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그리버드의 영광과 그림자
스마트폰 시대의 개막을 알린 아이폰이 등장한지 벌써 10년이 넘었습니다. 이 시간 동안 수많은 모바일 게임들이 우리를 스쳐 지나갔지만, 대부분의 게임은 이름조차 알리지 못하고 잊혔습니다. 하지만 일부의 게임은 새로운 플랫폼과 인터페이스에 최적화된 게임성으로 엄청난 성공을 거머쥐기도 했습니다. 그중에서도 초창기 스마트폰 게임 시장에 전설을 남긴 것이 바로 앵그리버드입니다. 그런데 요즘 앵그리버드를 개발한 로비오의 상황이 그다지 좋지 않다고 합니다. 앵그리버드의 발자취를 되짚어보며 로비오의 현황까지 살펴보겠습니다.
앵그리버드는 매우 단순한 게임입니다. 새총으로 새를 발사해 돼지들의 요새를 파괴하는 게임이죠. 유저가 하는 조작이라고는 새총을 뒤로 당겼다가 놓는 것뿐입니다. 일부 새 캐릭터의 경우 날아가는 동안 화면을 터치하면 특별한 스킬이 발동되지만, 그게 전부입니다. 스테이지를 클리어하는 것도 어렵지 않습니다. 하지만 고득점을 노린다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정확한 각도 계산과 적절한 타이밍의 스킬 사용이 필요하고 운도 따라줘야 합니다. 즉 접근하기는 쉽지만 파고들면 어려운 게임입니다.
앵그리버드는 간단한 게임 방식과 특유의 파고들기로 엄청난 인기를 끌었습니다. 더욱이 게임 내의 모든 설명과 스토리를 글자 없이 간단한 그림으로 처리해서 언어의 장벽도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야말로 스마트폰이라는 플랫폼에 최적화된 게임인 셈이었죠. 이러한 절묘한 게임성을 바탕으로 앵그리버드는 전인미답의 기록을 세우고, 이후 수많은 게임 회사 및 개발자들이 스마트폰 시장으로 몰리게 만드는 간접적인 계기를 제공하기도 했습니다.
앵그리버드의 가격은 0.99달러입니다. 게임 하나에 단 돈 천원 남짓. 누구나 부담 없이 구매할 수 있는 가격입니다. 하지만 판매량이 압도적이라면 가격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앵그리버드는 출시 후 11개월 만에 아이폰에서만 1000만 유로 다운로드를 달성했는데, 이 매출로만 990만 달러, 우리 돈으로 100억 원이 넘습니다. 무료에 광고를 붙여서 출시한 안드로이드 버전에서는 처음으로 월 광고 수익 100만 달러를 달성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출시 2년이 채 되기도 전에 전 세계 79개국 앱스토어 1위, 총 5억 다운로드 돌파라는 어마어마한 기록들을 작성했습니다.
앵그리버드를 제작한 로비오는 핀란드의 게임 개발사입니다. 앵그리버드가 성공하기 전까지는 회사 운영을 걱정해야 할 정도로 상황이 좋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앵그리버드의 성공으로 회사가 기사회생 한 것은 물론이고, 전 세계 게임 회사들의 롤모델로 급부상하기까지 합니다. 로비오 역시 앵그리버드의 성공에 고무되어 지속적으로 후속작과 파생작을 선보였고, 게임을 넘어 다양한 미디어로의 진출도 모색합니다.
게임의 경우 인기 프랜차이즈인 스타워즈와 트랜스포머와 콜라보레이션을 통해 기존의 앵그리버드 시리즈와 차별화된 게임성의 파생작을 만들어 냈고, 평도 좋은 편이었습니다. 이 외에도 실사 영화, 애니메이션, 코믹스, 캐릭터 상품 등으로 앵그리버드 프랜차이즈의 확장을 시도했습니다. 앵그리버드가 인기일 때는 이런 프랜차이즈 사업도 호황이었습니다. 하지만 원작 게임의 인기가 점차 하락세에 접어들면서 프랜차이즈 사업도 타격을 받습니다.
물론, 로비오가 앵그리버드 하나에만 매달린 건 아닙니다. 그동안 개발한 게임도 많고, 다른 개발사의 게임을 퍼블리싱 하면서 나름대로 새로운 아이템을 발굴하기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하지만 어떠한 게임도 앵그리버드에는 미치지 못했습니다. 결국 로비오는 앵그리버드에 계속 집중할 수밖에 없었고, 작년까지 출시된 앵그리버드 시리즈만 무려 18종에 이릅니다. 문제는 앵그리버드의 신작도 과거의 영광을 부활시키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기업의 가치를 알아보는 가장 쉬운 방법은 주가를 살펴보는 겁니다. 앵그리버드의 대성공 이후 로비오의 기업 공개가 임박했다는 기사가 2011년부터 지속적으로 흘러나왔습니다. 하지만 2013년에 들어서면서 상황이 나빠지기 시작합니다. 로비오는 앵그리버드가 10억 다운로드를 달성한 2012년 8,270만 달러의 역대 최고의 영업 이익을 기록했지만, 이듬해인 2013년에는 3,930만 달러로 절반 수준으로 뚝 떨어졌습니다.
로비오는 실적을 개선하기 위해 2014년 CEO를 교체하고 직원 130명을 해고하는 구조조정을 단행합니다. 그럼에도 실적은 더욱 악화되어서 2014년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73%가 감소한 1,080만 달러에 불과했습니다. 그리고 다음 해에는 1,300만 유로의 적자를 기록하고, 260명의 직원을 추가 해고해야 했습니다. 다행히 2016년에는 앵그리버드 영화가 흥행에 성공하면서 상황이 나아졌습니다.
2017년에는 신작 게임들이 나름대로 성과를 거두면서 2억 9,720만 유로의 매출과 3,140만 유로의 영업이익을 달성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2017년 9월 나스닥 헬싱키 증권거래소를 통해 상장에 성공합니다. 공모가는 11.5달러로 상장 직후 시가 총액은 약 우리 돈으로 약 1조 2천억 원을 넘었습니다. 로비오는 상장을 통해 확보한 자금을 앵그리버드 영화 후속작에 투자할 계획임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상장 이후의 상황이 썩 좋지만은 않습니다. 상장하고 두 달 만에 주가가 22%나 폭락한 것이죠. 원인은 상장 후 첫 분기 실적 발표에서 적자를 기록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지금은 어떨까요? 상황이 더 안 좋아졌습니다. 올해 2월 말 잠정 실적을 공개한지 하루 만에 주가가 반토막이 나버렸습니다. 9.95유로였던 주가가 4.94유로까지 폭락했습니다. 이후 로비오의 주가는 평행선을 달리고 있습니다. 상장 당시 1조 2천억 원에 이르던 시가총액도 5,680억 원으로 하락했습니다. 과연 이번에도 영화가 돌파구가 될 수 있을지, 앞으로의 행보를 지켜봐야 할 듯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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