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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처럼 Dec 10. 2019

10. 텔레비전, 없음

'노 텔레비전 라이프'를 시작한 지 따져보니 8년째가 된다. 정확히 계산할 수 있는 이유는 이곳 일본에서 아날로그 방송 송출을 중단한다는 발표가 나온 것이 2011년의 일이고, 모두들 아날로그 텔레비전을 처분하고 디지털 텔레비전을 사거나 디지털 방송을 볼 수 있는 기기를 사거나 하던 시점이 그때였기 때문이다.



2011년은 딸아이가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한 해였다. 신혼 때 장만한 우리의 텔레비전은 처음 이 나라의 언어를 배우는데 어느 정도 도움을 준 것도 사실이었다. 특별히 '아이 교육을 위해 TV를 없앴어요!' 같은 소신파적 행동은 아니었다. 그저 어느 날 문득 아날로그 방송이 중단되고 우리의 텔레비전에는 더 이상 아무런 전파도 도달하지 않았다. 그뿐이었다. 그리고 더 이상 새로운 텔레비전을 갖추지 않았을 뿐. 의외로 텔레비전이 없다는 사실을 깜빡 잊어버릴 정도로 아주 자연스러운 나날이 이어졌다. 월드컵이나 올림픽 같은 세계인의 축제를 텔레비전 모니터로 볼 수 없다는 점이 약간 아쉬운 점이라고 할까. '그 뉴스 봤어?'의 질문에 답할 수 없다는 것, 한창 히트하고 있는 드라마 이야기가 나오면 할 말이 없어진다는 것 정도는 뭐 감수할 만하다.



어릴 적 기억의 조각들 중에서 텔레비전과 연관된 추억이 꽤 많았다는 것은 돌아보니 사실이다. <전설의 고향>에서 갑자기 짠 하고 등장하던 귀신들의 이미지는 한동안 뇌에 각인되어 어디서나 나를 쫓아다녔고, <전국 노래자랑>에 단골로 등장하던 가수 현숙의 '정말로'를 지치지도 않고 따라 부르며 춤을 췄으며, <맥가이버>와 <머나먼 정글>, <A특공대>의 열혈팬이 되어 나중에 꼭 서양 남자랑 결혼을 해야겠다고 결심을 하기도 했다. 고교시절 한참 동안 마음을 달구었던 것은 <지구촌의 한국인>이라는 프로그램이었는데 세계 각국에서 말하자면 '성공한' 축에 드는 한국인을 찾아내 그들의 삶을 비춰주는 것이었다. 역시 외국생활을 동경하던 소녀의 열망과 꼭 합해지는 그런 프로그램이 아닐 수 없었다.



게다가 텔레비전 방송 프로그램은 오락이나 흥미의 차원을 넘어서서 종종 한 인간의 생의 방향을 결정하거나 선회하게 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휴먼 다큐멘터리인 <인간극장> 시리즈를 보고 ‘저런 프로그램을 만드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저거다!’ 하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인간극장'이 촉발한 작은 동기는 결국 그 업종을 택하여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그 업계에서 머물도록 나를 이끌었다.



그리하여 텔레비전을 혐오하지 않는다. ‘침대는 가구가 아니’라는 흘러간 광고 카피를 패러디하자면 ‘텔레비전은 가전이 아닙니다. 가족입니다’ 역시 성립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인공지능 로봇이 가족이 되는 영화도 꽤나 많지만 그런 것이 나오기 훨씬 전부터도 텔레비전이라는 기계는 이미 가족 같은 존재가 아니었으려나. 다만 그 도가 지나쳐 가족들이 텔레비전을 매개로 대화하게 된다든가, 대화의 소재 또한 텔레비전이 제공하고 모두의 시선은 화면만을 향하고 있는 상황은 생각해보면 참 어색하다.



시대의 진화는 공중파 빅 방송 3사의 거대한 영향력을 해체시켰고, 그보다는 유튜브 등의 개인방송과 SNS의 영향력이 더 강해지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텔레비전의 막강함은 어느 정도 힘이 빠지게 되었다. 텔레비전이 없다 해도 세상 돌아가는 것에서 소외되거나 하지는 않는 시대가 되어 버린 거다. 적어도 이전보다는 텔레비전이 대중을 쥐락펴락 이끄는 대로 살지만은 않게 되었다.



나도 모르게 텔레비전은 = 대중이라는 등식을 편견으로 갖고 살았나 보다. 텔레비전을 굳이 다시 갖추어 두지 않았던 것은 대중이라는 뭉텅이의 한 일원으로 묻히고 싶지 않다는 나름의 표현이었는지도 모른다. 유진 이오네스코식으로 말하자면 '코뿔소가 되기 싫었던' 것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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