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01. 위협의 순수성(9)
4층에 올라오자 아무도 없는 텅 빈 복도만이 나를 반겼다. 401호의 문이 열려있지도, 402호 앞에 병뚜껑이 놓여 있지도 않았다. 하지만 복도의 전등이 점등되고 보인 나의 집 앞에는 아까 분명히 챙겨 버렸다고 생각한 삼다수의 병뚜껑이 놓여 있었다.
편의점은 도보로 5분 거리로 가까웠으므로 내가 삼각김밥과 컵라면을 사서 오는 시간은 아무리 길게 잡아도 15분 내외였다. 혹시 내가 아까 버린 게 아니라 옆에 놓고 나갔나? 그럴 리가 없었다. 문을 열 때 이미 병뚜껑은 밀렸으므로 당연히 최소한 문에서 떨어져는 있었어야 했다.
나는 비밀번호를 치며 한편으로는 병뚜껑을 주워 들었다. 이 빌어먹을 소리가 누군가의 의도된 행위라면 나는 그 행위를 사전에 차단할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누구나 알 듯 생각만 조금 하면 병뚜껑이 밀리는 소리보다 전자식 도어락의 비밀번호 입력 소리와 열리는 소리가 더 큼은 자명한 사실이었다. 그럼에도 병뚜껑 소리는 그 소리보다 훨씬 크게 내게 느껴졌고, 실제적이고도 실재하는 진정한 사실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와 신발도 벗지 않은 채 신발장에 서서 조용히 기다렸다. 도어락의 잠김 소리가 들리고 한참이나, 아주 한참이나.
몇 분이나 흘렀을까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게 되었을 때 비로소 나는 방 안으로 들어와 사 온 음식들을 조리하기 시작했다. 전자레인지가 돌아가는 소리는 고막을 찢을 것 같았고, 전기포트에 물 올리는 소리는 샤워기를 틀어 놓은 것처럼 찌릿하게 귓가를 울렸다.
밥을 배부르게 먹은 후에 나는 금세 식곤증을 느끼며 잠에 들었고, 과제도, 시험도, 취업도, 졸업도, 병뚜껑도 잊을 수 있었다. 꿈에서 만큼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