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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겨울 Feb 01. 2020

두 가지 길이 있다

<고려사 최충 열전>을 읽고

  맹자가 말한 <군자의 세 가지 즐거움>을 최충만큼 만끽하였던 자가 또 어디 있을까. 그는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움이 없고 아래로 사람에게 부끄러움이 없는’ 삶을 살았으며, 노년에는 ‘천하의 영재를 얻어 가르치는’ 즐거움을 톡톡히 누렸다. 어디 이뿐이랴, 자손이 대대로 번영하여 그의 뜻대로 학자로서 재상의 직위에까지 오르는 기쁨까지 얻었으니, 우리 역사를 돌아보았을 때에 천수를 누리며 이만큼 많은 것들을 얻었던 이가 또 어디에 있을까 생각해본다. 김종직은 많은 제자를 거느렸다 하나 죽은 뒤 부관참시를 당하는 수모를 겪었고, 정도전이나 조광조는 임금의 신임을 얻어 세상을 바꾸고자 하였으나 종국에는 개혁을 완성하지 못하고 불귀의 객이 되었다.

문헌공도 최충(984-1068)


  최충이 ‘해동공자’의 미칭을 얻었으나, 생각하기로 도리어 공자는 시대의 혼란 속에 중용받지 못하고 그 정치 이상의 구체적 실현에 끝끝내 실패하지를 않았던가. 원통한 마음으로 정계를 떠났던 공자와는 달리, 최고의 벼슬을 역임하며 한 나라의 재상으로 제도를 정비하고 그 역할을 다한 후에 스스로의 결단으로 퇴직하여 후학을 양성하는 데에 힘을 쏟았던 최충의 행보는 같은 듯하면서도 조금은 다르게 다가온다.


  1908년 하버드대학에서 석사 학위를 받고, 1910년 프린스턴 대학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은 한국인이 있었다. 3·1운동 이후 국내외에서 설립한 모든 정부 조직은 일제히 그를 대통령으로, 수상으로, 총리로 선출했었다. 해방 이후 제헌국회에서 초대국회의장으로 피선되었으며 곧이어 수립된 정부에서는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이라는 영광스러운 위치에 올랐다. 그는 학자였다. 늘 그의 이름 뒤에는 ‘박사’라는 호칭이 따라붙었다. 독립운동가였던 그는 정치가였다. 식민지배에서 벗어나 처음으로 수립한 정부의 수반이었다. 그것은 그의 업적에 대한 공과에 크게 상관없이, 존경과 선망의 대상으로 그 이름을 길이 남기기에 충분한 수식어들이었다. 그러나 그는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그 생명이 끊어지는 순간까지 영원한 국부(國父)로, 민족의 태양으로 남기를 소원했다. 또한 그것을 증명하길 원했다. 선거에서 이겨야만 했고, 그리고 압도적으로 이겨야만 했다. 만으로 85세, 혁명이 터지고, 수많은 학생과 시민들이 거리로 몰려나오는 순간까지 그 자리를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이국땅에 뼈를 묻는 순간에, 그는 과연 그 ‘권력욕’을 내려놓을 수 있었을까.


   최충은 자식들에게 늘 권력이 아니라 학문에 종사하라고 말했다. “선비가 세력에 빌붙어 벼슬을 하면 끝을 잘 맺기 어렵지만, 글로써 출세하면 반드시 경사가 있게 된다. 나는 다행히 글로써 현달하였거니와 깨끗한 지조로써 세상을 끝마치려 한다.” 뼈 속까지 학문을 하는 선비였던 최충은, 시간이 지나고 기억이 흐려져도 없어지지 않는 세 가지(三不朽, 德/功/言)가 무엇인지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의 이름이 후세에 남은 것은, 단순히 그가 신하로서 최고의 자리였던 문하시중의 벼슬에까지 올라서, 혹은 열한 가지나 되는 공신의 칭호를 받았기 때문만은 아닌 것이다.


  군자의 세 가지 즐거움에 대해 이야기하며 맹자는, 천하에 왕 노릇 하는 것이 어찌 이에 낄 수 있겠냐고 하였다. 그것은 제왕조차도 감히 누릴 수 없는 즐거움이었다. 「고려사」 <최충 열전>의 말미에 보면, 왕이 국로들을 위하여 배설한 연회에 두 아들의 부축을 받으며 참석한 최충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나이 많았으나 오히려 질병은 없었던,’ 후학을 길러내며 그 즐거움을 누렸던 군자의 상은 많은 이에게 아름다운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다. 반면, 영구집권의 꿈은 부서졌고 자신을 찬양해야 한다고 믿었던 백성들로부터 내쫓김을 당한 권력자도 있었다. 권력욕의 화신, 고국에서 화석이 되고자 했던 한 인물의 쓸쓸한 망명과, 죽음. 오호라, 맹자의 말이 옳았다. 편리함과 개인의 영달을 위해서 아등바등 삶을 영위해나가는 현대인들에게, 출세와, 투기와, 게이트와, 위장전입과, 이런 말에 익숙해져 버린, 돈과 권력의 논의 앞에 나약해져 버린 우리에게,


  앞서 간 두 인물의 발자취는 그 결과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가 아닐 수 없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아름답다. 참으로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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