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 배터리 게이트 관련 집단소송에 필요한 것은?
지난 해 12월이죠. 애플이 업데이트를 통해 구형 아이폰의 성능을 제한해왔다는 의혹이 사실로 드러나면서 작은 불씨가 피어 올랐습니다. 이에 묵묵부답하던 애플은 점차 논란이 커지면서 공식 입장을 밝히기에 이르렀는데요. 바로 배터리 결함으로 인해 아이폰이 갑작스레 꺼지는 현상을 방지한다는 명목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와 같은 사실을 사용자에게 알리지 않고 아이폰의 속도를 낮춘 조치에 소비자들은 이는 기만행위라면서 각국의 집단소송으로 번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애플의 공식 입장 발표 이후 연말까지 한국, 미국, 호주, 프랑스, 이스라엘 5개국에서 15건의 집단소송이 진행 중인데요. 그중 미국에서 제기된 한 소송의 경우 배상액이 무려 9999억 달러에 이릅니다. 우리 돈으로 1,000조 원이 넘는 이 금액은 현재 애플 시가 총액보다도 높은 금액이죠. 소송에 참여한 사람의 숫자 또한 적지 않습니다. 국내에서는 법무법인 한누리가 집단소송 참여자를 모집한 직후 며칠 만에 약 20만 명이 넘는 인원이 참여 의지를 밝혔습니다.
중요한 사실은 참여자만 많다고 해서 집단소송에서 승소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명확한 피해 사실 입증이 필요한데요. 가까운 예로 재작년 삼성 갤럭시노트7 배터리 폭발 사건이 있죠. 당시 국내에서 1871명이 제품 리콜에 따른 피해 보상을 요구하는 집단소송을 벌였지만 패소한 바 있습니다. 법원은 최종 판결에서 삼성의 리콜, 환불 조치는 적법하였으며 교환처가 전국 각지에 있었던 만큼 소비자가 감내할 수 없는 수준의 불편을 겪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구글의 경우 작년 9월 남녀 임금 차별에 문제에 집단소송에 휘말린 전적이 있습니다. 전직 구글 여직원 3명이 전체 구글 여직원을 대표해 제기한 소송에서 미국 법원은 기각 판결을 내렸는데요. 소송을 진행하기 위해 필요한 직접적인 증거, 즉 여성이라는 이유로 남자보다 적은 임금을 받았다는 사실관계 입증이 모호하다는 이유 때문이었죠. 해당 법원은 원고들에게 정확한 차별 근거를 수집해 재심을 요청하라고 전했습니다.
물론 승소 사례도 있습니다. 금융계에서는 작년 7월 도이치뱅크가 한 집단소송의 항소를 포기하며 120억 손해배상 판결을 받아들인 사건이 있었는데요. 당시 464명의 투자자들은 주가가 상승하면 이익을 얻을 수 있는 파생 상품에 투자했지만 마지막 날 갑자기 주가가 폭락해 큰 손해를 보고 말았습니다. 이에 제기된 집단소송에서 도이치뱅크가 상품 마감 전날 고의로 주식을 다량 매도해 주가를 조작한 정황이 확인되어 패소한 사건이었습니다.
시간을 거슬러 2011년 싸이월드와 네이트의 개인정보 유출 사례를 기억하시나요? 무려 3500만 명의 정보가 유출되는 초유의 사태 이후 많은 소송이 잇따랐는데요. 대부분이 기각됐지만 2013년 최초의 원고 승소 사례가 나옵니다. 당시 법원은 피고인 SK컴즈가 보안이 취약한 공개용 프로그램을 사용한 점, 보안 관리자가 계정을 로그인한 채로 퇴근하는 등 정보 관리에 취약했음을 인정하며 원고 2737명에게 각 20만 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린 바 있습니다.
이처럼 소송에서 승소하려면 피고의 고의 및 과실 여부가 입증돼야 합니다. 애플 집단소송의 경우 성능 저하 패치가 신모델 구입을 유도하는 악의적 의도였는지, 이로 인해 소비자가 직접적으로 어떤 피해를 입었는지를 원고 측에서 밝혀야 하죠. 두 가지 모두 입증이 쉽지 않아 보이는데요. 집단소송에 참여하는 분들은 사건을 대리하는 변호사가 소송에 앞서 얼마나 구체적인 전략을 준비하고 있는지 신중히 검토해 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이번 배터리 게이트 집단소송은 이례적으로 단시간에 수십만 명에 이르는 인원이 참가하며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이는 미국과 달리 소송 참여자만 보상을 받을 수 있는 한국 법의 특성 탓도 있지만, 일종의 징벌적 참여라는 해석도 있는데요. 애플이 잘못을 시인했음에도 배터리 교체 가격 할인이라는 미흡한 조치로 사태를 무마하려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입니다. 또 그동안 마니아들의 신뢰가 두터웠던 애플이란 브랜드가 안겨준 실망감 역시 컸던 것으로 풀이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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