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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처럼 Dec 05. 2019

9. 거울 속은 위험해


백설공주의 새엄마는 왜 거울을 보며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쁜지 물어봐야 했을까? 그녀는 굳이 왜 '니가 젤 예뻐'라는 말을 거울 속 목소리로 꼭 들어야만 했을까. 자신의 미모가 그리 뛰어나다면 그냥 거울을 보며 "역시 내가 제일 예쁘지" 하고 생각해버리면 그만 아닌가? 아무래도 그녀는 심각한 열등감과 최저 수치의 자존감을 탑재하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끊임없이 타인의 시선으로 자신의 외모를 인정받기를 원했으니 말이다. 만약 성형수술이 가능한 시대였다면 그는 백설공주를 죽이려 하기보다 성형을 택했을까? 성형외과 의사에게 백설공주의 사진을 보여주며 "얘보다 더 예쁘게 고쳐주세요!" 했을지도. 하긴 아무리 성형을 한다 해도 백설공주를 이길 수는 없었겠다는 생각도 든다. 나이를 성형할 수는 없으니 말이다.



청소년기 시절 내 방의 한쪽 벽에는 전신 거울이 붙어 있었다. 거울 속에 비친 나와 꽤 많은 시간을 보냈다. 다른 소년 소녀들처럼. 우리의 영원한 벗 빨강머리 앤이 친구도 한 명 없던 불행한 시절, 유리에 비친 자기 자신을 '캐시 모리스'라 이름 짓고 많은 대화를 나눴듯이, 나도 거울 속 내 얼굴을 들여다보며 이런저런 공상들을 했다. 따로 이름을 지어 주지도 않았고, 거울 밖에 친구들도 많이 있었지만 말이다. 물론 거울을 들여다보고 있지 않을 때도 수많은 공상을 했다. 하지만 거울을 볼 때와 보지 않을 때, 공상의 성격은 조금 달랐던 것 같다.



당연하겠지만도 거울을 보면 외모를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 생각의 틀은 외모를 벗어나지 못한다. 내가 보는 나의 외모와 타인의 시선에 비치는 나의 외모. 그런데 이상하게도 내가 자신의 외모에 신경 쓰고 있다는 사실을 누군가에게 들키는 것이 싫었다. 때문에 사람들 앞에서는 거울을 보는 나를 보이고 싶지 않았다. 여중과 여고를 세트로 다닌 나는 주변 친구들이 다 여자아이들이었고, 교실에는 거울이 딱 한 개 있었다. 쉬는 시간이면 아이들이 거울 앞으로 몰려들어 차례로 거울을 보며 머리를 매만지거나 했지만, 내 경우는 지나가다 슬쩍 보는 정도였달까. 내가 거울을 통해 보고 있는 나를 타인들이 보고 있다는 사실은 일종의 미세한 공포였다. 거울을 보며 생각하던 내 머릿속의 것들을 어쩐지 들켜 버릴지 모른다는 공포였을까? 자아의 눈을 뜨면 타자가 보이는 것이 원칙이라도 되는 양, 그때부터 타인의 시선이 신경 쓰였다. 자아에 눈을 뜨는 것과 거울을 보는 행위. 두 가지 중 먼저 시작하는 것은 어느 쪽일까? 거울을 봤기 때문에 자아에 눈을 뜨는 것인지, 자아에 눈을 떴기 때문에 거울을 보는 것인지 그게 사실 좀 헷갈린다.



거울을 보며 생각했던 대개의 상념들은 청소년기를 벗어났다고 해서 딱히 달라지지 않았다. 나 역시 여전히 타인의 시선에 길들여진 자유롭지 못한 평범하고 가냘픈 영혼일 따름이었다.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나르시시스트 정도가 아닐까. 어릴 적 즐겨 보았던 <개구쟁이 스머프>의 '허영이 스머프'처럼. 모든 순간 거울을 소중하게 지니고 다니던 허영이 스머프 말이다. 그 아이는 거울을 바라보고 있을 때 가장 행복해하고, 맑은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한참이나 들여다보며 만족감에 젖어든다. 허영이야말로 나르시시스트의 전형이다. 누가 뭐라 하든 자기 외모에 그 정도로 만족하며 산다니, 허영이 스머프는 축복받은 것일까 그저 자기 안에 갇힌 것일까.



80년대의 텔레비전에서 만났던 '허영이 스머프'를 요즘 들어 가끔 떠올리는 이유는 모두가 손에 쥐고 다니는 스마트폰이 꼭 허영이의 거울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조금 차이가 있다면 실제보다 예뻐 보이는 착시 효과를 선사하는 '보정 가능' 거울이라는 것. 보정된 자신의 셀카를 모두에게 공유하는 것도 가능한 신비로운 거울이기도 하다. 많은 보완을 거친 사진을 시간이 흘러 우연히 다시 보게 되면 그때의 자신이 딱 그만큼 보기 좋았던 것처럼 느껴지는 경험도 뭐 그리 나쁘지는 않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아름답게 보일 필요도 있는 것이니까.



인간의 신경세포 내에는 '거울 뉴런'이라는 것이 있어서 다른 사람의 행동을 마치 거울이 우리를 따라 하듯 따라 하게 된다고 한다. 근처의 누군가가 하품을 하면 따라 하품이 나오는 것도 그 거울 뉴런에 의한 것이라고. 단순히 행위를 따라 하는 것에서 머물지 않고 드라마나 영화에서 등장인물이 울면 같이 눈물이 나오는 공감 능력 같은 것도, 부부가 서로 닮아가는 것 또한 거울 뉴런이 반응한 현상이란다. 어쩌면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은 생물학적으로 필연인지도 모르겠다. '거울 뉴런'의 반응은 타인의 시선까지도 흉내 내게 하여 스스로를 타인의 시선으로 평가하게 되는 메커니즘이 아닐까.



백설공주의 새엄마가 갖고 있던 거울은 어쩌면 자기 안에 내재화되어 있던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마법의 거울이 아니라 스스로의 내면의 거울에게 매일 물었던 것이다. 내가 세상에서 제일 예쁜 거 맞니? 그러면 마음속 거울이 대답한다. 아니, 넌 이제 한 물 갔어. <반지의 제왕>의 골룸처럼 자기 안에 분열된 자신이 자기를 인정했다 부정했다 하는 새엄마 왕비를 생각해 보라. 내면의 거울에 비친 그녀는 때로 볼품없는 외모를 가진 자신을 본다. 백설공주를 향한 살의는 자기 자신을 향한 것이었는지도. 어쩌면 거울은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도구 인지도 모르겠다.



*Image -  Hand with Reflecting Sphere by M.C. Es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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