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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겨울 Apr 08. 2021

제목 없는 노트

 참 오랜만이라, 도톰하게 자란 손톱을 마주 비비며 한참을 생각해야 했습니다. 여전히 할 말이 남았을까요. 많은 것들을 보아 머리가 아프고, 생각에 없던 문장을 잔뜩 써내며 쓸 말은 미룬 지 오래된 나날이었습니다. 여느 때처럼 지치고 목이 말랐고, 어차피 마음대로 되지 않는 세상 일에 작은 권태마저 느끼고 있었지요. 살갗을 마주대지 않으려 귀퉁이에 웅크리고는 질끈 눈을 감은 채로 흘려보내야 할 이 시간에, 구태여 무슨 할 말이 있어 이토록 또 무엇을, 꾹꾹 눌러 적어 내려가고 있단 말입니까.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됩니다. 나는 나이가 끔찍합니다. 작은 이의 기억 속에 영원히 남을 수 있는, 범인이면 꿈도 꾸지 말아야 할 그런 웃기지도 않은 것을 위해 나는 젊음을 허비하였습니다. 허비한 시간에 그럴듯한 이름까지 붙여 주었습니다. 그것은 지금까지 나를 살게 했습니다만 허망한 이름임을 진즉 알고 있었습니다. 그게 다 무어란 말입니까. 잔인한 계절이 어김없이 돌아왔습니다.

꿈을 꾸었습니다. 기억에도 없는. 그럴 리 없는 이가 나를 잠시 뒤집어 놓았습니다. 나는 그 사실이 헛헛하여 한 사람씩 한 사람씩을 떠올리고, 가만 그 자리에 붙잡아 보았습니다. 그러나 누구도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바라던 것들은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자취를 감춘 흔적이 물들고 퇴색하여 깨끗해진 날은 언제고 있었습니다. 다시 오리라 바라마지 않은 적도 있었겠습니다마는 이내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아 집니다. 나는 나이가 끔찍합니다.

변하지 않는다는 것은 좋은 일이지요? 한아름 품에 안고서 죽음의 섬에서 살아 돌아온다면 애초에 있지도 않았던 다른 이가 될 수는 있었을까요. 빨간 딸기가, 부정과 혐오를, 고질병을 안은 채로 육천 걸음에 칠천 킬로미터를, 달리고도 갇힌 유리잔에, 두 다리는 힘이 남아 있지를 않고, 육백과 십구만 명 사이의 그 어딘가쯤에서

4분 뒤엔 네가 올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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