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보르작 ANTONIN DVORAK (1841~1904)
원작 : 키렐 에르벤의 <슬라브 신화와 전설 집>, 보체나 넴코바의 <슬라브 동화와 전설>
대본 : 야로슬라프 크바필
초연 : 1901년, 프라하 국립극장
때와 장소 : 깊은 숲 속, 어느 호숫가
전 세계 모든 클래식, 오페라극장에서 다음 시즌을 위한 작품 선정을 기획할때 가장 먼저 생각하는 작곡가는 누구일지 생각해 본 적 있습니까? 아마도 많은 애호가를 포함하여 클래식 음악을 잘 모르는 사람들도 누구나 알 것 같은 작곡가들의 이름을 당연히 먼저 떠올릴 것 같습니다. 소위 바모베라고 불리는 바흐, 모차르트, 베토벤의 수많은 작품 중 몇 곡을 우선 선택하여 곡목 리스트를 정리해 볼 것 같습니다. 그리고 브람스, 차이콥스키, 쇼팽을 추가로 구성하고 조금 더 나아가서 바그너,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말러 정도까지 해서 작품 라인업을 만들어보면 극장을 찾는 관객들의 취향을 대부분 반영했다고 할 수 있을 듯합니다. 물론 지휘자, 연주자, 악단의 스케줄 또한 고려해야겠지요.
이외에도 훌륭한 레전드 작곡가들이 있겠지만 한 명 정도 더 넣어서 10명을 만들어 본다면 추가로 드보르작을 넣으면 어떨까요? 아마도 교향곡 7번, 8번을 포함하여 9번 <신세계로부터>등 이 세 개의 교향곡은 매년 많은 무대에서 연주가 될 것 같습니다. 워낙 유명한 첼로협주곡을 기본으로 다양한 실내악작품 및 교향시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유모레스크, 현을 위한 세레나데, 슬라브 무곡 등의 작은 소품 레퍼토리까지, 클래식을 잘 모르시는 분들도 앞부분만 들어 보시면 곧바로 아실 만한 선율을 가진 곡들까지 다양하게 무대에 오르곤 합니다.
관현악, 실내악, 교향시, 소품들만 기억하시는 분들이 많으실 것 같은데 드보르작은 오페라를 꾸준히 작곡했습니다. 그중 반드시 알아 두셔야 할 작품은 그가 미국생활을 마치고 고국으로 돌아와서 자신의 모든 역량을 쏟아부어서 만든 최고의 작품, 체코어로 만들어진 오페라 중 전 세계 오페라하우스에서 가장 많이 공연되고 있는 <루살카 Rusalka, Op.114>입니다. 보헤미안의 민족적 정서를 가득 담고 아름다운 선율미를 극한까지 끌어올린 만년(晩年)의 작품이기 때문에 위의 유명한 관현악 곡, 협주곡들을 많이 들어 보시고 오페라까지 이어서 섭렵해 보신다면 더욱 풍성한 음악 감상을 이어 가실 수 있을 겁니다.
<루살카>라는 작품을 처음 들어 보시는 분이라도 만약 오페라를 다 보고 나시면 어디선가 본 듯한 생각이 저절로 나게 되는데 한마디로 요약하라고 하면 체코 판 인어공주 이야기입니다. 물론 월트 디즈니 회사에서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한 인어공주와는 결말이 전혀 다릅니다.
유럽대륙의 여러 신화들 가운데 물의 요정과 관련되어 전해져 내려오는 설화가 꽤 많습니다. 물과 관련되어 전해지는 이야기 중 세 가지 정도만 추려 볼까요? 가장 오래 전인 그리스 신화에서부터 내려오는 [세이렌]의 이야기가 있고 슬라브 설화에 나오는 [루살카], 그리고 프랑스 지방에서 구전되어 내려오는 [멜루진]이라는 이야기 등이 유명합니다. 호메로스의 서사시 <오디세이아>에서 아름다운 목소리로 뱃사람들을 유혹하는 세이렌의 이야기는 워낙 유명해서 많이들 아실 것 같습니다. 여러분들 집 근처의 유명 커피 브랜드의 모델로 유명하죠. 개인적으로 전 세계 프랜차이즈 로고 중에 인물에 담긴 의미를 가장 잘 살렸다고 생각합니다.
루살카는 물의 요정 의미대로 지역의 농작물이 풍요롭게 자랄 수 있도록 하는 존재로 알려져 있습니다. 또한 자신의 미모나 목소리에 반한 젊은 남자를 유인해서 물속으로 끌고 들어가서 죽인다는 무서운 얘기 또한 전해져 내려옵니다. 드보르작 이 작곡한 교향시 중 <The Water Goblin, Op.107>이라는 작품이 있는데요 물의 정령에 관한 주제를 음악으로 표현한 작품입니다.
프랑스 지방에서 내려오는 물의 설화로 유명한 것으로‘멜루진’이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인어의 모습을 상상하면 좋을 듯한데요, 하반신이 물고기나 뱀의 모습으로 등장합니다. 멘델스존의 작품 중 <아름다운 멜루지네, The Fair Melusina, op.32>가 대표적인 이 이야기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드뷔시의 오페라 <펠레아스와 멜리장드, Pelleas et Melisande>의 주인공인 멜리장드도 이름에서 보듯 위에서 얘기한 멜루진 설화를 기초로 쓰인 작품입니다.
위에서 말씀드린 대로 루살카는 물의 요정입니다. 오페라 속으로 자세히 들어가기 전에 간략하게 줄거리를 알아보시죠. 어느 날 호수 근처 숲 속에 말을 타고 잘 생긴 왕자가 사냥을 나온 것을 보고 한눈에 반합니다. 그때부터 그녀는 왕자가 호수에 오기만을 기다리게 되고 짝사랑에 빠집니다. 루살카의 눈에는 그가 마치 백마 탄 왕자 님처럼 느껴졌던 거죠. 물의 요정인 루살카는 만약 인간이 될 수만 있다면 왕자를 만나서 사랑고백을 하고 결혼하는 생각까지 하게 됩니다. 결국 그녀는 마녀를 찾아가서 인간 여자로 만들어 달라고 부탁합니다. 마녀 예지바바는 루살카의 요청을 받아주지만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는 조건으로 두 가지를 제시합니다. 역시 가지기 어려운 것을 얻으려면 공짜로 되는 법이 없죠. 사람이 되는 대신에 벙어리가 된다는 것이 첫 번째 조건입니다. 두 번째는 사랑하는 그 남자에게 버림받으면 그녀는 인간으로 남아있을 수 없고 다시 호수로 돌아올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여기 까지만 얘기해도 물의 요정인 루살카의 슬픈 운명을 예감하신 분들이 있을 듯합니다.
루살카는 남자에 이미 마음을 뺏긴 상태라 인간이 되었을 때 감당해야 될 두 가지 조건은 귀에 안 들어옵니다. 겪어보지 않은 핸디캡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모습과 비슷하죠? 곧바로 마녀의 제안을 수락하고 인간 여자의 몸으로 바뀌고 왕자를 만나 결혼식을 준비하게 됩니다. 그러나 인간, 남자의 마음은 변하게 되고 결국 버림받는 루살카의 슬픈 이야기입니다. 과연 그녀의 운명은 어떻게 마무리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