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속에 풍경
바람이 빠르면 모래들은 작은 돌들을 넘었고 작은 돌들을 넘은 모래는 바람에 휘날려 더 높은 큰 돌들을 셔핑 하며 넘어 다니다 바람 길목에 있는 바위문을 두드린다. 타타타 그 모래에 손등을 맞아보면 왜 바위가 문을 열어주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걸 알 수 있다.
네팔 트레킹을 하며 하루하루 오르고 있을 때 높은 고도에 한발 떼기도 힘이 들었다. 문득 발밑에 돌을 숨 고르기하며 걸어 넘어가면서 이 돌과 히말라야의 고봉들과 차이점이 무언가라고 의문을 가졌다. 나는 그때 너무 힘들었다. 다리에 인대도 늘어나 있었을 것이다. 배낭 속의 짐의 일부를 타운에 두고 왔는데도 오후만 되면 체력의 한계를 느꼈었다. 발을 한걸음 떼면서 호흡 한 번 또 한걸음에 호흡 한 번의 순간까지 오는 고도에 적응해야만 했었다. 높은 산에 있는 돌들은 그냥 평지의 돌멩이가 아니었다. 난 그 작은 돌들을 넘으며 산에 오르고 있었다. 그 말은 작은 돌들을 넘어야만 산에 오를 수 있는 거였다. 작은 돌과 설산의 고봉은 다르지 않은 하나였다.
1박 2일의 첫날 몽골 파오에 짐을 던져 놓고 카메라에 필름이 든 가방만 메고 나왔다. 소재가 너무도 많이 널려있어 몇 걸음에 셔터가 끊어졌고 방향만 틀면 또 한 롤의 필름이 소진되었다. 중형 필름 한 롤로 찍을 수 있는 컷 수는 6*6 카메라 일 때 12장 촬영이 가능하다. 신중해야 한다. 총과 탄환에 비유한다면 그 말이 맞다. 더군다나 여긴 주변에 아무것도 없다. 100km 떨어진 중국 카스라는 곳이 첫 도시이다. 소진되어 가는 필름을 볼 땐 불안해지고 찍은 필름이 담긴 가방을 볼 때 흐뭇해진다.
그림에 소질이 없어 카메라를 잡았다. 글에 소질이 없어 카메라를 들었다. 지금은 사진에 소질이 없는 거 같아 카메라를 놓았다 (팔았다가 맞는 말) 디지털카메라를 가지고 먼길 여행을 나가도 폰카메라를 찍게 된다.
그러나 이렇게 흑백사진을 보고 있자니 다시금 카메라에 대한 미련이 생긴다. 그게 사진에 대한 미련인지 기계에 대한 소유욕구인지 명료하지가 않다. 카메라가 있어야 사진을 얻을 수 있으니 카메라가 먼저이긴 하다.
폰카메라로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기록한 내가 디지털카메라가 있어도 찍지 않았던 내가 진짜 있다고 찍을까?
저 육중한 바위를 필름에 옮겨 담았다 그림에 소질에 없어도 글로 묘사하지 않아도 그럴 수 있었던 건 분명 그 카메라였기 때문이다. 덩치 큰 디지털카메라가 있었지만 몇 장 찍은 게 다였다. 하고 싶은 말은 소재와 카메라는 서로가 궁합이 있다는 거다.
요즘은 그림에 소질이 없어도 카메라를 대체할 소재를 가지고 창작의 응어리를 풀어낸다. 맞춤법도 힘겨워하면서도 글로서 말을 꺼낸다.
표현은 끝날 때 까지 끝이 나서는 않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