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이 눈 앞의 일인 양 살아가니 사람이 사람을 보고 싶다는 감정은
새로 나온 영화가 보고 싶다거나 기대되는 공연을 기다리는 마음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사랑에 빠져 있다 믿을 때면 불현듯 보고 싶다, 는 어절로 맺는 문장이 손 끝에서 이른 새벽의 보랏빛 나팔꽃처럼 터져 나왔으나
저녁이면 지고 마는 그것처럼 단어에는 깊이가 있을 수 없었다. 보고 싶으면 언제고 보게 되리라는 막연한 기대는 치기 어린 교만. 그 사실을 알지 못했기에 보고 싶다 쉽게 말하고 쉽게 이루고 쉽게 잊었다. 두 눈의 망막에 잠시 맺히는 상으로서의 당신을, 당신의 연약한 그 흔적을 잠시 잡아두는 오직 그것을 바란다는 의미에 불과했다.
그러나 사람 보길 원하는 것이 그것 이상의 감정인 줄을 알게 되고 나서부터는, 어느 누구에게고 함부로 보길 원한다 말을 할 수 없게 되었다. 그것이 빛의 장난과는 거리가 있는 줄을 깨닫고 나서부터는,
누군가 수이 그리워하지 않으려 했다. 그것은 쉽게 이룰 수 있지 않음을 온몸으로 체득하고 나서부터는,
다만 혼자 공상하는 것이 모두에게 피해가 없는 줄로 생각하게 되었다. 달아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모두가 무사하면 그만이라 여겼다. 청승인 줄을 알았지만 더러 이렇게 말하는 것이 옳은 줄로 알았다. 나는 고독하며 앞으로도 계속 그러하길 원한다.
계속 그러하길 원한다.
그러나
오늘은 덜컥 눈이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