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겨울 Feb 07. 2020

해질 녘

엄마와 시장과 계란 장수 이야기

1
 
  서늘한 해질 녘, 아스라이 어둠이 내릴 무렵 나는 종종 엄마 손을 잡고 시장에 가곤 했다. 찬 공기를, 사람들의 걸음을, 울퉁불퉁한 시멘트길에 고 검은 물을, 도마 위에서 썰려 나가던 생선 기억한다. 우중충했고, 깨끗하지 않았다. 향긋한 재래시장 모습이 오롯이 남아 있는 것도 아니었고, 군것질 거리가 특별히 따라붙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해 질 녘을 포근하게 만드는 기억이 되었다. 이상한 일이다.


  엄마는 늘 마지막에 계란을 사곤 했다. 까만색 비닐봉지에 담겨 쌓인 계란은 종종 깨졌다. 멀쩡한 것을 덜어내고 남은 깨어진 달걀 두세 개는 껍질을 덜어내고 프라이가 되어 하얀 접시에 담겼다. 계란 한 판에 서른 개, 삼천 원. 종이 판에 담긴 계란을 아저씨는 능숙하게 까만 봉지로 옮겨 담았다. 큰 손이 쓱쓱 움직이면은 서너 개의 계란이 순식간에 이쪽에서 저쪽으로, 아저씨의 것에서 우리의 것으로 바뀌었다. 기분이 좋은 일이었다. 주인이 한 번, 두 번, 그리고 세 번 바뀌었고 계란 한 판은 사천 원이 되었다가 오천 삼백 원이 되었다. 뚱뚱한 아줌마는 계란을 빠르게 담지 못했고 근처에 대형마트가 생겼다. 엄마는 시장에 가지 않았다. 책상을 치우고 서류 뭉치를 분류하다 보니 차곡차곡 쌓여 가던 계란이 생각났다. 이상한 일이었다.



2
 
  단상(短想)을 이끌어나갈 힘이 없다. 둥근 구와 같이 모여들 것만 같았던 편린들이 조각조각 흩어져 바닥을 나뒹구는 데도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단상은 단상으로, 그저 짧은 하소연으로 그렇게 묻혀 버리고 흘러 버리고 흩어져 버다.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것들을, 잉크 방울처럼 녹아 퍼지고 옅어지는 그것들을 되돌릴 수 없는 것을 알면서도 날숨의 무게가 고개를 꺾는다. 깨진 달걀은 껍질을 다시 이어 붙이고 잠들 수 없다. 무정란에 생명이 깃들지 않는다.
 
  손 커졌고 계란 한 판 준다면 빠르게 옮겨 담을 수 있을 것만 같은데. 시장은 멀고 기억은 더 멀고 까만 봉지에 담기는 계란 따위 신기하지 않을 나이가 되었다. 출퇴근길 몸을 웅크린 채 작은 화면에 작은 글자를 빼곡히 적어나가 글은 언제나 급하게 마무리를 짓기 마련이고, 늘 미완성만 같은 에 귀 기울이는 이 드물다는 것쯤 이미 아는데도 늘 새 창을 우고 새 글을 쓰는 것은 시지푸스의 못된 지꺼리. 옮겨 담아야 할 계란이 아니게 되었을 뿐 결국 네가 할 일은 이쪽 것을 저쪽으로, 그의 것을 나의 것으로 만드는 것일 뿐이라고, 저가 잘나고 대단한 것으로 생각하나 결국은 다 그와 같은 모양일 거라고 이야기한다면 돌을 들어 찍으려는지. (너희 중에 죄 없는 자는 돌을 던져라) 도마 위에 놓인 고기는 한 치 앞을 예상하여서 그렇게 슬픈 눈을 하고 있었던 것인지. 오늘 밤은 한 번도 깨지 않고 무사히 잠들 수 있을지. 그리고 그 붉은 이미지들을 다시금 마주할 수 있게 될는지.

매거진의 이전글 보고 싶은 마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