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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겨울 Jun 04. 2020

동률예찬

  그 시작이 어떻게 이루어지게 되었는지를, 도무지 알 수가 없는 부류가 있다. 정말 좋아하게 되는 것들 중 어떤 것들.

  마음에 드는 영화를 만나면 그 감독의 연출작을 모두 찾아보고, 재미있는 소설을 읽으면 그 작가의 글을 모두 소장하여 반복하여 읽기 좋아하는 못된 성품을 지녔다. 음악을 듣는 것도 같아서, 마음을 준 아티스트의 앨범은 데뷔 시절의 것부터 새로 나온 음반까지, 타이틀이고 인트로 곡이고 할 것 없이 앨범 전체를 플레이리스트에 넣어 두고 뿌듯해하는 편식쟁이다. 세월이 흐른 곡들에 은은하게 풍기는 촌스러움을 인지하는 것마저 그를 사랑하는 자랑이 된다.


<다시 사랑한다 말할까>가 수록된 3집 《歸鄕》 (2001)


  그중에 김동률이 있다. <다시 사랑한다 말할까> 고민하더니 <다시 떠나보>냈다가 <다시 시작해보자>고 고백하는, 그의 연작 노래에 관한 기사를 읽고, 문득 '다시'라는 마음은 어떠한가 궁금해져 찾아본 기억이 난다.

  아니다. 이게 처음이 아니었던가?


<그건 말야>와 <오래된 노래>가 수록된 5집 《Monologue》 (2008)


  결혼 소식을 듣게 된 옛 연인에게 어렵게 찾아가서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얼굴 봤으니 됐다"며 그저 돌려보내고 마는 <그건 말야> 였을 수도

  사랑을 잃고 혼자가 되고 나서야 제 마음의 부족함을 자각하고 이제는 "매일 웃게 해 줄" 수 있을 것 같다고, 이제는 "다 알 것 같"다는 늦은 뉘우침이 담긴 <이제서야> 였을 수도 있겠다. 낡은 테입 속의 반주에서 옛날 사랑의 기억을 상기해내고, 그간 만든 노래들이 다 너와의 추억에서 빌려온 것이었다며, 어디선가 그것을 한 번은 들었을 네 마음들에 참 미안하다 토로하는 <오래된 노래>는 참 많이 듣고도 따라 불렀던 곡이었다.

  한 사람과 맺은 기억에 갇힌 채로

  이미 흩어진 지 오랜 흔적을 억지로 움켜쥐고서, 추억을 재료 삼아 노래를 만들며 하루를 다시 버텨내는 비련한 음악가의 모습을 멋대로 상상해내기도 하고, 가사의 토로들을 이어 붙여 아직까지 그가 혼자인 이유를 그럴듯하게 만들어도 보며 그의 노래를 듣고 또 들었었다. 그러다 보니 플레이리스트는 알려진 곡에서, 옛 가곡을 닮은 듯한 그만의 노래들로, 고전적인 단어와 문어체의 문장 위에 메시지를 담아 진중한 마음과 진실함이 더욱 강조되는 가사의 구절들로 어느새 옮겨져 갔다. 낮은 음성의 고요한 읊조림이 오케스트라와 교차하며 전개를 한층 드라마틱하게 만드는 곡의 구성이나 특유의 비브라토, 가수의 음색 같은 것들을 차지하고서도, 나는 그 가사가 주는 감상에 몸을 떨곤 했다.


<동반자>가 수록된 1집 《망각의 그림자》 (1998)


  사랑을 잃고 그 기억을 정리하는 사람이 있다. 그는 비극으로 끝나 버린 자신의 기억을 "사랑이기엔 우매했던 긴 시간"이라 자평한다. 그럼에도 "되돌아가도 같을 만큼 죽도록 사랑"했기에 "가혹했던 이별에도 후회는 없다"는 담담한 고백. 이별의 상처는 멍이 되어 남았지만 그마저도 "푸른 젊음"이었다고 스스로 위로하던 그는,

  그러나 이별 이후의 삶은 자신에게 덤으로 남겨진 것이라며

  마지막으로 격정적인 고백을 쏟아 놓는다. 닿지 않아 알 수 없는 어느 곳에라도 살아 있기만 해 준다면, 그것으로 충분히 만족할 수 있는 자신이지만, 혹 그대 또한 나를 잊지 않았다면 그대의 마지막 날에라도, 자신의 이름 한 번만 나지막이 불러달라고. 처음으로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써 내려간 가사에 곡을 붙여 완성한 것이라 어디선가 들은 기억이 나는 이 노래는, 가수가 스스로 '가장 특별한 곡'으로 꼽기도 하였었다.


<잔향>이 수록된 4집 《吐露》 (2004)


  사랑이기에, 그대의 노래는 소리가 없어도 은은히 귀를 덮고, 그대의 숨결은 향기가 없어도 주변에 만연한 것. 사랑의 상처에 검게 타들어가고 또 그을려 버린 마음이지만, 그곳에라도 그대의 눈물과 숨결이 덮인다면, 쌓이고 덮인 아픔 위에 그렇게 새싹이 움트고 그것이 자라 고통의 나무가 되는 순간이 오게 된다면 그때만큼은 내 사랑을 받아 달라고, 그렇게 부디, 단 하루라도 살아갈 수 있게 해 달라는 절규의 끝에

  이룰 수 없는 사랑의 고백은 조용히 얼어붙어, 메아리로 작게 번지다 곧 사라져 버리고 마는 것이다. 그대의 빈자리를 메우는 잔향처럼, 목소리의 고백도 옅게 사라져 가고ㅡ

  어쩜 가사를 이렇게 쓴담.





마지막 가사를 인용한 두 곡은 김동률 1집 《The Shadow of Forgetfulness》의 수록곡 <동반자>와 4집 《吐露》의 <잔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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