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던 재택근무, 막상 하려니 어렵죠?
어디서든 근무할 수 있는 삶, 사실 많은 사람들이 바라는 근무형태지만 막상 하려면 쉽지 않습니다. 집에서 근무하려니 엄마는 빨래를 널라고 하고 고양이는 자꾸 내 노트북 위에 올라오고, 침대가 나를 유혹하지요. 사실 오피노에서는 코로나 훨씬 이전부터 주 2회만 사무실에 출근하는 문화를 갖고 있었습니다. 화요일과 수요일에는 모두 모여서 함께 근무를 하고 다른 요일은 원하는 장소에서 자유로이 일할 수 있습니다. 시간도 9 to 6가 아니라 유동적으로 조절해가며 근무가 가능합니다. 오전에 병원이나 은행에 있다고 해도 뭐라 하는 이 하나 없습니다.
처음에는 이런 방식이 조금 부담스러웠습니다. 나도 날 못 믿는데 대표님은 날 어떻게 믿고 이렇게 자유롭게 근무할 자유를 주는 걸까? 이상하고 신기했습니다. 처음 들어온 동료분들도 이 부분에 대해서 의문을 갖거나 이게 실제로 가능한 것인지 궁금해하곤 합니다.
오피노에 입사한 지 9개월, 이제는 이 체계가 얼마나 효율적이고 행복하게 일하는 방법인지 느끼며 나름의 방법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오피노만의 문화와 제가 스스로 체계를 잡기 위해 적용해봤던 방법 몇 가지를 소개해봅니다.
아침 9시에서 12시 반 사이, 전 직원들 모두 본인의 아침을 사진 한 장으로 공유합니다. 아침식사가 될 수도 있고 출근길 모습을 찍기도 하고, 반려식물 사진을 올리기도 합니다. 일반 회사처럼 매일 얼굴을 보지는 못하지만 그로스 모닝은 동료들과의 친밀도를 높이는데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아침 일찍 운동 후 업무를 시작한 동료에게 자극을 받아 저도 조금 더 일찍 일어나 하루를 시작해야겠다고 마음을 다잡기도 합니다.
일주일을 시작하기 전, 우리는 각자의 투두 리스트를 작성합니다. 프로젝트 별/ 요일 별로 업무를 미리 나눠두어 계획적인 한주가 되도록 합니다. 이 리스트는 그냥 적는 것이 아니고, 팀 별 프로젝트 관리 시트를 바탕으로 작성됩니다.
프로젝트 관리 시트는 고객사 별 KPI를 바탕으로 작성되며 주 별로 점수와 이슈, 고객사의 반응 등을 평가합니다. KPI를 기준으로 작성하기에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업무가 명확한 목표와 KPI를 위한 것인지 계속 생각하여 기준을 벗어나지는 않도록 도와줍니다. 업무 우선순위를 정한 뒤 진행하기 때문에 일이 몰렸을 때도 우왕좌왕하거나 어떤 것부터 해야 하는지 고민할 필요가 없습니다. 제가 일을 할 때 가장 도움을 많이 받은 부분입니다. 특히 저희 팀은 사무실을 출근하는 날에 팀 미팅을 진행하여 각자 프로젝트의 진행 상황을 공유합니다. 문제나 고민이 있을 때 혼자 앓고 있기보단 팀 미팅에서 오픈하여 다른 팀원들과 해결방안을 함께 찾습니다. 그래서인지 일주일 내내 한 공간에 모여있지 않더라도 혼자서 일한다는 느낌을 받지 않습니다.
우리는 다양한 툴로 계속 연결되어 있습니다. 오피노에서 이용하는 메인 툴은 슬랙입니다. 언제든 궁금한 것이 있다면 슬랙으로 누구에게나 질문할 수 있습니다. 또한 목적에 따라 서로의 질문을 공유하는 ‘위키’ 채널이나 재미있는 콘텐츠를 발견했을 때 알리는 ‘콘퍼런스’ 등 다양한 채널을 활용합니다. 개인 간의 대화나 답변이 한 번에서 그치지 않고 슬랙에 남아 모두가 함께 보고 배우는 데이터가 됩니다.
그밖에도 트렐로를 통해 디자인 관리나 신규 프로젝트의 진행 상황을 공유합니다. 화상 미팅은 슬랙, 행아웃 또는 줌 등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선택합니다. 공유 드라이브에는 회사에서 진행하는 모든 프로젝트의 자료가 업로드되어있어서 다른 동료가 진행하는 고객사의 레퍼런스 또한 자유롭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업무 시간이 딱히 정해져 있지 않다 보니 초반에 저의 업무시간은 계속 늘어지기 일 수 였습니다. 어떨 땐 눈을 뜬 순간부터 침대에 눕기 전까지 하루 종일 일하는 날도 있었습니다. 주어진 자유가 제 하루를 더 망가트리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당시 제가 찾은 해결책은 업무를 시간 별로 체크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루 계획을 시간 별로 세우고 또 실제 업무에 소요된 시간을 체크했습니다. 스스로 데드라인을 만들어놓고 업무를 진행하다 보니 업무가 더 빨라지기도 했습니다. 또는 2시간이면 충분히 완성할 수 있다고 생각한 보고서도 데이터를 체크하다 보니 4시간이 넘게 걸리는 것을 발견할 수도 있었습니다.
회고한다, 뭔가 거창한 것 같지만 저에겐 일기를 쓰는 것처럼 오늘 뭘 잘했고 잘못했는지 체크하는 일입니다. 저는 KPT 방식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업무를 하며 스쳐 지나가는 좋은 점들과 문제점들을 메모했다가 우선순위에 따라 다시 시도합니다.
Keep: 좋았던 점, 계속 유지되었으면 하는 부분
Problem: 문제라고 생각하는 점
Try: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실천할 것
저는 생각보다 자율성을 잘 이용하지 못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스스로 맨날 해야 하는 습관을 오전, 오후로 정해두어 제 생활을 더 타이트하게 만들었습니다. 회사가 잡아주지 않는 시간을 관리하기로 한 거죠. 아직 모든 것을 완벽히 습관으로 만들지는 못했지만 저의 목표 습관은 다음과 같습니다.
오전: 아침 식사, 요가소년 요가 30분
저녁: 물구나무서기 30초, 듀오링고 스페인어 공부, 코딩 공부
30초면 되는 간단한 것부터 1-2시간이 걸리는 것도 있지만 다른 회사라면 출퇴근 시간에 쫓겨 꿈도 꾸지 못했을 것들이기에, 시간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 새삼 느끼곤 합니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을지로의 한 힙한 카페에 오피노마드 5명이 모여 근무를 하고 있습니다. 얼른 업무를 마무리하고 동료들과 한 잔 하러 가야겠습니다 : ) 코로나 때문에 많은 제약이 생겨났지만 위기를 기회로, 업무와 시간의 자율성을 한 번 시도해보는 것은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