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 없는 천재 VS 운 좋은 바보

당신은 누구로 살고 싶은가?

by 제이유

엄마라면 엄청 똑똑한데
운이 진짜 없는 사람과,
똑똑하지 않지만
엄청 운 좋은 사람 중에
누가 되고 싶어?

어제 첫째 딸이 내게 물었다. 가끔 이렇게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문제로 나를 당황케 한다. 즉답을 할 수 없는 문제다. 한참 뜸을 들였다. 그리고 모름지기 자녀 교육을 중요시 생각하는 엄마로서,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매우 어려운 선택인데, 굳이 골라야 한다면 엄마는 엄청 똑똑한데 운이 없는 사람을 고를게."

"왜?"

"운 좋은 것도 좋긴 한데, 내가 똑똑하면 살면서 길을 찾고 만들어 나갈 수 있잖아. 운 좋은 사람은 그냥 운 좋길 기다리는 건데, 내가 똑똑하면 최고의 것은 못 갖더라도 얼마든지 차선의 것은 가질 수 있지 않을까? 내 힘으로?"


아, 너무 인위적인 대답 같았나? 뭔가 스스로도 석연치 않아 부가적인 조건 설명을 요청했다.


"근데 엄청 운 좋은 건 어느 정도를 말하는 거야?"

"학교에서 내가 좋아하는 애랑 짝꿍 되고, 모둠 활동할 때 친한 애들이랑 되고. 그런 거?"

"에이, 그 정도 가지고 운이 좋다고 하는 건 너무 약한데?"

"막 복권 당첨이 돼. 그것도 한 주 걸러서 2주에 한 번은 당첨 돼!"


운이 범위를 질문했다는 건 사실은 운 좋은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는 거다. 아이는 처음엔 나로선 시답지 않은 짝꿍 운을 말하더니, 내가 반응이 없자 2주에 한 번씩 복권이 당첨된다는 어마어마한 설명을 덧붙였다. 그 정도 운이면. 내 대답을 번복할 만한 가치가 있지. 아이에게 말했다.


"다시 생각해 보니, 그런 운 좋은 사람으로도 한 번 살아보고 싶긴 하다."


그 질문과 대답이 밤새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오늘 아침 남편에게 그 질문을 전했다. 당신은 무얼 선택하겠냐고. 매우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람인 남편은 별로 고민의 시간이 길지 않았다. 단번에 운 좋은 사람을 선택했다. "2주에 한 번 복권 당첨은 너무 큰데?"


나는 내가 아이에게 했던 질문이 공평하지 않단 생각을 했다. 운 좋은 것의 범위는 물었지만 똑똑한 것의 한계는 묻지 않았던 것이다. 엄청나게 똑똑하면 세 번 중에 한 번 기회는 잡을 수 있지 않을까. 아침에 아이가 일어나자마자 다시 물었다. 똑똑한 건 얼마나 똑똑한 거냐고.


"남들 3년 엄청 열심히 공부해서 서울대 갈 거, 1년 공부해서 갈 수 있는 정도?"


아.... 김 빠졌다. 엄청 똑똑해서 나라를 경제위기에서 구하거나, 이름도 모를 바이러스 치료제를 단번에 개발할 수 있다거나, 세계 평화를 보름 만에 구축할 수 있는 정도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정도이길 바랐다. 남들보다 1/3 노력으로 서울대를 갈 수 있는 정도라니. 그래, 그 정도의 똑똑함이라면 역시 운 좋은 사람을 택하겠다고 말했다.


선택의 갈림길.png


반나절이 지났는데도 그 질문이 여전히 머릿속을 맴돌고 있다. 아이에게 모든 조건에 대한 설명을 요구하지 않은 게 미련이 남았다. 똑똑한데 운이 안 좋은 사람은 얼마나 운이 안 좋은 건지, 운이 좋은데 똑똑하지 않은 사람은 얼마나 똑똑하지 않은지.


나는 정말 운 좋은 바보가 되고 싶을까? 아이가 예시로 든 대로 복권 당첨이 된다 한들,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나누지 못하고 삶을 즐기지 못하는 사람이면 어쩌나. 운은 없어도 제대로 똑똑하다면, 그런대로 삶을 누리고 쌓아가며 길을 찾아가는 사람이 낫지 않나.


퇴사를 고민하던 질풍노동의 시기에 지인과 사주카페에 간 적이 있다. 내게 버티라고 하면서도 남편 사주를 보고는 해외 이동수가 있다고 했다. 마침 해외 주재원 자리에 후보로 올라간다 어쩐다 말이 있던 차여서, 갑작스레 사주 신봉자가 될 뻔했다. 하지만 최종 후보 두 명까지는 올라갔으나 선정되진 않았다.


그때 사주보시던 선생님의 마지막 한마디가 불현듯 떠올랐다.


운이 더 좋은 사람이 있지 않은 이상,
남편이 되겠네.

내가 엄청 운이 좋아도 나보다 더 운이 좋은 사람이 있으면, 내 것이 아니게 된다. 이 세상은 나 혼자만 사는 게 아닌데도 명분 있는 퇴사를 위해 그 말에 의지하고 싶었나 보다. 운이 없어서 주재원에 발탁은 안 됐다 하더라도, 우리는 그런대로 또 즐거운 삶을 위해 살아왔다. 덕분에 전원주택으로 이사를 했고 아이들도 나도 평화로운 시간을 보냈다. 내가 원하는 대로 안 되더라도 우리는 스스로 선택함으로써 누릴 수 있는 것들이 많음을 알았다.


그런대로 우리 잘 살고 있다고, 스스로에게 얘기해주고 싶었나 보다. 그래서 아이가 별생각 없이 던진 그 질문이 어제에 이어 오늘 아침, 그리고 지금까지도 내 마음을 헤집고 있나 보다. 이제 좀 편안해졌다. 결국 나는 처음 선택으로 돌아왔다.


운이 없어도 엄청 똑똑한 사람.

스스로 방법을 찾고 길을 만들어가는 사람.

운이 없어서 좌절할 때도 있겠지만, 그래도 내가 선택한 길을 보며 뿌듯해할 줄 아는 사람.


역시 시험문제에서 헷갈리는 게 있으면, 처음 생각한 게 답일 확률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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