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경희 저, 문학과 지성사
분더카머(Wunderkammer)는 사전적 정의로는 호기심의 방, 진귀한 물건으로 가득한 방을 뜻하며 그 유래는 16~17세기에 유럽에서 유행한 진귀한 물품을 모아둔 공간을 말한다고 한다.
16세기의 유럽에 그런 문화가 있었다는 것도 묘한 일이지만, 어느 나라 어느 시대나 공간의 크고 작음만 다를 뿐 그리고 그 내용물에 개인차가 있을 뿐 '분더카머'라는 것은 누구에게나 존재하지 않았나 싶다. 그것을 담은 것이 의식의 공간인가 무의식의 공간인가의 차이만 있을 뿐.
가령 어린 나 같은 경우 엄마의 화장대 한 켠의 네모난 공간이 그 분더카머였음을 깨닫게 된다. 누군가가 흘낏 보면 당장 갖다 버려야 할 잡동사니들이 너절하게 모아져있었겠지만 나로서는 가장 귀중한 보물들을 그곳에 차곡차곡 보관하고 있었다. 직접 그린 종이인형들이나 모래놀이를 하다 찾아낸 예쁜 돌멩이들, 집안 구석에서 찾아낸 단추 같은 것들, 친구의 편지, 마음을 가득 담아 쓴 일기, 잡지에서 오려낸 예쁜 그림... 같은 것들이 가득했다. 나는 시시때때로 그 뚜껑을 열고 한참을 홀린 듯 바라보다 잠시 만지작거리다가 누가 볼 새라 다시 그것을 닫고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돌아서곤 했다. (그리운 시절이다)
저자의 이 문장을 적어두었다.
"우리가 각자의 마음속에 지은 분더카머 안에는 결코 미적으로 높이 평가되는 예술작품의 원형이나 고도로 완성된 지적인 사유의 언어가 저장되어 있지 않다. 오히려 언뜻 보면 무가치한, 부서진, 깨진, 닳은, 기원과 이름을 모를, 무수한 말과 이미지의 파편들이 혼란스럽게 뒤섞여 공존한다."
- [분더카머], 윤경희
실은 그러한 것들은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함이 아닌 것이고, 이 책 또한 저자가 평생도록 꾸어온 꿈의 편린들 같은 것이라서 책으로 얽혀 내는 것에 어떤 의미가 있었을까 조금 의아했다. 그저 이 사람의 중얼거림. 하지만 세상 모든 책은 어쩌면 그것을 쓴 사람의 중얼거림인 건지도 모르니까.
솔직한 감상을 말하자면...
눈을 부릅뜨고 똑바로 초점을 맞추어 보려고 하면 잘 보이지 않는 광경이 있다. 그러다 언뜻 무심코 흐린 초점으로 잡힌 모양을 슬쩍 곁눈으로 바라보면 명징하게 보이는 광경이 있다.
이 책은 그런 책이었다. 글자 하나하나에 의식을 집중하면 도무지 읽히지도 않으며 보이는 것이 없다. 그냥 무심히 문장의 흐름을 좇아 흐르듯이 읽어나가면 어느새 이미지가 보인다. 아, 이런 느낌이구나. 의미를 명확히 파악하고 분석하고 이해하려 하면 결코 읽어내지 못한다. 그저, 느낄 수 있을 뿐이다, 이 책은.
이 책은 길- 게 늘어뜨린 시 같은 것이다. 동어반복적 내면세계다. 내가 시를 싫어하게 된 것은 입시위주의 교육이 가져온 폐단의 전형적 결과지만 이제 시를 싫어할 이유는 없다. 왜냐하면 해석할 필요가 없으므로. 그저 느끼면 되는 것이다, 커피처럼. 우리가 커피를 해석하려는 순간 커피가 주는 위로와 멜랑꼴리를 상실하는 것처럼 말이다.
길게 우려낸 시를 한참 바라보다, 견디다 결국 다 우려내고 마지막 장을 닫았다. 아 이제 더는 읽을 필요가 없어, 끝났구나 하는 안도감. 그 떫은 여운은 조금 오래 남아있을 것 같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