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과 흔적을 따라 : 아르세니예프 박물관

홀로, 블라디보스토크⑧

by 한겨울
첫째 날

[블라디보스토크 공항] ⇒ [Dab Burger] ⇒ [독수리 전망대] ⇒ [아르바트 거리(츄다데이 -> 숙소)]


첫째 날의 일정은 앞에서 대부분 언급이 되었는데, 하나 빠트린 부분이 있다면 츄다데이에 잠시 들린 정도다. 츄다데이는 미용/건강 용품을 판매하는 러시아의 대표적인 드럭스토어로, 아르바트 거리에 지점이 크게 있었다. 독수리 전망대에서 길을 헤매다 잔뜩 지친 상태로 굳이 여기에 들렀던 것은 여행 기간 동안 씻는 데 필요한 용품들을 구입하기 위해서였다. 숙소에서 제공하는 것은 조금씩 부족해서, 가지고 다니기 좋은 크기의 여행용 샴푸와 치약 칫솔 세트를 사야 했다.


아르바트 거리의 츄다데이 매장은 평소에는 관광객들로 바글바글한 곳이라는데, 영업 종료가 얼마 남지 않은 저녁 9시 무렵에는 넓은 매장이 텅 비어 있었다. 상품 설명은 모두 러시아어로 쓰여 있었지만 우리나라 마트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브랜드의 것들이 많았기에 고르기 어렵지 않았다. 용량이 제일 적은 샴푸는 그마저도 우리 기업의 것이라, 익숙한 샴푸를 하나 집어 들게 되었다. 여행용 치약 칫솔은 위치를 알 수 없어 매장을 몇 번이나 맴돈 후에야 겨우 찾았다. 늦은 시간이라 직원도 몇 없었는데, 카운터에 있는 직원은 꽤나 무뚝뚝했다. 손님이 들어와도 인사는커녕 본채 만채 하다가, 계산하는 내내 말 한마디 건너지 않았다. 관광지의 몇 음식점을 제외하면, 물건을 파는 가게들은 대개 이런 식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손님이 들어와도 크게 개의치 않고, 따로 눈을 맞추거나 인사를 해 오지도 않고, 그저 자신들이 하고 있던 일을ㅡ또는 자기들끼리의 잡담을ㅡ계속 이어 하는 식이어서, 친절함으로 손님을 끄는 서비스 정신 같은 것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러시아 상점들을 떠올리면, 무관심이나 무뚝뚝함이라는 단어가 함께 연상될 지경이었다.


(의외로 운전자들로부터 친절을 경험한 적이 몇 번 있었다. 길을 건너고자 횡단보도 앞에 서면, 지금 지나갈 저 차를 보내고 뒤이어 건너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기가 무섭게 그 차량이 멈춰 서서 보행자가 먼저 지나가길 기다려주기가 몇 차례. 보행자가 먼저 건널 수 있도록 배려해주는 모습이 우리보다 나은 것 같아 인상 깊었다.)


이때 츄다데이에서 구매한 것들은, 지금도(!) 가지고 있다. 기념이라도 하기 위해 따로 보관하여 둔 것은 아니고, 여행용이라 자주 쓸 일은 없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반으로 접히는 칫솔과 밋밋한 맛의 러시아 치약, 그리고 케라시스 샴푸.




둘째 날 오전

[아르바트 거리(숙소)] ⇒ [신한촌 기념비] ⇒ [우흐 뜨 블린] ⇒ [혁명광장] ⇒ [아르세니예프 국립 향토 박물관] ⇒ [블라디보스토크 기차역] ⇒ [연해주 국립 미술관] ⇒ [율 브리너 생가]


적다 보니 둘째 날은 작정하고 많이도 돌아다녔구나, 싶다. 한 번에 다 적기 어려워 오전 오후로 구분하여 정리하였다. 먼저 앞의 여행기에서 소개가 빠졌던 아르세니예프 박물관과 블라디보스토크 역,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있는 연해주 국립 미술관과 율 브리너 생가에 대해 언급한다.



아르세니예프 국립 향토 박물관(연해주 주립 박물관)


전공이 무색하게, 답사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박물관에 가는 것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문장에 담긴 사람 사는 일과 이야기를 늘어놓고 상상을 더하는 것이 즐거울 뿐, 유물과 건축물을 두고 탐구하는 것에는 이상하게도 그렇게 흥미가 가지 않았다. (말을 꺼내 놓고 보니 오래된 물건에 담긴 이야기를 풀어낼 만큼 지식이 풍부하지 못한 것이 본질적인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다른 나라 여행지에서의 박물관은 더욱 그러했다. 자국사만큼 해당국의 역사에 대한 이해도가 높지 못할뿐더러, 언어적 문제까지 겹쳐지니 전시 물품들이 크게 와 닿기가 사실 어려웠다. 굳이 의미를 찾자면, 여행지에서 마주해야 하는 추위와 더위로부터 쉼을 얻을 수 있는 실내 피난처라는 기능만큼은 그만이었다. 블라디보스토크 여행에서 하루에 세 곳의 박물관과 한 곳의 미술관 일정이 포함된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아르세니예프 박물관의 외관(왼쪽, 사진 출처: http://arseniev.org/ko/) 및 입구(오른쪽, 사진 출처: 하나 투어)


도심 중앙부에 위치한 아르세니예프 국립 향토 박물관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관람한 박물관들 중 가장 전형적인 박물관의 형태를 가지고 있었다. 저명한 여행자 겸 과학자인 아르세니예프 블라디미르 클라브디예비치의 이름을 따온 이 박물관은 러시아 극동에서 가장 큰 규모라고 했다. 실제 겉에서 바라본 외관보다 실내가 훨씬 더 큰 느낌이었다. 전시품도 많고 다양했다. 선사시대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연해주 지역사의 유물들이 시대순으로 배치되었는데, 실내 전시 공간이 결코 좁지 않았음에도, 물품들을 다닥다닥 밀집해서 배치해 놓아야 겨우 전부 진열을 할 수 있었겠구나 싶을 만큼 품목이 많았다. 영문 설명이 없는 것이 많아 파악이 쉽지 않았다는 아쉬움을 덜어 내고 보면, 심미적인 아름다움을 확보하기 위해 전시실 배치에 공을 많이 들였다는 인상을 받았다.


레닌, 레닌, 레닌
시대 흐름대로 화폐의 변천을 알 수 있었다.


1층, 새빨간 방이 눈길을 끌었다. 렇게 제일 먼저 보게 된 것은 레닌 특별전이었다. 붉은 벽면으로 둘러 쌓인 공간이 온통 레닌, 레닌, 레닌으로 가득한 전시실에는 사회주의 냄새가 물씬 풍겼다. 닌의 사진, 레닌의 초상화, 레닌의 얼굴을 새긴 자수... 체크무늬 바닥 위에 석비를 줄 지어 늘어 세워 놓은 공간은, 당시에는 무엇인지 모르고 지나쳤는데, 나중에 찾아보니 연해주에서 발견된 <영혼의 골목>이라는 고대 매장지의 일부를 재현해 놓은 것이라고 한다. 금나라 왕자 에싀쿠이 무덤에서 발견된 석관, 돌 조각품 등을 발굴된 형태에 가깝게 배치해 놓고 있었다.


연해주 지역은 오랫동안 북방 유목민족의 활동 공간이었다. 중국의 중앙 왕조들이 주목한 사례도 드문 지역이었고, 유럽인들의 진출은 17세기 무렵에 가서야 등장하는 사건이었다. 시베리아 방면으로의 동진과 팽창을 거듭하던 표트르 대제의 러시아 제국을 가로막은 것은 청나라였다. 우리는 나선 정벌이라는 명칭으로 알고 있는 사건이다. 청나라의 요청으로, 조선의 국왕 효종은 청나라를 정벌하기 위해 훈련시킨 포수 부대를 청과 연합하여 러시아 원정대에 맞서 싸우도록 하였다. 완강한 저항에 네르친스크 조약(1689)을 맺고 물러난 러시아가 기어이 이곳을 차지하게 된 것은 그로부터 2백 년 여가 지나서였다. 제2차 아편전쟁의 중재 대가로 연해주를 확보한 이래 현재까지 러시아의 영토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연해주 지역서의 전근대 부분에 해당하는 박물관의 전시는 자연히도 문명 세계의 비주류였던 유목민족들의 역사에 상당 부분을 할애할 수밖에 없었다. 참신하게 느껴지는 부분이었다.

금나라 왕자 에싀쿠이 무덤의 형태를 재현한 공간
칼의 신비. 온갖 무기들을 진열한 공간. 이렇게 많은 칼들이 한꺼번에 놓여 있는 모습은 쉽게 보기 드문 광경이다.
선사시대의 유물들. 양과 종류가 엄청나다.


우리 역사와의 접점도 찾을 수 있었다. 영어 표기의 'Mohe tribe'는 우리말로 번역하면 '말갈'에 해당된다. 우리나라 고대사 자료에 자주 등장하는 숙신, 또는 말갈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이들은 고구려와 발해 왕국의 피지배민으로 존재해왔었다. Balhae Kingdom, 발해의 이름도 자연히 이어졌다. 발해 또한 연해주 지역의 옛 주인이었으니 이 공간에 한 자리 차지하는 것은 어색한 일은 아니었다.

다만 중국과 러시아가 발해의 자국사 편입 문제를 두고 쟁탈전을 벌이는 대상국임을 생각해 볼 때에, 러시아의 박물관에 존재하는 발해 유적은 고민의 여지를 남기는 대목이 된다. 발해라는 나라는 이원적인 민족 구성을 가지고 있었다. 지배층은 고구려계이나 다수의 피지배층은 말갈계라는 것이다. 또는 대조영이 속말말갈 출신이라 언급한 일부 중국 기록의 문제로, 발해 건국 주도 세력의 정체성에 대한 시비도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말갈과 발해를 한데 묶어(그것도 말갈의 이름을 앞세워) 발해 유물을 전시하고 있음은 어딘가 석연찮았다.


이미 지나가버린 과거의 기억을 가지고, 그것이 누구의 것이냐를 두고 싸우는 일은 유치하다는 견해에 충격을 받았던 것은 대학 시절의 일이었다. 역사는 '인류 전체의 공유물'로 가치가 있다는 명제 자체에는 흠잡을 구석이 없었지만... 그 뒤에 교수님은 '역사는 기억하는 자의 것'이라는 감동적인 말씀을 덧붙이기는 하셨는데, 그러면서 발해사를 자국사의 정체성을 두고 기억하기 시작한 것은 우리가 먼저라는 이야기를 하셨던 것도 같은데, 러시아 국립 박물관에서도 발해사를 기억하고 있는 것만은 사실인 듯해 보였다.


말갈(Mohe tribe)과 발해(Balhae Kingdom)의 유물 전시. 고구려 계승의 근거로 역사 교과서에 많이 실려 있는 발해의 수막새의 모습이 보인다.

발해 멸망 이후 말갈은 여진이라 불렸고, 점차 지역의 주인으로 발돋움해 나갔다. 금나라(Jin dynasty)는 중국의 절반을 차지했고, 이후에는 만주족으로 종족명을 바꾸고 전근대 중국의 최대 영토를 확보한 청나라를 세우기도 하였다. 박물관은 말갈과 발해를 묶었던 것처럼, 금나라와 금이 몽골에 의해 멸망한 이후 잔존한 세력들에 의해 세워진 동하(East Xia, 대하라고도 한다)를 묶어 이들의 유물을 진열해 놓고 있었다.


금나라와 동하의 유물들.


전시실의 흐름이 근대의 시기로 옮겨가며 오늘날의 러시아와의 접점이 나타나는 유물들이 여럿 등장하기 시작하였는데, 나의 집중력은 점점 바닥으로 치달아갔다. 러시아 제국의 동방 진출, 최초의 정착민에 의한 연해주의 개발, 최초 도시들의 출현 및 인프라 개발에 대한 전시가 이어진다고 하는데... 뒤쪽으로 갈수록 영문 설명이 사라져 가는 느낌이고, 전시물에 대한 흥미도 함께 떨어져 갔다. 박물관 활용 수업을 할 때면, 관람 동선을 따라 박물관 전체를 둘러보게 하지 말고, 특정 전시실의 특정 유물 몇 개에 집중할 수 있도록 설계를 하라 하던데, 전적으로 옳은 이야기였다. 사람의 집중력이 그리 오래 유지되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나의 관람이 점점 산책이 되어 간 것과 같은 이치였다.


위층으로 올라가니, 다른 관람객은 아예 없었다. 바닥을 드러낸 집중력으로 이미 전시의 의미에 대해 찾는 것은 포기해 버린 상황이었지만, 치 예술 전시를 위한 갤러리에 와 있는 것처럼 전시물의 배치나 진열 방식은 여전히 특이하고도 아름다워서, 눈은 퍽 즐거웠다. 사진들을 각각 다른 크기의 액자틀에 넣어 얼기설기 걸어 놓았는데, 개성이 느껴지면서도 조화로움이 느껴지는 구도에 마음이 평화로워지는, 그런 식이었다. 넓고 아름다운 전시실에서도 나는 혼자였다. 심심해진 나는 홀로


박물관에서 찍은 수많은 셀카 중 하나...이다.


셀카를 찍기 시작했다. 사람이 없으니 포즈는 점점 대담해졌다. 벽면에 휴대폰을 세워 두고, 각양각색의 아름다운 전시 공간을 배경으로 타이머를 동작시켜 찰칵. 그렇게, 혼자 간 여행에서 마치 누가 찍어준 듯 한 사진 만들기에 열을 올렸다. 아무도 없는 박물관이라면 가끔은, 혼자 셀카 놀이에 몰두하는 것도 퍽 유쾌한 관람법이 될 수 다.(직원의 발소리를 듣고 황급히 그만둔 것은 덤이다.)


수많은 전시품들. 예쁘고 인상적인 것들이 많았으나, 바닥을 드러낸 집중력 탓에 어느 상황에서 나온 것인지는 도통 기억이 나지 않는다.


길었던 박물관 관람 코스의 맨 마지막에는 눈길을 로잡는 전시실이 있었다. 여러 사진들과 찢어진 편지 조각들 어우러진, 거대한 편지지들로 둘러싸인 이 곳의 이름은 <블라디보스톡에서 온 편지>. 1894년 남편과 함께 블라디보스토크에 와서 1930년까지 머물렀던 여성 엘리노어 프레이의 편지들을 감각적으로 형상화 해 놓았다. 격동과 격변의 시기, 제정 러시아의 혼란과 러시아 혁명, 이어진 적백내전까지를 모두 경험한 그녀가 남긴 편지는 무려 1만 6천여 장. 그녀의 편지는 당시 블라디보스톡과 러시아에 대해 접근할 수 있는 귀중한 사료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한다. 독수리 전망대를 가는 길에 만났던 동상의 주인공이 바로 이 미국인 여성 엘리노어 프레이의 모습이었음을 뒤늦게야 알게 되었다.<계속>


<블라디보스톡에서 온 편지>의 전시 모습과 엘리노어 프레이의 동상(오른쪽 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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