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잡지'를 아주 예전부터 좋아해 왔다. 다른 사람들이 잡지에 대해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이라 여길 지는 잘 알지 못한다. 그저 책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도 쉽게 집어 들 수 있는 것이 잡지인 것이다. 잡다한 내용들을 묶어놓은 것이기에 그 이름도 그저 '잡지(雑誌)'라 명명하게 되었던 것이겠지. '雜' 이라는 글자는 그야말로 섞고, 섞여서 '어수선'한 것들을 '모은다'는 뜻을 포함하고 있으므로.
잡지의 정체성이라 한다면 '속됨'이 아닐까 싶다. 세속 혹은 속세를 떠나 잡지는 존재할 수 없다. 그리고 바로 그것이 내가 잡지를 좋아하는 지점이다. '사실은 속된 것을 좋아한다'라고 고백하는 것은 아니다. 고명하고 우아한 척하지 않고 온전히 속엣것을 다 내놓는 솔직함이 좋다.
처음으로 본 잡지는 '어린이 새농민'이라는 이름의 것이었다. 당시 농협에 다니던 아빠는 농협 기관지로 한 달에 한 번 발간되던 '어린이 새농민'을 박카스 한 병과 함께 세트처럼 가져와 주시곤 했는데 어린 나는 그 날을, 그 퇴근을 손꼽아 기다렸다. 요즘처럼 부록을 얻기 위해 잡지를 구매할 정도의 특별한 부록도 그닥 없었다. 그저 안에 담겨있는 이런저런 글들과 만화들 읽는 재미가 쏠쏠했을 따름인데 내용은 전혀 기억나지 않지만 어린이들의 글도 있었고 어른들의 글도 있었다. 무엇보다 글만 있던 것이 아니라 사진들이 잘 버무린 양념처럼 곁들여져 있었다. 잡지의 묘미란 사진과 글이 같이 들어있는 그러한 말랑함이라는 것을 그때 막연히 짐작하게 되었던 것 같다. 표지는 이름을 잘 모르는 단정하게 생긴 아이들이 이를 드러내고 웃는 사진들이 대부분이었다. 지금 돌아보면 '새농민'이라는 단어가 주는 촌스러움이 일단 좌중을 압박하겠지만 당시의 내게는 보물 같은 최초의 잡지였다.
조금 더 나이를 먹어서는 '소년동아'라든가 '보물섬'같은 만화잡지에 홀릭하여 작고 깜찍한 수첩이라든가 탁상용 달력 같은 것을 연말 부록으로 주던 잡지들을 선물로 받거나 부모님을 졸라서 얻어내곤 했던 것 같다. 내가 살고 있던 J시에는 서점이 (당시의 내가 알기로는) 딱 하나 있었는데, 같은 학교에 다니던 동급생의 부모님이 서점을 운영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곳에 가면 곧잘 서점 한 귀퉁이에서 뭔가를 하고 있던(?) 그 애를 볼 수 있었다. 그렇다고 대화를 하거나 친하게 지냈다거나 한 건 아니었고 부럽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이 책들을 그냥, 거저로 다 읽을 수 있다니...... 모르긴 해도 서점 아들이던 그는 훌륭한 청년, 아니 중년으로 살아가고 있지 않을까 한다.
중, 고등학교 시절에는 딱히 생각나는 잡지가 없는 걸 보니 잡지보다는 문학서적에 탐독했었나 보다. 기억나는 것이라면 영문과에 다니고 있던 언니가 덜컥 정기구독을 해버린 영어잡지 - 이름은 전혀 생각나지 않는다- 가 매달 쌓여가길래 그 잡지의 사진들을 훑어보던 재미가 쏠쏠했던 정도랄까. 대학에 가서 '씨네 21'이라든가 '한겨레 21' 또는 영어공부를 하겠다는 일념으로 'TIMES'같은 것을 가방 속에 쑤셔 넣고 다녔다. '페이퍼'도 한창 유행이 되던 잡지였다. 지금도 페이퍼가 간행되는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지만 막연히 그때 나도 잡지 같은 것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던 듯하다.
잡지의 대표선수 격인 패션지들은 주로 미용실에서 훑는 정도였는데 패션지에 등장하는 모델들이나 여타 사람들이 활짝 웃지 않고 무표정이나 화난 표정으로 카메라를 응시하는 그런 얼굴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모든 이들이 다 그런 표정을 짓고 있으니 '굉장히 이상한' 블랙 코미디를 보는 느낌이었고, 불편하고 어색했다. 지금도 궁금하다. 왜 패션지의 모델들은 '굳은' 얼굴을 하고 있는가 말이다. 패션지의 묘미는 그런 무표정의 모델들이 아닌, 스트리트에서 찍힌 밝은 표정의 젊은 이름 모를 여인들이 아닐까. 날로 다양화되는 부록은 덤이고 말이다.
일본에서 살게 되어 여전히 이 나라의 언어에 대해서는 수줍음과 소심함이 매일매일 더 커져가는 나로서는 서점에 가면 우선 잡지 코너로 스르륵 다가간다. 무엇보다 일본의 잡지 시장은 한국보다 훨씬 훨씬, 잘은 몰라도 약 천 배 정도 되지 않을까 싶게 세분화되어 있어서 볼거리가 무궁무진하다. 예를 들어 패션이라고 해도 나이가 어린데 엄마가 된 이들을 위한 패션지, 아기 엄마 패션지, 초등생 이상 엄마 패션지, 중년의 패션지, 노년의 패션지, 유럽 패션만 다루는 패션지 등등 다양하다. 인테리어 잡지라 하면 내추럴풍 인테리어부터 북유럽, 엔틱, 일본풍 인테리어 잡지 등등 세세하게 나뉘어 있고, 카페에 대한 잡지는 또 얼마나 많은지, 스포츠며 여행 다 나열하기도 어려울 만큼 물량이 엄청나다. 그리고 대부분의 책들은 꽁꽁 닫혀있지 않고 거의 다 오픈되어 있어 이걸 팔자고 하는 건지 그냥 읽기만 해도 좋으니 눈으로 즐겨!라는 건지 속셈을 모를 정도이다. 사람들의 취향이라는 것이 대개는 그중 한 두 개와는 일치하는 지점이 있는 법인지라 잡지들은 어떻든 팔리고 있는 것 같다.
세상 많은 책들이 사유의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한다면, 수많은 매거진들은 감각의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실려있는 감각적이고 값비싼 삶의 요리법들을 모두 다 적용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어떤 것들이 기준이 되는가에 대해서는 곁눈질로라도 알 수 있다. 기준을 알아서 뭐하게? 하다가도 기준은 알아야하지 않겠나. 잡지를 다시 펴드는 또 하나의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