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살카 (4)

by operabluff

제 3 막 : 깊은 숲 속, 호숫가


1막은 루살카가 인간이 되는 이유를 설명하고 인간이 되어 왕자를 만나 원하는 사랑을 하고 결혼을 꿈꿨다면 2막은 예지바바의 조건대로 벙어리가 된 루살카가 바람과는 달리 왕자의 사랑을 얻지 못하고 버림받는 것까지 이야기가 전개되었습니다. 말을 못 하는 핸디캡이 왕자를 사랑하는데 걸림돌이 될지 전혀 예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3막짜리 오페라에서는 보통 정-반-합의 구조로 이야기가 진행되는데요, 1막은 루살카의 사랑, 2막은 사랑에 실패한 루살카의 모습을 극명하게 대비하여 관객들에게 보여줍니다.


마지막 3막의 무대에서 2막까지의 갈등이 어떻게 해소되는지, 어떤 방식으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될지 궁금합니다. 다시 1막의 배경인 호숫가입니다. 비장한 음악과 함께 루살카가 외롭게 홀로 앉아 자신의 운명을 한탄합니다. 청춘을 잃어버리고 사랑하는 물의 요정 친구들도 잃어버렸다고 노래합니다. 내 사랑으로 인해 나는 저주받은 채, 차가운 물결 사이를 떠돌고 있을 뿐 … 부질없이 인간세상을 꿈꾼 스스로를 나무랍니다. 아직까지 왕자에 대한 사랑의 감정이 남아있는 것인지 후회의 감정이 더 밀려오는지 정확히 알 수 없는 마음상태입니다.


1막에서 부탁했던 예지바바를 다시 찾아갑니다. 인간세계를 가고 싶어 해서 보내줬더니 벌써 돌아왔느냐고 핀잔을 줍니다. 루살카는 사랑에 배신당하고 모든 것을 잃었다고 외치고 예지바바가 설교하듯 대답합니다. “달콤한 첫사랑은 찰나에 불과하지만 사랑의 고통은 영원히 남는 법이지” 라면서 남자는 믿을만한 존재가 아니고 남자의 사랑을 원하는 인간은 불행할 뿐이라고 강조합니다. 아예 남자란 자연이 포기한 존재라고 독설을 퍼붓습니다.


1막에서는 마법사에게 인간이 되게 해달라고 했다면 3막에서는 이 고통에서 벗어날 방법을 알려달라고 합니다. 이번에도 너의 아픔을 치유할 방법이 있다고 합니다. 사랑에 실패했을 때 상대방 인간의 피가 필요하다고 1막에서 했던 얘기를 반복합니다. 그 피로 네가 처한 이 저주를 씻어내야 한다고 합니다. 그리하면 원래 물의 요정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말입니다. 너를 배신했던 그 남자를 네 손으로 직접 찔러야 한다고 구체적으로 방법까지 설명합니다. 루살카는 너무 놀란 표정입니다. 예지바바는 루살카의 손에 칼을 쥐어 주며 방금 내가 말한 대로 하겠다고 맹세하라고 강요합니다. 루살카는 도저히 말을 끝까지 들을 수 없을 정도로 괴로워하면서 칼을 호수에 던져버리고 차라리 영원히 고통 속에서 그를 그리워하면서 사는 것이 낫겠다고 절규합니다. 그가 행복할 수만 있다면 내가 비참한 삶을 택하는 것이 낫겠다면서 말입니다. 마치 자기가 택한 사랑에 후회하지 않고 이후의 결정도 내 뜻대로 하겠다는 얘기처럼 들립니다.


의외의 반응에 화가 난 예지바바는 “너는 한 남자를 유혹하기 위해 인간이 되길 원하지 않았느냐? 그런데 지금은 인간의 피를 손에 묻힐 용기조차 없다는 것이냐? 인간이 되길 원했을 때는 배신하는 그들의 본성까지 닮고 싶었던 것이 아니냐? 너는 한낱 물방울에 불과할 뿐, 달처럼 창백할 뿐, 아무런 쓸모도 없지. 가라! 영원한 고통을 누려라. 사랑하는 이를 그리워하며 시들어버려라.!” 면서 몰아붙이고 퇴장합니다.

루살카는 이제 혼자 남았습니다. 사랑을 잃은 슬픔과 그에 대한 그리운 감정이 복합적으로 나타납니다. 사랑했던 그 남자를 다시 만날 수 없는 운명을 받아들이는 루살카입니다. 이때 저 멀리서 호수의 요정 친구들의 합창이 들려옵니다.


즐거운 놀이를 마다하고 세상으로 모험을 떠났던 자매여

이제 저주를 안은 채로 우리 곁으로 올 수도 없구나

한 남자를 품에 안았던 그녀는 이제 더 이상 우리와 춤출 수 없네

네가 다가오면 우린 달아날 수밖에 없어, 너의 큰 슬픔이 우리의 즐거운 춤을 방해할 테니까

너는 이제 밤에 황무지에서 일렁이는 도깨비불과 함께 놀뿐이지.

네 빛으로 사람들을 유혹하여 그들을 무덤으로 안내할 뿐.

이제 무덤들 사이에서 새 친구를 찾아봐, 너는 더 이상 우리들과 함께 놀 수 없어.


물의 요정으로 다시 돌아가지 못하는 루살카의 운명을 얘기합니다.

숲 속 호숫가에 낯익은 두 사람이 찾아옵니다. 2막에 등장했던 문지기와 주방보조입니다. 루살카가 떠난 후 왕자가 병에 걸렸습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여인이 숲에서 왔다가 사라졌는데 그녀 때문인 것 같다면서 예지바바를 찾아온 것입니다. 말이 끝나자마자 물속에서 보드니크가 등장하여 무슨 말도 안 되는 얘기를 하느냐고 화를 냅니다. 그녀를 배신하고 오히려 루살카에게 저주를 내린 사람이 바로 그 왕자라고 외칩니다. 루살카의 슬픔에 더하여 격한 감정이 최고조에 다다르는 순간입니다.


모두가 퇴장하고 1막의 모습 그대로 평온한 호수에 하늘엔 달빛만이 비추고 있습니다. 세 요정이 나와서 편안하고 즐거운 모습으로 춤을 추고 노래합니다. 흥분된 분위기를 한순간 긴장을 풀어줍니다. 선선하게 부는 밤바람에 잔잔한 물결이 이는 모습이 그려질 정도로 평화롭고 즐거운 합창이 이어집니다. 갑자기 보드니크가 나와서 루살카의 슬픈 운명에 대해 한탄하자 충격받은 요정들은 어두운 부위기로 바뀝니다. 달은 서서히 구름속으로 들어가고 모두가 퇴장하고 피날레를 앞둔 무대 위 숲 속은 바람 한 점 없이 조용해집니다.


왕자가 숲 속을 가로질러 숨을 헐떡이며 나타납니다. 매일 밤마다 떠난 루살카를 찾아 헤맸다고 울먹입니다. 자신의 잘못을 뉘우친 듯 내게 다시 돌아와 달라고 달에게 외치면서 정신을 잃고 쓰러집니다. 순간 오케스트라가 호흡을 멈추고 오직 플루트와 하프 소리만 들리면서 저 멀리서 루살카의 모습이 보입니다.

두 주인공이 오페라의 마지막 이중창을 시작합니다. 진정한 사랑을 찾아서 온 왕자와 자신의 희생으로 사랑을 완성하려는 루살카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루살카와 왕자의 이중창, Milacku, znas mne znas]

[루살카] 사랑하는 이여 나를 알아보겠나요? 나를 기억하나요?

[왕자] 당신이 죽었다면 나도 죽여주세요, 당신이 살았다면 나도 살려주세요.

[루살카] 나는 죽은 것도 산 것도 아닙니다. 그림자처럼 떠돌도록 저주받았습니다.

나는 헛되이 당신의 품 속에서 비련의 사랑을 꿈꿨었죠.

나는 한 때 당신의 연인이었지만, 이제는 당신께 죽음을 안겨줄 뿐입니다.

[왕자] 당신 없이는 더 이상 살 수 없습니다. 나를 용서할 수 있겠습니까?

[루살카] 왜 나를 안았죠? , 왜 당신은 내게 거짓을 말했죠? 이제 나는 달빛 속의 허깨비에 불과합니다. 영원히 당신을 괴롭힐 뿐입니다. 나는 이제 밤의 유령이 되어서 당신을 무덤으로 유혹해야 합니다. 당신은 열정을 원했지만, 그것은 내가 줄 수 없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당신께 입맞춤한다면 당신은 영원히 사라질 것입니다!

[왕자] 그렇다면 키스해 주세요! 내가 평안을 주세요! 나는 세상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입니다!

죽는 순간까지 키스해 주세요!

[루살카] 당신은 왜 나를 배신했나요? 내 품을 벗어나서 되돌아간 사람이 없다는 것을 당신은 알고 있나요? 내 사랑을 배신했기 때문에 당신도 그렇게 될 것입니다.

[왕자] 당신이 원하는 모든 것을 주고 싶어요. 다만 내게 입맞춤을… 나는 기꺼이 죽겠습니다!

키스해 주세요! 과거를 잊으세요!

[루살카] 내 사랑이 당신을 얼어붙게 만들 겁니다. 얼음 같은 내 품에서 당신은 죽을 겁니다.


왕자의 진심을 알았다는 듯 결국 둘은 키스하고 처음 등장했던 호숫가에 쓰러집니다.


[왕자] 그대의 입맞춤이 나의 잘못을 용서해 줄 것입니다!

나는 이제 행복하게 당신 품에서 죽어갑니다!


루살카는 죽은 왕자를 안고 호수에서 가장 깊은 곳으로 가라앉습니다. 저 멀리서 불쌍하고 가련한 루살카 이름을 외치는 보드니크의 울먹이는 목소리가 들립니다.

마지막 루살카의 한마디로 오페라는 막을 내립니다.


[루살카] 당신의 사랑을 위해, 변덕스러운 당신의 열정을 위해,

내게 이런 운명을 안겨준 모든 것을 위해,

신께서 당신의 영혼에 자비를 베풀기 바랍니다.


두 남녀의 인간세계에서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은 이렇게 저 호수 아래 저승에서 이루어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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