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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yserious J Apr 23. 2018

히가시노 게이고 추리 소설의 시대별 변화양상 (4)

사건의 동기는?- 범행동기의 추적과정에서 부각되는 다양한 사회 문제

     1990년대 이후에 추리 소설에 나타나는 범행 트릭의 질(quality)적 양상이 높아지자, 독자들은 범행동기에 관한 범인의 심리에 대해서도 근본적인 궁금증을 가지게 되었다. 그 결과,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은, 본격적으로 ‘범행의 동기’에 대한 추적 과정을 담아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다양한 사회적 문제들이 부각되었다.

     사실 엄밀히 말해, ‘범인이 왜 범행을 저질렀는지’에 관한 내용을 다룬 히가시노 게이고 최초의 소설은 1996년에 발표된 『악의』로 볼 수 있다. 『악의』는 발간되자 마자 일본 전역에서 많은 판매 부수를 올리며 대박을 쳤지만, 어떠한 이유에선지 히가시노 게이고는 2000년대에 접어들기까지,범행의 동기를 다룬 다른 소설들을 발표하는 것을 자제해왔다. 그렇기 때문에 본 논문에서는 범인의 범행동기를 본격적으로 다루기 시작한 첫 소설로서 『짝사랑』을 상정하여 논의를 진행하고자 한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악의』. 히가시노 작품 중 'Why'에 초점을 맞춘 실질적 최초의 소설. 참고로 진짜 명작 중의 명작!!

 한국에서 발간된 『짝사랑』의 새로운 제목은 『아내를 사랑한 여자』이다. 성 정체성에 관한 혼란을 겪고 있던 한 여자(미쓰키)가 본의 아니게 직장 동료의 스토커를 죽이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이 책은, 친구인 데쓰로가 여자의 뒤를 추적하며 자신이 파악한 그녀의 감정을 간접적으로 독자들에게 전달하는 방식으로 스토리가 진행된다. 그리고 그 결과, 독자들은 서서히 미쓰키의 진짜 범행 동기에 대하여 파악해 가는 동시에, ‘성 정체성을 어떻게 정의해야 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에 맞닥뜨리게 된다. 즉, 히가시노 게이고는 『짝사랑』을 통해, 모든 범행의 동기의 이면에는 사회적인 문제가 존재하고 있다는 자신의 깨달음을 본격적으로 제시하기 시작한 것이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아내를 사랑한 여자』. 원제는 『짝사랑』. 성 정체성에 대한 사회적 이슈를 다루고 있는 작품이다.

     그리고 이러한 깨달음은 2000년대 이후에 발표된 대부분의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들 뿐만 아니라, 미야베 미유키나 미나토 가나에, 기시 유스케와 같은 다양한 작가들의 작품에서도 급속하게 등장하기 시작한다. 심지어,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초창기에는 범행의 트릭을 밝혀내는 구성에 초점을 맞추던 『유가와 교수 시리즈』까지도, 『성녀의 구제』[1]와 『갈릴레오의 고뇌』를 통해 '사회문제의 부각'이라는 주제로 그 흐름을 바꾸어 가고 있는 실정이다.

    
     한편, 사회문제를 중요하게 다루는 추리 문학이 재등장한 것은 모리무라 세이치의 『인간의 증명』 이후 몇 십 년만의 일이다. 모리무라 세이치가 활동하던 당시만 해도 사회파 추리소설에 관하여 갑론을박이 격렬하게 오고 갔던 것과 비교하면, 히가시노 게이고가 주도하고 있는 2000년대 이후의 사회파 추리소설은 큰 반대의 의견 없이 그 세력을 활발히 넓혀가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회파 추리 소설의 성장 이면에는,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선 더 많은 사회적 문제들에 대한 토론이 활성화되어야 한다’라는 시민의식의 성장이 존재하고 있다[2].


모리무라 세이치의 『인간의 증명』. 사회파 추리소설의 대표작으로 불린다. 이후에 출간된 『야성의 증명』이나 『청춘의 증명』도 추천한다.


[1]'범행 트릭의 체계화’와 ‘범인의 심리를 통한 사회적 문제의 부각’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는 과도기적 성향의 소설이다. 『성녀의 구제』의 발표 이후 곧바로 발간된 『갈릴레오의 고뇌』, 그리고 그로부터 3년 후에 발간된 『한여름의 방정식』을 검토해보면, 책 속 내용에서 사회적 문제가 차지하는 비중이 조금씩 조금씩 커져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2] 책을 자유롭게 구매 가능하고, 원하는 책을 살 수 있는 자본이 충분히 확립되어 있는 국가들의 경우, 이미 의식주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은 해소된 상태로 생각할 수 있다. 이러한 국가들의 경우, 더욱 더 고차원적인 욕구를 위해 노력하게 되며, 그 욕구의 해소를 위해 다양한 사회 문제에 대한 토론의 장이 열리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 토론의 장을 여는 역할을, 작가나 언론인, 그리고 학자와 같은 지식인층이 담당해 주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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