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은 지옥인가?

ch01. 위협의 순수성(8)

by 농어

새벽 두시쯤 과제를 하다 배가 고파져 부엌의 찬장을 열었다. 텅 빈 찬장에는 라면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고, 라면이 별로 내키지 않았던 나는 편의점을 가기로 결정했다. 그러다 문득 병뚜껑의 존재가 생각나서 문구멍을 통해 밖을 내다보았다. 새까맣기 그지없는 복도만이 눈에 들어왔고, 나는 사람들이 혹시 깨지 않을까 걱정하며 도어락을 열었다. 띠리링- 단조로운 도어락 열림 소리와 함께 나는 문을 열었고, 이어 드르륵- 병뚜껑의 끌림 소리가 귀에 들어왔다. 씨발. 뭔데.


나는 병뚜껑을 주워 들었다. 삼다수라고 적힌 병뚜껑은 어디서나 구할 수 있는 흔한 물병의 뚜껑으로 전혀 독특한 모양이나, 의미를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어떠한 위협의 수단처럼 느껴졌으며, 둥글기 그지없는 플라스틱 뚜껑은 날을 간 칼날처럼 나를 찌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우선은 무시를 한 채 밖으로 나왔다.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붙여 슬리퍼를 질질 끌며 밖으로 나섰다. 편의점에 들러 삼각김밥과 라면, 그리고 4캔에 만원 하는 세계맥주를 골라서 나왔다. 날은 여름으로 접어들어 꽤나 더웠으므로, 물방울이 송글 맺힌 맥주를 나는 한시라도 빨리 마시고 싶었다. 건물에 들어가 계단을 올랐다. 아무래도 새벽시간인 만큼 사람들이 깨지 않도록 주의하며 계단을 올라 3층에서 4층으로 넘어가는 구간에 접어들었다. 나는 괜히 두려움이 들었으나, 내가 죄를 지은 것도 아니고 고작 편의점을 다녀온 것이다라고 애써 자위하며 조심스레 계단을 올랐다. 제발 아무 일도 없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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