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02. 사례연구(1) - 관찰
나는 그 이후로 내 안에서 어떤 퓨즈가 끊어졌음을 느꼈다. 나는 두려워할 것 없는 20대의 남성이었고, 군필이었으며, 참는 것이지 피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느꼈다.
우선 내가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할아버지는 왜 복도에 서서 우리를 위협하는 것인가. 병뚜껑은 누구의 짓인가. 나의 합리적 의심에 의해 402,403,404호의 앞에만 있기 때문에 401호의 할아버지가 범인인 것인가. 혹은 402, 404중에 누군가 자신의 알리바이는 만들며 할아버지에게 누명을 씌우고 있는 것인가에 대한 것이었다.
그것보다 가장 우선은 집주인에게 연락하여...? 뭔가 이상했다. 전화로 얼굴도 보지 못한 집주인에게 “네, 제 집 앞에 지금 누가 병뚜껑을 놓는데 조치를 취해 주세요.”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증거가 없는 현실. 범죄가 아닌 범죄. 범인이 아닌 범인들. 확신할 것이라고는 내가 암묵적으로 느낀 두려움이 전부였으며, 그 마저도 나의 착각의 일부일 수도 있었다.
그래, 이제부터는 보다 면밀하게 관찰하자. 할아버지의 움직임을 1순위로 하되, 2호나 4호 중에서도 누군가 나를 노리는 걸 수도 있다. 어쩌면, 2호나 4호도 내가 자신들을 노린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나는 속으로 되뇌었다. 나는 이제부터 피식자가 아니라 포식자다. 나는 이제부터 피식자가 아니라 포식자다. 나는... 두렵다.
다음날 아침, 학교를 가기 위해 문을 열었다. 드르륵. 이제는 삶의 일부라고 할 수 있는 ‘그 소리’가 아침의 상쾌함을 불쾌함으로 변이 시킨다. 2호와 4호의 앞에는 병뚜껑이 없었다. 도대체 무슨 패턴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다. 나는 계단을 천천히 내려갔다. 살금, 살금.
수업을 마치고 공부를 하다 저녁 9시가 다 되어서야 나는 집에 돌아왔다. 전등이 하나씩 점등되고, 나는 최대한 소리를 내지 않으려 천천히 계단을 밟았다. 그렇게 계단을 오르다 갑자기 앞집의 도어락 소리가 들리고, 문이 벌컥 열렸다. 나는 화들짝 놀랐으나 이내 3층이었음을 깨닫는다. 3층의 남자는 놀라는 나를 보며 ‘으억’ 하고 소리를 질렀고, 우리는 서로의 놀람에 안면을 붉히며 각자의 집으로 향했다.
집 앞에는 아니나 다를까 병뚜껑이 놓여 있었다. 이런 젠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