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 아이스크림 1+1 활용법

아르바이트생에게 키핑

by 제이유

두꺼운 패딩점퍼를 입고 밖에 나갔다가 어느덧 땀이 나기 시작할 때, 봄이 오고 있음을 느낀다.

너무 아름답지 않은 표현인가? 땀이라니..


사람이 참으로 간사한 것이 낮 기온이 조금 올라 영상 10도를 웃도니, 겨울옷은 아직 정리도 못 했으면서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겨울잠 다 자고 일어난 곰처럼 슬금슬금 일어나 도서관까지 걸어갔다. 차로 가면 7분, 걸어가면 30분. 조금 가벼운 겨울 외투를 입고 노트 한 권, 필통 하나 들어있는 크로스백을 몸에 얹어 천천히 걸어갔다. 이건 운동이 아니라 산책이라고 스스로에게 주의를 주면서.


도서관은 아늑했고, 조용했고, 더웠다. 아직도 여긴 겨울인가. 시민을 위한 배려가 아주 후하다. 외투를 벗고 읽고 싶었던 책을 앉아 한 자리 차지하고선 두 시간을 내리읽었다. 나의 집중력이 이 정도였나를 새삼 깨닫고 머리를 정리하는 척 사실은 셀프로 쓰담쓰담하고서 일어났다. 도서관에 갈 땐 몸은 가볍게, 머리는 지식을 무겁게 채워오려고 했는데, 작은 크로스백에 욕심껏 4권을 빌려 넣어서 나왔다.


도서관까지 30분을 걸어왔고, 두 시간을 집중해서 책을 읽었다. 충분히 보람찬 시간을 보낸 것 같으니, 집까지는 편하게 버스를 타고 갈까 하는 나름 합리적인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버스정류장보다 더 가까이 있는 편의점 아이스크림 냉장고에 정신이 팔렸다. 버스비로 아이스크림 사서 걸어가는 동안 챱챱 먹으면 참으로 맛있겠다 싶어 버스를 포기했다.


편의점에는 아이스크림 냉장고가 무려 3대나 있었다. 종류도 엄청 많다. 처음 한 3초는 당황한 듯 가만히 들여다봤다. 그러다 늘 그렇듯 주로 먹던 것 위주에서 후보를 간추린다. 낮 기온이 영상 10도를 넘겼고, 후끈한 도서관의 열기에서 막 벗어났으며, 다시 30분을 봄햇살을 받으며 걸어갈 예정인 나는 크리미 하면서 초코가 토핑 된 콘 하나를 딱 집었다. 그리고 계산대로 갔다.


대학생쯤 돼 보이는 아르바이트생이 바코드를 찍더니 이 아이스크림 1+1이라고 말하며 하나 더 가져오라고 친절히 얘기해 줬다. '아, 그래요?' 하면서 굉장히 자연스럽게 아이스크림 냉장고로 다시 향하면서 내가 한 생각은 '뭐, 그러실 것 까지야.'였다. 나는 지금 딱 하나면 충분한데. 두 개 먹기엔 너무 크리미 하고 질릴 것 같은데. 집까지 30분을 걸어가야 하니 중간에 다 녹을 텐데.


그러면서도 똑같은 것을 하나 더 가져가 계산대로 갔다. 잠시 이것을 편의점 애플리케이션 키핑 기능을 써야 할까 고민했다. 그러나 잘 쓰지 않는 앱이기도 했고, 이걸 기억했다가 다시 찾아 먹을 것 같지도 않았다. 나는 어딜 가나 단골이 될 것 같아서 포인트 적립은 잘하는데, 그 포인트를 써먹은 일이 정말 손에 꼽을 정도다.


나는 아르바이트생이 가져가라고 내려놓은 아이스크림 중 하나를 들어 다시 아르바이트생에게 건넸다.


'이거 드실래요? 저는 하나만 먹으면 돼서요.'


응대 매뉴얼에는 그런 경우의 대처법은 안 나와있나 보다. 꽤 당황한 아르바이트생은 어떤 말도 못 하고, 그저 이마로까지 영역을 확장한 눈썹의 이동과 커질 대로 커진 눈이 대답을 대신했다. 이런 경우는 흔하지 않은가 보다.


이건 딱히 선의의 행동도 아니다. 스무 살이나 더 어릴 것 같은 대학생이 아르바이트하는 것이 기특해서 나눔 하자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저 미끼상품으로써 판매량 극대화를 노린 아이스크림 1+1 마케팅이 그날 그 시간 그 상황에서 나는 반가울 필요가 없었을 뿐이다.


다행히 아르바이트생은 약간 머뭇하다가 나의 미소 한 방에 화답해 두 손으로 아이스크림을 받았다. 그리고 머리를 약 30도 정도 숙이면서 고맙다고 얘기했다. 내가 나간 후에 정말 먹었을까? 뭐, 먹기 싫었으면 그냥 아이스크림 냉동고에 다시 넣었겠지.


그래도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집으로 오는 동안 괜히 기분이 좋았다. 그 아르바이트생이 아이스크림을 먹는 동안은 손님이 안 들어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다음에 또 들리게 되면 1+1 하는 음료수나 커피를 사서 하나는 주고 올까 하는 생각에까지 이르렀다. 이건 선의가 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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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EBS 다큐프로그램에서 정재승 과학자가 진행하는 한 가지 심리학 실험이 있었다. 각자의 길을 가던 두 사람을 앉혀 놓고, 20만 원을 주면서 한 사람에게 얼마를 가질 것인지를 결정하게 하는 실험이었다. 오로지 그 사람만 결정권이 있었고, 20만 원을 본인이 다 가진다고 해도 다른 한 사람은 어쩔 수 없는 것이 그 실험의 규칙이었다.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과 반반 나눠 갖겠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고, 어차피 오늘 처음 본 사람이고 결정권이 자신에게 있으니 자신이 다 갖겠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남편이 내게 물었다. 너는 어떻게 할 거냐고. 나는 당연한 듯 말했다. 원래부터 내가 갖고 있던 돈도 아니고 내가 노력해서 번 돈도 아니고, 어느 날 뚝 떨어진 돈이니 나는 옆 사람과 딱 반반 나눠서 기쁨을 공유하겠다고 했다. 0원에서 10만 원이 생기는 건데 그것으로도 감사한 일이고, 옆 사람도 반 나눠 가져 가면 그 사람도 기분 좋게 갈 수 있고, 나 또한 가책을 느끼지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


내게는 편의점 1+1 행사가 그런 의미이다. 아이스크림은 아이스크림 할인 전문점에서 파는 것이 더 저렴하다. 과자도 음료수도 대형마트에 가면 더 싸게 살 수 있다. 그런데 편의점은 말 그대로 도시라면 발 닿는 곳 어디에든 있으면 필요할 때 살 수 있는 편리한 곳이다. 그러니 그 이점이 가격에도 보태어지는 것이라 상대적으로 비싼 가격은 그러려니 인정하고 들어간다. 그런데 1+1이다? 2+1이다? 이건 내게는 기대하지 않은 선물 같은 거다. (물론 1+1, 2+1을 겨냥해 일부러 개당 가격을 높인 제품은 구별할 줄 아는 능력은 있다.)


그래서 1+1 중에 +1, 2+1 중에 +1은 지나가다 만나는 사람에게 나눌 만하다는 거다. 아, 2+1인 시원한 옥수수맛 나는 음료수를 사서 그중 2개는 아이들 학교 셔틀버스 기사 선생님과 안전 보조 선생님께 드리고 +1을 내가 먹은 적도 있다. 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사람에게 마음을 오픈하는 일, 어렵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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