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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겨울 Jun 24. 2020

그래도 살아갈 이유가 있어요

끄적끄적

  언제나처럼, 오늘은 힘든 하루였어요.


  '좋은 직업인'이 되고자 최선을 다했지요. 단 한 시각도 스스로를 위해 숨 돌릴 시간을 두지 않았어요. 스스로에게 떳떳한 '좋은 직업인'이어야겠기에, 해야 할 일 이상으로 노력을 마다하지 않았고요, '좋은 직업인'이고 싶어 밥시간을 놓쳤고 마시듯 식판을 비워내면서도 또 해야 할 것을 놓칠까 싶어 달려 나갔지요. 갑작스러운 전화, 당일 바로 찾아오겠다는 문자 메시지. 하나를 해결하고자 분주하면 이담의 만남이 가만히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족히 5시간을 넘게 떠들었는데, 이상하지요. 상담이라는 것을 지속해 나가다 보면, 혼의 일부분이 꾸준히 깎여 나가는 느낌이 들곤 하는걸요.


 해야 할 일은 퇴근 후에도 이어졌어요. 전화를 붙들고 있는 사이 주문한 식사가 나왔지요. 식사를 맛보기 전에 먼저 수화기 너머 흥분한 목소리를 들어야 했고, 주문한 카레는 맛이 없었어요. 평생 돈 주고 사 먹어 본 카레 중 최악이라고, 덩달아 식사를 하지 못하고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이에게 멋쩍게 중얼거리며 밥을 비볐지요. 삼분의 일은 먹었을까요. 점심도 후루룩, 저녁도 먹는 둥 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나야 했답니다.


 한 시간 남짓 지나 전화가 다시 이어졌어요. 한 시간 전 본인의 요청을 부정하는 목소리에, 이편의 목소리도 덩달아 커져갔어요. 누군가는 거짓을 말했지만, 마침내는 누구도 확인을 원치 않았지요. 밝힐 수 없는 거짓의 이유들을 추측하는 것은 대단히 진이 빠지는 일이었어요. 의심을 하는 이도, 성급하게 일을 꼬아 버린 이도, 이면에 숨어 있을지 모를 어떤 검은 그림자도, 그 어떤 결과도 마음에 들지 않았답니다. 어떠한 힘도 내게는 없었어요.


 마음 쓰는 이도 오늘을 힘들어했어요. 그간 상한 마음들의 결과가 물결처럼 밀려왔던 요즘이었나 봐요.  휘청이는 걸음걸이가 못내 불안하여 같은 버스에 올라야만 했지요. 집에서 더 멀어지는 나의 피곤을 염려하며 한사코 만류하더니, 이내 내 어깨에 머리를 묻고는 푹 쓰러져 버렸답니다. 어깨를 다독이며 생각했어요. 오늘 하루 하였던 수많은 일들 중에서, 지금이 가장 잘한 일이고요.


 꿈결처럼 몽롱한 와중에 그녀가 말했어요. 늘 데려다주었으면 좋겠다. 뜻 비치는 진심에 고맙고도 미안했답니다. 하루가 그렇게 가고 다시 또 오늘이 와도, '오늘은 힘든 하루'였다고 말하게 되겠지요? 모든 것을 던져 놓고 싶은 순간에도, 그래도 살아갈 이유가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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