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은 지옥인가?

ch01. 위협의 순수성(10) - (完)

by 농어

다음 날, 잠에서 깨어난 나는 또 늦잠을 잤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따위로 살려고 자취를 시작한 것은 아니었지만, 자취를 시작하니 삶이 이따위가 되어가고 있었다.

심지어 오늘까지 과제 제출을 프린트했어야 했기에 시간은 촉박했고, 나는 급하게 머리만 감고 얼굴을 씻은 뒤에 가방을 챙겨 집 밖으로 향했다. 이어폰을 귀에 먼저 꼽아 둔 뒤에 잭을 휴대폰에 연결했으며, 동시에 손도 대지 않고 신발을 구겨 신었다.


문을 열고 급하게 밖으로 나가자, 401호의 앞에는 예의 ‘그’ 할아버지가 서 있었다. 평소와 같으면 인사라도 시도를 해볼 법했지만, 나도 마음이 급해서 황급히 계단을 내려갔다. 그러나, 1층에 도착해서 통유리에 비친 내 모습은 청바지에 티셔츠에 구두를 신어 다소 우스꽝스러운 모습이었다. 나는 이 모습이 부끄러워 신발만 갈아 신고 오자라고 결단을 내렸다. 하지만, 계단을 올라갈 생각을 하자, 급하게 나오며 스쳐간 할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랐다. 아직도 나와서 서 있을까? 말 걸면 어떡하지? 혹시나 갑자기 나를 공격한다면? 생각은 계속 맴돌고 나는 이내 학교로 그저 발길을 옮기는 수밖에 없었다.


학교에 도착해 프린트를 뽑고 앉으니, 바로 교수님께서 출석을 불렀다. 나는 늦지 않음에 안도하며 수업을 들었고, 그러다 교수님이 지난 과제 우수 학생에게 간단한 Q&A 시간을 갖자고 하셨다. 기적처럼, 나는 우수 학생으로 선발되었고, 100여 명 되는 학생의 앞에 서게 되었다. 교수님은 질문을 받으러 나오는 나를 보며 “이 학생은 상당히 독특한 패션 센스를 가지고 있네요.”라고 말했고, 강의실에선 웃음꽃이 피어났다.


나는 속으로 욕을 지껄이며, 내 안에서는 이 모든 원인을 제공한 할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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