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야 당근홀릭, 헤비 유저를 만드는 당근마켓의 이야기
땅 파면 돈이 나올까요? 가능성은 매우 희박합니다. 물론 초등학교 놀이터에 철봉 밑을 파면 코 묻은 500원, 100원 동전 몇 닢이 나올 수도 있겠네요. 그런 일말의 희망을 가지고 땅을 팔 바에야 여러분의 집 곳곳을 파보면 어떨까요? 당신에게 더 이상 설렘을 주지 못하는 물건을 몇 가지 고르세요. 그리고 당근 마켓에 등록하세요! 자, 이제 돈이 나올 겁니다 :)
저는 최근 겨울옷과 여름옷을 정리하다 액자로 만들어진 2018 평창 올림픽 코카-콜라 기념 배지를 발견했습니다. 재직했던 회사에서 관련 행사를 진행한 후에 기념품으로 받은 것이었죠. 당시 펭수만큼이나 핫했던 캐릭터 수호, 반다비로 만들어진 알록달록하고 배지들은 너무나 귀여웠지만 안타깝게도 제 취향은 아니었습니다. 코카-콜라의 MD에 그다지 로열티도 없었고요. 하지만 무려 올림픽 기념품! 그냥 멋지잖아요? 버리거나 남 주기에는 뭔가 아까워 여름옷과 함께 침대 밑 수납장에 1년을 고이 보관해두었죠.
지난주 이 애물단지로 12만 원이라는 거금을 벌었습니다. 이걸 누가 사겠어?라는 의구심을 가지고 반신반의로 지역 기반 중고거래 서비스인 당근마켓에 올렸는데 진짜 산다는 사람이 나타난 거예요! 구매를 요청한 이웃은 '평창 올림픽'의 엄청난 광팬으로, 평창 관련된 모든 물건을 수집하고 직접 평창에 기념관까지 만들었다고 합니다. 제 침대 밑에 먼지 수북이 쌓여있던 물건이 올림픽 기념관에서 빛을 발하게 된 거예요. 버리려던 물건을 진짜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팔고 12만 원이라는 돈이 계좌에 꽂히는 순간! '누이 좋고, 매부 좋고'라는 오랜 선인들의 말씀이 절로 떠올랐어요. 짜릿했죠. 그리고 이런 횡재를 얻게 해 준 '당근마켓'을 쓰면서 유저 중심의 탁월한 서비스 경험에 감탄했습니다.
네, 이미 눈치채셨겠지만 저는 '당근홀릭'(한달동안 한 번씩 꼬박 방문한 유저)의 배지를 받은 당근마켓 앱의 헤비 유저입니다. 틈만 나면 '뭐 팔아볼까' 고민하다가 사진 찍어 올리고, 사고 싶은 물건이 생기면 네이버보다 일단 당근 마켓을 먼저 검색하는 사람이에요. (중고뿐 아니라 미개봉으로 저렴하게 올라오는 경우도 많거든요!) 이렇게 물건을 올리고 나면 '카톡 카톡' 알림음보다 '당근당근' 알림음이 폭발할 때도 있어요.
더불어 저는 오피노의 마케터입니다. 제가 담당하는 클라이언트의 제품을 어떻게 하면 잘 팔 수 있을지 고민하면서, 동시에 사이트로 유입된 고객에게 어떤 브랜드 경험을 제공하고, 목표하는 전환 행동을 이끌어낼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사람이에요. 그런 관점에서 당근마켓은 저의 전환을 수백, 수만 번 끌어냈기에 이 앱을 애용하면서 인상 깊었던 서비스 경험을 기록하고자 합니다. 마케터이자 일반 유저로 얻은 이 인사이트들을 활용하여 언젠가 꼭 고객사에 제안하고 싶네요.
왜 '당근'일까요? - 단순한 네이밍이 주는 특별함
당근마켓의 '당근'. 무슨 뜻일까요? 푸릇푸릇한 초록색 잎을 가진 단단한 주황색 당근이 떠오르는 귀여운 이름입니다. '당신 근처의 마켓'이라는 의미에서 지어졌다고 하는데요. '지역' 중심의 친근한 이미지를 위해 영어 대신 한글 단어를 활용했다고 합니다. 지향하는 서비스의 성격을 잘 녹인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되네요! 이 귀여운 네이밍을 잘 활용한 아이디어를 여러 곳에서 만날 수 있었는데요. 채팅 메시지가 오면 일반적인 기계음이 아니라 '당근, 당근' 하고 알림이 울립니다. 굳이 앱을 보지 않아도 당근마켓에서 메시지가 왔구나 체크할 수 있는 거죠. 그리고 앱 곳곳에 안내 메시지는 '~합니당'체로 작성되어 자연스럽게 친근한 브랜드의 이미지를 심어주고 있어요. 딱딱하게 적힌 일반적인 안내 메시지가 아닌, 한번 더 눈길을 이끌 수 있는 재미있는 요소입니다.
당신의 매너는 몇 도인가요? - 매너온도 기능
모든 유저는 가입하면 정상 온도인 36.5도의 '매너온도'를 부여받습니다. 이 매너온도는 다른 사용자로부터 받은 칭찬, 후기, 비매너 평가, 운영자 징계 등을 종합하여 만든 매너 지표인데요. 커뮤니티, 그중에서도 중고 거래 서비스를 기반으로 하는 특성상 신뢰도가 매우 중요한 만큼 거래를 할 때마다 상대방의 매너 온도를 체크하여 구매를 원활하게 이어질 수 있는 매우 중요한 기능입니다. 은근히 이 온도를 올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저 역시 높은 매너 온도를 유지하고 얻기 위해서 문의에 최대한 빠르게 답변하고, 중고 물건을 팔더라도 포장 하나하나 꼼꼼하게 신경 쓰게 되더라고요! 이는 에어비엔비의 후기와 같은 전략인데요. 유저들은 거래 후기로 쌓은 신뢰도를 활용하기 위해 다른 앱보다 당근 마켓을 꾸준히 이용하게 될 거고(리텐션 상승), 당근 마켓 입장에서는 양질의 유저와 비활성 유저를 구분할 수 있는 좋은 기능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체온을 응용한 '매너 온도'라는 표현도 좋은 아이디어였다고 생각됩니다.
더하기보다는 과감한 빼기 - 기능을 최대한 단순하게 유지
지금의 당근 마켓은 각 게시물마다 댓글 기능이 없습니다. 원래 댓글 기능이 있었지만 2020년 2월부로 삭제되었는데요. 서비스의 핵심인 1:1 채팅 기능에 집중하자라는 판단 아래 과감하게 이용률이 낮은 댓글 기능을 삭제하였습니다. 서비스를 제공하는 입장에서는 자꾸만 좋은 기능을 추가하고 싶은 마음이 앞서기 마련인데요. 기능 확장에 대해 '보수적'으로 검토한다는 김재현 대표의 인터뷰가 인상 깊었습니다. 군더더기 없이 꼭 필요한 기능만 있기에 높은 연령대도 부담 없이 사용할 수 있는 인기 앱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이 아닐까 합니다.
김: 일단 공동 창업자 중 한 명이 제품 기능을 넓히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 대부분의 기능 확장에 대해서 보수적으로 검토한다. 기획자에게 기능 추가하는 것 해보라고 하면 누구나 다 한다. 기능을 단순하고 쉽게 유지하는 것이 어려운 거다. (생략) - 김재현 대표 인터뷰 중
2020년 5월 기준 679만 명의 이용자를 확보하며 국민앱 쿠팡에 이어 쇼핑앱 2위를 기록한 당근마켓. 중고 거래 앱임에도 불구하고 11번가, 위메프, G마켓과 같은 쟁쟁한 커머스 앱의 이용자 수를 가볍게 뛰어넘고 있는데요. 특히 20대부터 50대 이상까지 전 연령대에 걸쳐 인기 앱 상위 순위를 기록하는 것도 주목할 만한 포인트입니다.
저는 당근마켓에게 어떠한 댓가도 받지 않았는데요.(서비스를 이용해 쏠쏠하게 용돈 벌이는 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렇게 여러 이야기가 나올 수 있는 건 유저 입장에서 앱을 이용하며 좋은 경험이 쌓였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유저 입장에서도, 마케터의 입장에서도 탄탄하게 성장하고 있는 당근마켓의 미래를 응원하며 이만 글을 마무리합니다 :)
[참고자료]
https://medium.com/daangn/당신의-기억에-오래-남고-싶어요-스타트업-네이밍-이야기-45929924ea12
https://platum.kr/archives/142701?fbclid=IwAR1Siigi2IKkOaRyJRK1NLMhP07U0CzDPkMfOWkHurN66iv5GkuId7fMYUM https://platum.kr/archives/140472?fbclid=IwAR27W1pmuqDN3VlmsgG3aUKTJdxVeU1Qx7hN33srV0EAYMlE9Pn1pC7ZO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