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은 지옥인가?

위협의 순수성(7)

by 농어

후배와 이야기를 나누던 중, 급하게 마무리 해야 할 레포트가 생각난 나는, 양해를 구한 뒤 서둘러 집으로 발길을 옮겼다. 집 앞에 도착해 담배를 한 대 피우면서 후배와의 대화를 곱씹는다. 그래 누가 봐도 당연히 그렇게 느껴지겠지. 병뚜껑이라니 뭔가 시대착오적인 발상 같잖아. cctv도 있고, 온갖 디지털 매체들로 둘러 싸인 시대에 이런 아날로그 적인 물건이라니.

별 일 아닐 거라는 확신이 들었고, 담배를 비벼 끈 나는 집으로 향했다. 문을 열려던 나는 무의식적으로 문 밑을 내려다보았고, 거기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역시나라는 생각을 하며 고개를 돌리자, 402호와 404호. 401호를 제외한 나머지 두 집의 문 앞에 요즘 나를 신경 쓰이게 하는 그 물건 병뚜껑이 있었다.

순간 사고가 정지 되었다. 뭐지. 내가 실수로 발로 찼었나? 아니 그럴리 없다. 그렇다면 이 사람들의 집 앞에는 병뚜껑이 왜 있을까. 그래 누군가 놨겠지. 머리가 재빠르게 회전한다. 집 안에 사람이 있다면 저 병뚜껑은 외부의 누군가가 놓은 것이다. 집 밖에 있다면 외부의 누군가가 놓았거나, 본인이 나가면서 집 문 앞에 바짝 붙여 놓은 것이다.

두 번째라면 도둑의 여부를 체크할 수 있는 다소 구시대적이지만 효율적인 방법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첫 번 째라면? 지금 집 안에는 사람이 있고, 그 사람은 병뚜껑의 존재를 모른채 컴퓨터 따위를 들여다보고 있는 거라면? 그 때, 401호의 도어락이 풀리는 소리가 들렸고, 나는 나도 모르게 잽싸게 집안으로 발을 들여 놓았다.

괜히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잘못한 것 따위는 하나도 없었는데. 아, 지난 밤에 친구들이 놀러와 혹시 시끄러웠을 수도 있겠지. 그래, 그건 살짝 미안하니까. 일단 좀 피하자.

작가의 이전글타인은 지옥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