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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yserious J May 10. 2018

[창작소설] 갈증 - 그렇게 과학이 내게로 왔다

3장. S의 이야기 (1)

     여러분은 ‘과학’이란 단어를 들었을 때 무엇을 떠올리게 되는가?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 학문?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이해해야만 하는 무언가? 여러분이 떠올리는 이미지가 무엇이든 간에 그 어느 누구도 결코 과학이 없어져야 한다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질문을 바꾸어보겠다. 여러분은 과학을 평생동안 공부해 나갈 의향이 있는가? 이 질문에 이르면 사람들의 대답은 ‘예’, ‘아니오’로 양분되기 시작하지만, 두 개의 의견 각각에 해당하는 인원을 일일이 새어본다면 아마도 ‘아니오’ 쪽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많은 사람들이 과학이 없어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정작 과학의 미래를 짊어지겠다며 나서는 사람은 찾아보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이처럼 아직까지 우리 사회는 ‘과학이 꼭 필요하지만 선택받은 자들만이 그것을 배워나갈 수 있다’라는 인식이 지배하고 있다. 심지어 나조차도 과학은 엘리트들만이 공부할 수 있는 특권이라고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 생각이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허점들과 잘못된 점들을 지금은 매우 잘 알고 있기에, 나와 같은 실수를 다른 사람들이 반복하고 있는 모습을 볼 때면 안타까운 마음이 들고는 한다.

     과학은 대중적인 학문으로서의 잠재력을 충분히 갖추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만약 우리 스스로 과학에 다가서려는 노력만 할 수만 있다면 그 어느 누구에게나 과학은 좋은 친구가 되어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와 동시에 과학계에 종사하는 사람들 스스로도 과학을 대중들에게 어필하여, 과학이 대중적인 학문이 될 수 있도록 노력을 지속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소설은 선입견을 가지고 선뜻 과학에 다가가지 못하는 사람들의 모습과 대중들에게 친숙한 존재가 되고 싶지만 그 방법을 찾지 못하고 겉도는 과학의 모습을 J와 S라는 두 소년, 소녀에 투영하여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다.

     여기서 이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키워드가 바로 ‘갈증’이다. 더운 여름이라는 계절적 배경 속에서 두 소년, 소녀는 저마다의 갈증을 하나씩 가진 채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그들의 갈증은 진한 황산이 본질적으로 지니고 있는 또 다른 종류의 갈증을 통해 역설적으로 그 해소의 실마리를 찾아가게 된다.

     ‘S로부터 하나의 동등한 인격체로 인정받고 싶다’라는 갈증이 결국 증오라는 형태의 비뚤어진 감정으로 변하게 된 J의 모습과 ‘평범한 아이들과 친구가 되어 평범한 무언가를 느끼고 싶다’라는 갈증을 통해 고뇌하게 되는 S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과연 ‘나는 어떤 갈증을 지니고 살아가고 있을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는 것도 이 소설을 즐길 수 있는 한 가지 좋은 방법이 되리라 생각한다.

     오늘은 화학실험 수행평가가 있는 날이다. 다른 친구들은 수행평가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화학시간이 오지 않기를 바랐던 것 같지만, 나는 며칠 전부터 오늘의 화학실험을 고대해왔다. 화학실험 하는 것을 좋아하냐고? 뭐…… 딱히 그렇지는 않다. 오히려 사용하는 약품 중에 몇몇 위험한 것들이 있기 때문에 실험 자체에 대해서는 재미보다는 두려움이 앞서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화학실험 하는 것이 전혀 두렵지 않고 기대된다. 친구와 한 팀이 되어 같이 오순도순 이야기하며 실험을 즐길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친구’라는 말은 항상 내게 정감을 불러일으킨다. 일종의 동경의 대상이랄까? 사실 지금까지 난 친구를 단 한 명도 제대로 사귄 적이 없다. 물론 내 주변에 딱 달라붙어서 괴로움만 안겨주는 녀석들은 많지만 말이다. 그 녀석들은 ‘S’라는 한 인간을 보고 내게 접근한 게 아니었고, 항상 내게 ‘어떻게 하면 성적을 잘 받을지‘나 ’우리 부모님은 무슨 전공을 가르치시는지‘, 나아가 ’명문대에 다니는 두 오빠가 중고등학생 시절에 어떤 방식으로 공부를 했는지‘ 등의 이야기만 늘어놓곤 했다. 그 녀석들과 있으면 난 항상 숨이 막혔다. 공부를 잘하는 일부 아이들만 내게 이야기를 걸어오고 그마저도 전부 공부 이야기라는 사실은, 내게 슬픔만을 안겨줄 뿐이었다. 그리고 그런 나의 마음이 분출된 것이 바로 지난 번 오빠와의 통화였다.


     한 달 전이었던가? 외국으로 유학을 간 둘째 오빠한테서 오랜만에 전화가 걸려 와, 점심식사를 끝내자마자 탈의실로 달려가서 통화를 했던 적이 있다. 두 오빠 모두 나와는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편이라 어릴 적부터 오빠들에게 어리광을 많이 부려왔고, 그 날도 오빠의 목소리를 들으니 갑자기 그립기도 하고 옛날 생각이 나기도 해서 오빠에게 학교생활에 대한 이것저것을 시시콜콜 이야기했던 것 같다. 그러다가 문득 왜 내 옆에는 항상 상위권 애들만 머물게 되는지, 난 다양한 아이들과 친구가 되어 즐겁게 수다를 떨고 싶은데 왜 그러지 못하는지에 대한 회의감이 들었다. 울적해진 내 목소리를 눈치 챘는지 무슨 일이 있냐고 물어오는 오빠에게 난 결국 내 마음을 털어놓았다.


“오빠, 나는 왜 제대로 된 친구들을 못 만드는 걸까? 공부 잘 하는 녀석들은 항상 내 주변에 맴 돌면서 뭐 하나라도 얻어갈 것이 없나 눈치를 살펴. 항상 공부, 공부, 공부 얘기 뿐이고. 나도 다양한 친구들과 재밌게 얘기 나누고 고민상담도 하고 노래방에 가서 같이 노래도 부르고 싶은데... 진짜 그러고 싶은데... 상위권이 아닌 애들은 나를 어려워하는 것 같아. 그 아이들과는 친해지고 싶어도 그게 쉽지가 않아.”


     이에 오빠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내게 말했다.


“네가 더 노력을 해야지. S야, 절대 다른 사람이 먼저 다가오길 기다리면 안 돼. 네가 먼저 다가가기 위해 노력해 보렴. 그러면 그 아이들도 네 맘을 알아주는 날이 올거야.”


     그런데 그 당시는 오빠의 말이 내성적인 내 모습을 책망하는 것 같아 왜 그렇게 서운하게만 느껴지던지... 몰려오는 서운함에 울컥한 나는 오빠에게 소리쳤다.


“걔들이 나를 어렵게 생각하는데 내가 뭘 더 어떻게 해야 하는데! 선입견을 가지고 사람을 판단해버리고…… 걔들은 바보야! 너무 싫어!”


     난 홧김에 휴대전화기의 종료버튼을 강하게 꾹 누른 후 씩씩대면서 여자탈의실을 나섰다. 그 때 옆의 남자 탈의실에서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났지만 ‘설마 듣지는 못했겠지’라는 생각으로 그냥 발길을 돌려 교실로 향했다.

   

     교실로 돌아와서부터 한 시간 동안은 칠판만 노려보고 있었다. 머릿속에선 둘째 오빠가 했던 말만이 계속 맴돌았고, 나를 이해해주지 않는다는 생각에 화만 치밀 뿐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나는 이성을 되찾아갔다. 그리고 비로소 내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었다. 말로만 친구를 만들고 싶다고 했을 뿐 진정으로 내가 노력했던 적이 단 한번이라도 있었던가? 내가 먼저 다가가려 하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이 내게 다가와주길 바랐던 내 모습이 왠지 뻔뻔하게만 느껴졌다. 이런 부끄러움을 등에 업은 채 나는 한 가지 결심을 했다. 앞으로는 내가 아이들에게 먼저 다가가 보겠다고. 그렇게  스스로 한 번 노력을 해보겠다고.


     하지만 한 달이라는 시간이 다 지나가도록 나는 제대로 된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준비물을 들고 오지 않은 아이들에게 내 것을 빌려주려 해도 빌려준단 말이 잘 나오질 않고, 가끔씩 대화에 끼기 위해 다가가면 금방까지도 즐겁게 수다를 떨던 아이들이 수상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자리를 옮긴다.


     특히 J라는 아이의 경우, 이유는 잘 모르지만 나에 대한 적대감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문제를 풀다가 머리를 식히기 위해 고개를 들 때면, 항상 나를 노려보고 있다가 시선이 마주치면 피해버리는 그 아이의 모습을 발견하곤 한다. 왜 그런 적대적인 시선으로 나를 보고 있는 것일까? 내가 그 아이에게 무슨 실수라도 한 게 있는지 아무리 곰곰이 생각해봐도 딱히 ‘이거다’라고 할 만한 게 생각나지 않는다. 별 다른 이유도 없이 미움을 받을 만큼 나에게 큰 문제가 있는 것인지…… ‘결국 난 아무리 노력해도 이 정도 밖에 되지 않는 것일까’라는 회의감으로 요즘 들어 부쩍 우울의 정도가 심해지고 있었다.


     그러던 중, 짝을 이루어 화학실험을 할 것이라는 반가운 소식을 이틀 전에 화학 선생님께서 전해오셨다. 비록 내게 적대감을 보이는 J와 짝이 되긴 했지만, 누군가와 파트너가 되어 무엇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난 행복할 따름이다. 이번엔 기필코 내가 먼저 손을 내밀어 친구를 만들고 말테다. 내가 적극적으로 다가가면 J도 마음을 열고 날 좋아해주지 않을까? 그리고 그것을 계기로 삼을 수 있다면 다른 아이들에게 다가가 친구가 되는 것도 가능할 것이라는 낙관적인 생각이 들었다.


     그 뒤로 난 화학실험을 하게 되는 날만을 고대해왔다. 그리고 오늘, 드디어 내가 꿈꿔오던 바로 그 화학실험을 하게 된다. 내 표정이 얼마나 밝아보였는지, 출근 전 신문을 보고 계시던 아빠께서는 ‘아침부터 무슨 좋은 일이 있기에 그렇게 미소가 가득하냐?’라고 물어보시기도 했다. 그리고 그런 아빠께 ‘비밀!’을 외치며 볼 뽀뽀를 해드렸더니, 기분이 좋아지신 아빠가 용돈을 주셔서 내 행복한 기분은 배가 된다. 받은 용돈을 소중하게 지갑에 넣고 부푼 마음으로 학교로 향하며, 오늘 만약 J와 친해질 수 있다면 이 돈으로 맛있는 것을 사줘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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