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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겨울 Jan 30. 2020

<기사> 이야기

어떤 동화

1
 
  황급히 말을 달립니다. 다가닥다가닥 말발굽 소리에 맞추어 심장도 쿵쿵 뛰어오릅니다. 삼일 밤낮을 달렸습니다. 말도 사람도 모두 지쳤지만 지체할 수 없습니다. 촉각을 다투는 긴급한 상황, <기사>는 말의 궁둥이에 채찍질을 합니다.
 검은 마녀의 성도, 산 것을 집어삼키는 녹색 늪도, 붉은 가시덤불도 지났습니다. 익숙한 계곡, 저 멀리 위엄의 폭포가 보입니다. 어린 시절을 함께 보냈던 곳, 함께 뛰어 놓았던 푸른 들판이 바로 저깁니다. 그러나 감상에 젖을 시간이 없습니다. <기사>는 고삐를 늦추지 않습니다.
 만월이 하늘을 가득 메운 오늘, 기필코 성에 닿아야만 합니다. 그래야 한 생명을 살릴 수 있습니다. 그의 품에는, 그 가슴속에는 오, 그렇습니다. 석 달의 목숨을 건 여정 끝에서야 찾아낸 명약이 담기어 있습니다. <기사>의 모든 것과 다름없는 사람, 그를 구하기 위해 <기사>는 알고 지내던 모든 이를 적으로 돌리고야 말았습니다.
  밤안개 사이로 어렴풋이 검은 성의 윤곽이 비칩니다. 성의 웅장함에 <기사>의 가슴이 찌릿해집니다.
  이제 다 왔습니다. 모든 고생은 끝이 났습니다.
  성이 산등성이를 잡아먹으며 점점 커져만 갑니다. 해자를 넘어, 성 바로 앞까지 말을 달린 순간,


  철커덩, 커다란 철문이 잠기어 열리지를 않습니다.


  성의 거대함이 <기사>가 겪었던 그 어떤 모험보다 더 큰 두려움을 가져다줍니다. 그가 달려옴을 보았음에도 성문은 굳게 닫혀 열리지를 않습니다. 말이 앞발을 치켜들고 히히힝, 거친 숨결을 토해냅니다. <기사>의 손에 힘이 풀리자 고삐는 느슨해져 버렸습니다.
  기사가 은빛 철제 장갑을 덧씌운 오른손을 번쩍 치켜듭니다. 막막하기 그지없는 철문을 향하여 힘껏 내리치리라, 쿵쿵 심장 박동과 같은 그 소리가 이 성문을 열어주지 않을까, <기사>는 입술을 지그시 깨뭅니다.


  번쩍이는 오른 팔이 힘없이 떨어집니다.
  밤하늘에는 그 어떤 소리도 울리지 않습니다.
  말머리를 돌리고, 붉은 약병은 또르르르, 해자 아래로 흘러내려갑니다. 출렁이는 검은 물결이 덥석 약병을 집어채는 찰나,
 


2
 
 그래서 어떻게 되었나요?
 


3
 
 그래서, 라고 묻는 것은 사건에 강한 집착을 보이는 것이고, 왜, 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은 구성에 흥미를 느끼기 때문이라지. 글쎄, 여기서 너는, 왜, 가 궁금하지 않니?
  왜 <기사>는 문을 두들기지 않았을까?
 


4
 
 나는 말이야, 어디서 독해법을 잘못 주워 들어서인지 무슨 이야기를 보면 대체 어떤 상징이지, 하고 늘 고민해보곤 해. 상징은 법과도 같아서, 잘 쓰면 여러모로 득이 되겠지만, 마침내는 몰입을 방해하는 족쇄가 되어버리지. 이 이야기에는 어떤 상징을 숨겨 놓은 것 같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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