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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겨울 Feb 13. 2020

밤을 노래하면

  기억의 줄기를 타고 거슬러 올라가는 생각 막을 방법이 없습니다. 방황하고 배회하던 난쟁이가 오늘은 검은 승합차 안에서 갇혀 버렸습니다. 처음에는 그를 꺼내어 볼 작정이었습니다만, 고개를 들이민 차 안에서 나 역시 서성일 따름이었습니다.
 
  밤을 좋아하는 것은 밤의 어둠이 빛을 더욱 아름답게 하기 때문입니다. 서늘한 유리창 너머 흘러 들어온 빛은 빠르게 지나며 눈을 환하게 만들었다가 각막에 파열음을 내었다가 또 빠르게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렇게 흐르 시간 속에서, 그때의 나는 남겨짐을 바라 마지않았습니다. 그는 언제나 반달과 같은 옆모습으로ㅡ하염없이 어딘가를 바라보던 그 모습으로 남아 있는데 그것은 꿈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런 사람을 애써 외면한 것은
 
 그와 똑바로 마주 보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조심스레 생각해 봅니다. 만일 그가 저 멀리를 응시하는 그때와 같은 모습이었다면 나는 당장이라도 달려가 그와 인사를 나누었을 것입니다. 시큼한 요구르트 같았겠지만 뭐 아무렴 어땠을까요.
 
 검은 차 안에서 나는 그를 보았고, 유리창을 보았고 유리창 너머 적막한 야경을 보았습니다. 한강이 유유히 흘렀고 불빛은 수면 위를 가늘게 드리웠습니다. 어둠만큼이나 먼 거리였지만 별빛처럼 손에 닿을 듯도 했습니다. 심장은 박동을 평소보다 빨리 하였지만 아무도 그것을 눈치채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리고 나타난 것은 새하얀 화면로의 전환.
 
 무서운 하양에서 나는 어떤 것도 볼 수도 느낄 수도 없습니다. 입맛은 쓰고 잔뜩 찌푸린 미간의 주름을 따라 기억은 구겨져 버립니다. 구겨진 것으로는 무엇도 담아낼 수 없습니다. 떨쳐 내야 할 것. 검고 붉은 이미지가 그 색을 몽땅 잃어버린 지금ㅡ나는 새로운 것을 찾아야 합니다. 나는 그리 나쁜 사람은 아닐지 모르지만
 
  나는 몹시도 감정적인 사람입니다. 불을 줄여야 끓는 물이 넘치지 않을 테지요. 소리를 들었으니 부엌으로 달려가 보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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