들기 체험이나 예약 하드코어인 서울어린이공예박물관 체험은 왜 인기가 많은지 알만했다. 위치가 위치인만큼 끝나고 나서 인사동이나 광화문 같은 돌아볼 곳도 있어 아이의 만족감도, 나의 만족감도 꽤 높았다.
휴직 기간이 아니었다면 평일에 이런 일정은 언감생심이다. 집만을 위한 스케줄을 짜고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이 가장 감사했던 부분이었다.
휴직을 하면 막연하게 시간이 많아지는 것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따사로운 햇살 아래 커피 한잔의 여유로 상징되는 그런 장면들..
나의 휴직기간의 대부분은 방학기간과 겹쳐있었고, 아이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길었다. 아이들과 함께 있으려고 선택한 휴직이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아이들과 하루 종일 함께 있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아침, 점심, 저녁 세 번의 끼니를 챙기고 먹고 치우는 것, 그 사이사이 간식을 준비해야 한다는 것은 하루의 상단 부분을 차지하였다. 재료를 고르고 준비하는 시간까지 포함하면, 그 모든 과정은 누군가의 시간을 온전히 들여야 가능한 일이었다. 그 시간들을 여유롭게 쓸 수 있다는 것은 좋았으나, 그만큼이나 정성을 들여야 한다는 부담도 따라왔다.
단언컨대, 방학기간 동안의 휴직 시간 중 여유로웠던 날은 단 하루도 없었다.
회사에 가면 출퇴근 시간에 근무시간까지 더하면 9~10시간은 아이들과 함께 있지 못하는 시간이다. 그 시간 동안만큼은 '나'라는 사람으로 만의 삶을 산다는 뜻이었다는 것을 휴직기간을 통해 온몸으로 체득하게 되었다. 나로서 맺은 관계의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고, 고민을 하고, 때론 갈등도 겪고 풀어가는 나의 시간. 그리고 그 시간을 보내는 장소. 그 시간과 장소가 나라는 사람을 존재하게 하는 의미란 사실을 어렴풋 깨닫는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은 그 무엇과도 맞바꿀 수 없는 소중한 시간이다. 이 사실은 자명하다.
다시 돌아간다 해도 나는 같은 결정을 할 것이다. 일말의 후회는 없다.
소중한 이와의 시간, 그리고 나란 사람이 나로서 존재할 수 있는 곳의 의미.
이 두 가지를 동시에 깨닫게 해 준, 귀한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